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랜만에 친구 집에 다녀왔다. 친구는 작년 12월에 아기를 낳았는데, 1월과 2월에는 아이 겨울 방학으로 내가 시간을 전혀 낼 수가 없어서 이제서야 다녀온 것이다. 친구는 아기가 저녁과 밤에 너무 많이 운다며 우울증에 걸리기 직전이라고 말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가 갔던 낮 시간에는 아기는 예쁜 모습만 보여주었다. 하지만 아기를 키워본 엄마로서 그러한 상황과 그럴 때의 엄마의 감정이 어떤 지를 너무나도 잘 알기에, 예쁜 아기를 능숙하게 돌보고 재우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 한 켠이 내내 짠했다. 게다가 친구는 내가 봤던 모습 중에 가장 마른 모습이었다. 모유 수유를 하고 있어서 살이 안 찌는 것 같다고는 했지만, 아기 때문에 쉴새 없이 앉았다 일어났다 반복해야 해야 하니 살이 찔 틈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가 소파에 앉아 수유 쿠션에 아기를 눕혀놓고 젖을 먹이던 모습이 계속 생각난다. 우리는 대학원 동기였는데, 비교적 어린 나이에 만난 사이인데다가 이 친구는 나보다 세 살이 어려서 왠지 나는 이 친구를 항상 어리다고만 생각해 왔다. 그러던 친구가 결혼을 하고 취직을 하더니 마흔이 넘은 나이에 아기까지 낳았다니, 과장 조금 보태서 지금 나는 약간 친정 엄마의 마음이 되어버린 상태이다.
한편으로는 우리의 인연이 벌써 15년이 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15년은 짧으면 짧다고도 길면 길다고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하지만 결혼하고 나서는 서로 연락이 조금 뜸해졌다고는 해도, 우리 인생에서 가장 치열하게 살았던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을 함께 한 사이이니 단순히 시간으로는 계산할 수 없는 인연이라 하겠다. 매순간 일거수일투족을 나누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절친이어야만 소중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의 인생을 바라본 그리고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앞으로도 계속해서 바라볼 사이도 소중하니까. 아니, 오히려 더 소중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살다 보니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는 만나서 친해지는 일보다 그 관계를 오래 지속시키는 일이 훨씬 더 힘들다. 절친이었다가도 이런저런 이유로 연락이 끊어질 수 있고, 심지어 결혼을 했다가도 헤어질 수 있지 않은가. 누군가와 오래 인연을 이어가려면 아이러니하게도 서로에게 집중하기보다는, 각자의 삶을 충실히 꾸려 나가려는 노력이 중요한 것 같다. 각자의 삶에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만 오래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리고 40대 중반이 된 지금 시점을 기준으로는 그렇다.
내가 원래부터 현재에 만족하는 스타일이어서 그런지 예전에도 대박을 꿈꾼 적은 없지만, 앞으로도 딱히 그럴 것 같지는 않다. 그저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이 아무 일 없이 건강하고 무탈하기를, 부디 굉장히 좋은 일도 굉장히 나쁜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그래서 우리의 관계도 문제없이 지금처럼 지속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데 문득, 그것이야말로 어쩌면 인생의 진정한 대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이 글을 쓰면서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