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은 단단함이 아니라, 돌아오는 능력이다
사람들은 흔들리지 않기를 원한다.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면
삶이 덜 아플 것 같고,
관계가 덜 피곤할 것 같고,
결정이 덜 무거울 것 같아서.
그래서 우리는
단단해지려고 한다.
감정을 잘라내고,
약한 마음을 숨기고,
아무 일도 아닌 척하며
버티는 쪽으로 자신을 훈련한다.
단단함은
처음에는
우리에게 힘이 된다.
그런데
단단해진다고 해서
삶이 덜 흔들리는 건 아니다.
삶은 여전히 파도처럼 오고,
말은 여전히 예고 없이 꽂히고,
관계는 여전히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때 단단한 사람은
흔들리지 않기 위해
더 강하게 버틴다.
그리고 어느 순간,
버티는 힘이
삶을 살리는 힘이 아니라
삶을 막아서는 힘이 된다.
단단함이 굳음으로 바뀌는 순간은
생각보다 조용하다.
웃음이 줄고,
말이 줄고,
호기심이 줄어든다.
마음은
상처받지 않으려고
문을 닫는다.
그 문을 닫은 뒤에도
삶은 계속 들어오는데,
문을 닫았으니
들어온 삶을 소화할 수가 없다.
여기서
흐름은 한 번 꺾인다.
흔들리지 않는 삶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삶은 흔들리게 되어 있고,
마음은 반응하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목표는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흔들린 뒤에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중심이란
흔들림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중심은
흔들림 이후에도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오는 능력이다.
그렇다면
굳어지지 않는 중심은
어디에서 생길까.
의외로
정답은 강함이 아니라
유연함에 있다.
유연한 사람은
자기 감정을 부정하지 않는다.
“지금 상처받았다.”
“지금 불안하다.”
“지금 무겁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그 감정이 나를 전부라고 착각하지 않는다.
유연함은
감정을 없애는 기술이 아니라
감정과의 거리를 유지하는 능력이다.
흔들림은
나쁨이 아니다.
흔들린다는 건
아직 감각이 살아 있다는 뜻이고,
아직 삶이 내 안에 닿고 있다는 증거다.
오히려 위험한 건
흔들리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상태다.
굳어버린 마음은
다치지 않으려 하지만,
대신
살아 있는 느낌도 잃는다.
여기서 마지막으로
흐름이 엎어진다.
흔들리지 않되 굳어지지 않는 삶은
‘철벽’을 세우는 삶이 아니다.
그건
파도가 올 때마다
무너지지 않는 벽이 되는 것이 아니라,
파도가 지나간 뒤에도
자기 모양을 회복하는
나무 같은 삶에 가깝다.
휘어지되 부러지지 않는 것.
흔들리되 사라지지 않는 것.
그것이
현대적 수행자의 중심이다.
오늘도 흔들렸다면
그건 실패가 아니다.
오늘도 굳어졌다면
그건 약함이 아니다.
다만
돌아올 자리를
조금 더 선명하게 만드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중심은
단단함이 아니라
되돌아오는 능력이다.
그리고 그 능력은
오늘처럼 흔들린 하루에서
조용히 자라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