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건물은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야.
바람, 하중, 진동, 있을 수 있는 모든 외력을 따져서
그거보다 세게 내력을 설계하는 거야
항상 외력보다 내력이 세게.
인생도 어떻게 보면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고
무슨 일이 있어도 내력이 세면 버티는 거야.
드라마 ‘나의 아저씨’
그저 버티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시기가 내 인생에 몇 번 있었다. 그 중 한 번이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 대학교를 졸업하고 난 직후였다. 졸업하기 전에 인턴으로 들어갔던 회사에서 예상치 못하게 정규직 전환에 실패하면서, 나는 졸업과 동시에 낙동강 오리알 같은 신세가 되었다. 첫 번째 실패의 경험이 너무나도 강렬해서 나는 그 뒤로 수 개월을 방황했다. 간신히 마음을 다잡고 다른 여러 회사에 원서를 넣었지만 결국에는 잘 되지 않았고, 나의 자존감은 끝없이 낮아져만 갔다. 취업과 거리가 먼 불문과를 나왔다는 것 말고는 딱히 스펙이 부족하지도 않은데 도대체 취업이 왜 안 되는 것일까? 절박한 마음으로 나는 취업에 좀 더 적합한 인상을 만들기 위해 머리도 아나운서 스타일의 단발로 자르고 정장과 액세서리도 나름 큰 돈을 들여 새로 마련했다. 대기업에 다니는 친척 어른을 만나 슬며시 취업 청탁을 해보기도 했고, 대기업 임원이셨던 친구 아버지를 만나 나의 말투나 태도에 혹시 문제가 있는지 진지하게 여쭙기도 했다.
그러다가 간신히 취업이 되었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번역직이었다. 아마도 불문과 졸업생으로서 내세울만한 것이 외국어 밖에 없다 보니 어찌어찌 번역직에까지 지원을 했었나 보다. 사실 나는 그 회사도 사정상 오래 다니지 못했다. 그렇지만 덕분에 나는 처음으로 번역이라는 일을 접했고, 뜻밖에도 그 일이 내 평생의 업이 되었다. 그렇게 될 줄 어느 누가 알았을까?
인생의 슬픈 순간과 기쁜 순간은 항상 맞닿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슬픈가 하면 기쁜 순간이 오고, 기쁜가 하면 슬픈 순간이 온다. 나는 인생의 바람, 하중, 진동과 같은 외력에 시달리면서, 외력보다 더 강한 내력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나만의 고유한 내력을 가지게 되었다. 외력을 이기지는 못할지언정 최소한 두려워하지는 않게 되었음에 감사한다. 과거의 슬픈 나와 기쁜 나가 모이고 모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