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의 법정

증거도 없이, 판결은 먼저 내려진다

by 데브라

어떤 하루는 시작부터 불리하다.
아무도 나를 공격하지 않았는데, 나는 이미 방어하고 있다.
아무도 나를 평가하지 않았는데, 나는 이미 심문을 받고 있다.
내 안에서 재판이 열렸기 때문이다.


마음은 법정을 좋아한다.
명확함을 원하기 때문이다.
명확함은 편하다.
누가 옳고, 누가 틀렸는지.
무엇이 이유고, 무엇이 결과인지.
그러나 삶은 그 정도로 정리되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은 삶을 대신해 정리해준다.
대신, 사실을 희생한다.


법정에 올라오는 증거들은 이상하다.
대부분 눈에 보이지 않는다.
표정 하나, 말끝 하나, 답장이 늦어진 몇 분.
그런 것들이 ‘증거’가 된다.
그리고 마음은 그 증거들로 확신을 만든다.
확신은 결론을 낳고, 결론은 감정을 낳는다.
감정은 다시 확신을 강화한다.
이렇게 한 번 돌기 시작하면,
사건은 이미 필요 없어지고
해석만 남는다.


특히 피고가 ‘나’일 때, 판결은 더 가혹하다.
나는 내게 가장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내가 나를 가장 잘 안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내게 가장 잔인해질 자격이 있다고 착각한다.


“넌 또 이래.”
“넌 결국 못 해.”
“넌 사랑받을 수 없어.”
이 판결문은 늘 같은 문장으로 돌아온다.
다만 사건만 바뀐다.
오늘은 일 때문이고, 내일은 관계 때문이고,
모레는 아무 이유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판결은 늘 준비되어 있다.


여기서 인간은 이상한 기술을 보여준다.
판결을 먼저 내리고,
그 다음에 그 판결을 정당화할 증거를 찾아낸다.
마음은 공정하지 않다.
마음은 오히려 ‘이미 정해진 결론’을 위해
세상을 편집한다.


그래서 어떤 날은
상대의 한마디가 문제가 아니라,
그 한마디를 받아 적는 내 안의 서기가 문제다.
그 서기는 늘 같은 문장으로 받아 적는다.
“나는 부족하다.”
“나는 위험하다.”
“나는 실패할 것이다.”


그럴 때 필요한 건 승소가 아니다.
이 법정에서 이겨도, 결국 나는 남는다.
상대가 유죄가 되어도,
나의 불안은 무죄가 되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재판을 멈추는 것이다.
단 한 번이라도,
판결을 유예하는 것이다.


증거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삶은 원래 증거가 부족한 채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그 부족함을 견디는 힘이,
어떤 날은 가장 단단한 자유가 된다.


오늘 당신의 머릿속에서는
어떤 재판이 열렸는가.
그리고 그 재판에서,
판사는 누구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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