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가 아니라, 화면에게
나는 요즘 ‘동의’라는 말을 너무 쉽게 한다.
사람에게가 아니라, 화면에게.
처음엔 선의였다.
더 빠르게. 더 편하게. 더 안전하게.
누가 거절하겠나.
거절은 늘 대가를 요구한다.
나는 그 대가를 낼 만큼 살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누른다.
읽기 전에 누르고,
의심하기 전에 누른다.
‘동의’라는 단어는 작고 예의 바르다.
예의 바른 단어는 사람을 방심하게 만든다.
나는 비밀번호를 기억하지 않는다.
내 손은 더 이상 조합을 외우지 않는다.
대신 지문을 갖다 댄다.
손가락 끝이 허락하면 문이 열린다.
허락이 이렇게 가벼워도 되는 걸까.
편의는 늘 이렇게 온다.
“당신을 위해서.”
나는 그 문장을 의심하지 않았다.
의심하는 사람은 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니까.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지 묻는 사람이
사라졌다는 것을.
나는 검색창에 단어를 몇 개 치다가 지운다.
문장이 완성되기 전에, 추천이 먼저 도착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과,
말해도 되는 것 사이에서
커서가 잠깐 멈춘다.
멈춘 사이,
손가락이 먼저 ‘삭제’를 찾는다.
그 멈춤이 내 것인지,
이미 누군가의 계산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나는 점점 더 나를 설명하지 않는다.
설명할 필요가 줄어드는 것은 편리하다.
하지만 설명이 줄어든 자리에는 늘 다른 것이 들어온다.
요약, 분류, 추천, 최적화.
나는 내 삶을 살아내는 대신
내 삶이 어떤 유형인지 확인하고 있는 것 같다.
편의는 선의처럼 보인다.
그래서 위험하다.
선의는 의심받지 않으니까.
나는 오늘도 동의 버튼을 누른다.
그리고 아주 잠깐,
내가 무엇을 내주고 있는지 떠올리려 한다.
떠올리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이 불편하다.
불편하다는 사실이
가장 불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