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은 자의 아련한 고독
새벽의 푸스름한 빛이 아직 세상을 적시기 전, 모두가 깊고 단단한 잠에 빠져 있는 시간 속에 홀로 눈을 뜬다는 것은 얼마나 서늘하고 애달픈 축복인가. 진리를 엿보고 실상(實相)의 문을 열어젖힌 자는, 밤의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고요한 방안에서 곁에 잠든 이들의 고른 숨소리를 우두커니 듣는다. 그들은 저마다의 닫힌 눈꺼풀 뒤에서 무언가를 쫓아 숨 가쁘게 달리거나, 환희에 차 웃거나, 혹은 누군가를 잃고 서럽게 울고 있을 것이다. 그 꿈속의 맹렬한 희로애락이, 그 무거운 눈물과 뜨거운 땀방울이 아침 해가 떠오르면 흔적도 없이 스러질 한낱 물안개임을 아는 자는, 그저 가만히 그들의 젖은 이마를 짚어줄 뿐 차마 그 단잠을 흔들어 깨우지 못한다.
진리를 안다는 것은 어쩌면 가장 잔인하고 서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깨달은 자는 더 이상 세상 사람들이 목숨처럼 매달리는 찰나의 온기와 덧없는 영광에 마음을 내어주지 못한다. 누군가 손을 맞잡고 영원한 사랑을 맹세할 때 그는 그 약속이 부서질 훗날의 허망함을 함께 보고, 무리가 승리의 축배를 들며 환호할 때 그는 잔이 비워진 뒤에 찾아올 기나긴 공허를 미리 앓는다. 타인들이 치열하게 부대끼며 살아가는 이 사바(娑婆)의 끈끈한 세상은 온통 부서지기 쉬운 환상으로 지어진 모래성이건만, 사람들은 그 모래알 하나를 더 쌓기 위해 피를 흘리고 가슴을 친다. 그 눈물겨운 발버둥이 안타까워 무너져 내리는 마음 한편으로는, 끝내 그들의 맹목적인 믿음과 끓어오르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다시는 섞여 들어갈 수 없음을 뼈저리게 실감한다. 시선이 가닿는 곳이 너무도 아득하여, 군중의 한가운데 서 있어도 그는 늘 저물어가는 가을 빈 들녘에 홀로 선 듯한 아득한 단절감을 앓아야만 한다.
그가 마주한 진리의 가장 깊은 곳에는 눈부시고도 잔인한 비밀이 하나 자리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이 세상이 외부에서 억압하는 굳건한 실체가 아니라, 오직 스스로의 마음이 빚어낸 거대한 캔버스라는 사실이다. 낡은 세계라는 단단한 알을 깨고 나온 자는, 이 우주의 텅 빈 허공에서 마침내 '아브락사스(Abraxas)'를 대면하게 된다. 빛과 어둠, 선과 악, 탄생과 죽음이라는 인간의 얄팍한 이분법을 부수고 그 모든 것을 하나로 잉태한 심연의 신. 사람들은 운명의 거센 파도에 휩쓸린 가련한 조각배를 자처하며 살려달라 울부짖지만, 실상 그 파도를 일으키고 비바람을 부르는 바다의 주인은 다름 아닌 그들 자신이다. 내면의 아브락사스를 깨우치면 누구나 천국과 지옥을 제 마음먹은 대로 창조하고 또 부술 수 있는 유일한 조물주(造物主)이건만, 그들은 자신이 벼려낸 환상의 감옥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자신이 쓴 비극의 대본을 쥐고서 피눈물을 흘린다. 마음의 붓을 고쳐 쥐기만 하면 얼마든지 찬란한 은하수와 봄의 정원을 그려낼 수 있음에도, 스스로 창조와 파괴의 신(神) 임을 망각한 채 굳게 감은 눈을 뜨지 못하는 기막힌 역설.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무한함을 품고도 스스로를 가장 연약한 노예로 전락시킨 그들을 바라보며, 깨달은 자는 차마 소리 내어 울지 못하는 깊고 푸른 슬픔을 삼킨다.
사랑하지 않아서 곁을 떠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세상의 모든 얄팍한 경계를 허물고 무한한 연민으로 그들을 품게 되었으나, 그 크고 깊은 마음을 건넬 방법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이 보았던 영원한 생명의 빛과, 스스로가 온 우주를 품은 아브락사스라는 그 위대한 진리를 사랑하는 이들의 손바닥에 쥐어주고 싶어 입술을 달싹여 보지만, 언어란 얼마나 초라하고 가련한 그릇인가. 우주의 숨결을 몇 마디 탁한 음성으로 빚어내는 순간 진실은 이미 형체를 잃고 차갑게 굳어버리며, 꿈결에 취한 이들의 귀에는 한낱 실없는 잠꼬대나 허무맹랑한 거짓말로 흩어지고 만다. 진심을 꺼내어 보여줄수록 오해의 그늘은 길어지고, 손을 뻗을수록 사람들은 그를 미치광이나 이방인처럼 경계하며 한 걸음씩 뒤로 물러선다. 결국 그는 입을 굳게 닫는다. 거절당하는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허물을 찢고 나오는 고통의 시간을 온전히 견뎌내기 전까지는, 어떤 완전한 진리도 도리어 그들의 연약한 세계를 베어버리는 날카로운 칼날이 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깨달은 자는 묵묵히 침묵의 형벌을 달게 받으며, 아무도 걸어가지 않는 인적 끊긴 밤길을 향해 홀로 발걸음을 돌린다. 산기슭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의 창문마다 따스한 주황빛 등불이 켜지고, 저녁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며 사람들의 두런거리는 웃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온다. 그 아늑하고 다정한 불빛들을 멀리서 아스라이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에는 지독한 외로움과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 그리고 바다처럼 깊은 다정함이 함께 고인다. 돌아가 저 불빛 곁에 앉아 도란도란 체온을 나누고 싶어도, 그의 몸에는 이미 세상의 모든 불을 끌 만큼 차갑고 거대한 우주의 바람이 깃들어 버렸으므로.
이 절대적인 고독은 비참한 소외가 아니라, 온 세상을 품어 안기 위해 스스로를 텅 비워내는 거룩하고도 시린 여정이다. 곁에 아무도 없기에 비로소 모든 존재와 연결되며, 누구와도 눈을 맞추지 못하기에 우주의 모든 별빛과 마주할 수 있다. 깊은 밤, 홀로 조각배를 띄우고 끝을 알 수 없는 묵묵한 강물을 저어가는 사람처럼, 깨달은 자는 그렇게 외롭고도 눈부시게 이 세상을 건너간다. 닿을 수 없는 이들을 향한 아득한 그리움을 품은 채, 그는 세상에서 가장 철저히 버림받은 자인 동시에 세상의 모든 상처를 남몰래 쓰다듬는 유일한 그림자가 되어 우주의 무심한 흐름 속으로 고요히 스며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