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승연 Jul 13. 2022

가족의 의미

얼마전 아빠의 정년퇴임식이 있었다. 조촐하게 하는 줄 알았는데 학교 정문에서부터 크게 플래카드가 걸려 있어서 깜짝 놀랐다. 꽃다발을 들고 학교 안을 이리저리 헤매고 있으니,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000 퇴임식 오셨냐'며 친절하게 길을 안내해 주었다. 40년 가까이를 한곳에서 근무했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게 오히려 당연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의 퇴임식은 비교적 차분하게 진행되었다. 아빠와 절대적인 앙숙 관계에 있던, 아빠가 매번 열정적으로 험담을 하던 분이 아이러니하게도 퇴임식 축사를 담당하시는 바람에 속으로 조용히 웃기도 했다. 아빠가 감사의 말을 읽어 내려가면서 울컥하는 모습에서는 평소 내가 알던 아빠가 아닌 것 같아 낯이 설었다. 


아빠 삶의 모든 부분을 존경하지는 않지만, 한 일터에서 40년을 쉼없이 보낸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정도는 안다. 여러가지 이유로 한 회사에서 1년 넘게 일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내 나이만큼의 많은 세월을 한 직장에서 보낸다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일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사실 우리 엄마 아빠는 내가 스무 살 때 이혼하셨다. 비록 부부의 연은 끊어졌지만 나와 동생에 관해서는 부모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도록 언제나 노력하셨다. 다소 특별한 가족 안에서 자란 나는 언제나 평범한 가족을 갖기를 꿈꿨다. 우리 가족은 가족으로 인정할 수 없었다. 내가 그리던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은 이랬다. 남편은 정해진 시간에 직장에 나가 일을 하고, 아내는 집에서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하는 것. 남편이 퇴근하면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 앉아 담소를 나누며 저녁 식사를 하는 것. 주말이면 아이를 데리고 야외로 나가 가족끼리 오손도손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 나는 그 누구보다도 진부하고 뻔하게 살고 싶었다. 내 사전에 골드미스나 딩크족은 없었다. 무조건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아서 누가 봐도 평범하고 행복한 가족을 꾸리고 싶었다. 


나의 간절한 바램 덕분이었는지 지금 나는 그토록 바라던 평범하고 행복한 가족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아빠의 퇴임식을 지켜보면서 문득 근본적인 물음이 떠올랐다. 가족이란 과연 무엇일까? 이제껏 살아오면서 엄마, 아빠, 동생과 안좋았던 순간들이 분명 수도 없이 많았었는데,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있지 않은가? 어떻게 해도 우리는 결국 가족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견딜 수 없게 지긋지긋하고 또 한편으로는 마음에 무한한 위안을 준다. 좋으나 싫으나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한 사람을 거의 평생에 걸쳐 곁에 두고 지켜보는 것이 어떤 것이고 또 어떤 것일지, 아빠의 퇴임식을 통해 많은 생각이 들었던 하루였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사진처럼 선명하게 머릿속에 남는 장면들이 있다. 아빠가 학교에서 쓰던 방이 아마 그럴 것 같다. 곳곳에 어지럽게 쌓여있는 책들, 책장을 가득 채운 LP판, 창문을 가릴 정도로 빼곡히 놓여 있는 화분들, 아빠가 직접 만들고 꾸민 좌식 테이블과 방석, 책상 한 켠에 자리한 커피포트와 다도 기기 등 아빠의 과거와 현재를 민 낯 그대로 보여주는 듯한 공간이다. 사진을 찍어 남겨둘까 잠깐 고민했는데 결국에는 찍지 않았다. 사진을 찍지 않아도 왠지 기억이 날 것 같았고, 또 사진없이 기억만으로 추억하는 것도 나름 의미 있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꽤 오래전부터 목공예와 다도에 심취해 있던 아빠는 얼마전 집 근처에 작업실을 얻었다고 한다. 딸이기 이전에 같은 성인으로서 그리고 사회인으로서, 부모와 자식이라는 복잡다단한 애증의 감정에서 벗어나 그저 아빠를 그 누구보다도 오래 지켜본 한 사람으로서, 은퇴 이후의 아빠의 삶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작가의 이전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