2022.02.25_에세이_파랑새는 있다
새벽 커튼을 열고 하루를 시작한다. 어두운 도로 위에 홀로 섬광하고 있는 신호등도 단잠에서 아직 일어나지 모양이다. 이 시각 지금 나는 학교로 간다. 습관처럼 향기로운 새벽 내음을 코로 깊게 마셔본다. 옥녀봉과 국사봉에서 내려온 차가운 기운과 옥포만의 바닷바람이 고스란히 함께 전해진다. 가는 길에 계룡산 뒤로 숨어 있는 보름달을 보았는데 어찌나 부끄러워하는지 자꾸 가까이 다가갈수록 숨어버린다.
숲에서 만난 흙, 물, 나무, 풀, 바위, 돌, 차가운 새벽 공기와 같은 세상 모든 것들을 몸으로 느낀다. 어느 순간 이 모든 것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사이 바다가 보이고 하늘이 옆에 있고 더 나아가서는 밝게 빛나는 별들도 함께 나의 곁에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잠시 이마에 빛나는 헤드 랜턴을 끄고 숲이 전해오는 대화에 더 귀 기울이려고 했다. 헤아릴 수 없는 자연의 여러 대화 속에서 ‘파랑새반’ 학생들은 익숙한 듯 어두운 앞길을 빠르게 달리며 전진해 나갔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잠시 망설이기도 했다. 뒤따라 달리며 그들이 남기고 간 이야기가 궁금했다. 달려간 자리 사이로 바람이 일었다. 누군가는 ‘거제의 바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어느새 학교에 도착했다. 이른 시간이라 아무도 다니지 않은 어두운 길을 밝게 비추고 있는 곳이 오늘 등교할 학교다. 학교 주변으로는 고소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고, 가판대 앞에는 나와 비슷한 옷차림을 갖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마치 이른 아침 먹이를 찾고 있는 새들의 모습처럼 보였다. 멀리서 찾아온 새들은 교장 선생님이 가지고 온 돼지 저금통에 자신의 행복을 조금씩 저축하고 있었다. 먼 곳을 달려와 흘린 땀과 소중한 추억도 함께 저금하고 있는 순간이기도 했다. 교장 선생님이 저축한 새들에게 직접 만든 따끈따끈한 떡을 하나씩 건네주었다. 떡을 받은 새들은 달콤한 웃음을 보이며 다시 집으로 날아갔다. 이곳은 고현 시장 첫머리에 있는 ‘소문난 떡집’이었다.
오늘 새벽은 21Km 달려서 학교에 갔다. 달리는 동안 파랑새를 만날 수 없었지만, 추운 겨울임에도 마음만은 새 둥지처럼 포근했다. 달리기가 끝나는 곳에 학교가 있었고 그곳에서 다시 행복한 하루를 시작한다는 마음이 들어서 그랬는지 모른다. 남쪽 섬마을에서는 4년 넘게 어디에 있을지 모를 파랑새를 찾아 매일 산으로 바다로 뛰어다니는 학생들이 있다. 오늘도 그들은 거침없이 학교까지 힘찬 날갯짓을 하며 달려왔다. 늘 어둠을 밝히고 있는 이곳이 그들은 파랑새가 날아드는 곳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학교에 출석하고 있는 학생들과 달려보며 사람의 진하고 구수한 향기를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었다. 달리면서 가슴속에서 피어난 따스한 온기가 하나씩 쌓아지고 있었다. 저금통의 돼지 웃음과 파랑새반 학생들의 모습이 닮아 보였다. 각자의 소신대로 돈을 넣고 따스한 떡 하나를 받고 밝게 피어나는 웃음이야말로 작지만 소중한 행복이 아닐까 생각했다.
매년 ‘파랑새반 졸업식’이 있는 날이면 한해 모인 ‘파랑새 기금’이 돼지 저금통에 가득 모인다. 학생들은 파랑새가 그려져 있는 저금통에 모인 희망을 주변 이웃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있다. 성금을 받은 누군가에게는 기쁨과 새로운 행복일 것이다. 아주 오래전에 파랑새를 찾으면 복이 찾아들고 좋은 기운이 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나 또한 파랑새를 찾고자 여러 곳을 다녀보았다. 하지만 쉽게 만날 수는 없었다. 달리면서 느낀 것은 행복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파랑새는 현재 나와 함께 달리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고 그들의 마음이 하나씩 모여 아주 조금씩 세상을 밝게 움직이고 있었다. 학교에 모인 작은 새들이 많이 모여 이곳의 따스한 바람을 멀리 날려주었으면 했다. 아직은 달려야 할 길이 멀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내가 만나 본 그들은 행복을 찾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달콤한 팥 수수떡 하나를 베어 물어본다. 입속에서 퍼지는 향기와 고소함이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장거리 달리기 끝에 피곤함과 노곤함이 동시에 밀려왔는데 옷으로 떨어지는 팥가루만큼 행복도 셀 수가 없었다. 멀리 펼쳐져 있는 산등성이 사이로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간 파랑새는 아침 먹이를 물어다가 누군가에게 소중한 추억을 건네준다는 생각이 아침 햇살처럼 가슴 저편에 스며들었다. 내가 파랑새반에서 달리고 있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