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의 섬, 여름의 농어

by 유라

여름철 농어회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잡자마자 손질한 회를 냉동실에 정확히 30분 정도, 살짝 얼려 꺼내 먹는 것이다. 두툼하게 썬 농어회 살점엔 신기하게도 맑고 푸른 금빛이 돈다. 나는 농어회를 오물오물 씹을 때마다, 이모와 이모부를 생각한다.


이모부의 작은 배 갑판 위에는 갓 잡아 펄떡이는 농어, 볼락, 쏨뱅이, 참돔이 가득하다. 이모는 뭍과 가까운 바다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며, 큰 바위틈에 자라는 전복, 배말, 거북손을 야무지게 따서 그물망에 담는다. 이모와 이모부의 삶은, 그들이 바다에서 잡은 생선과 해산물로 차린 한 상을 닮았다.


이모와 이모부는 전라남도 여수에서 두 번이나 배를 갈아타고, 2시간 넘게 가야 닿는 외딴섬에 산다. 섬의 이름은 평도다. 주민이 약 20명 정도 사는 평도는 엄마와 이모, 이모부의 고향이다. 걸어서 섬 한 바퀴를 다 돌아도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작은 섬이다. 배에서 내리면 짐을 싣기 위해 스쿠터 한 대가 선착장에 마중 나온다. 섬의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평도에서 바라본 바다

섬에서 태어난 이모와 이모부는 동네 오빠, 동생 사이로 오랫동안 호감을 쌓았다. 잘생기고 믿음직스러운 청년과 귀엽고 야무진 처녀로 자라 끝내 사랑에 빠졌다. 파도가 세지 않고 부드러운 바닷바람이 부는 평도는 안락했지만, 이십 대의 젊은 처녀, 총각이 미래를 그리기엔 너무 좁았다. 그래서 둘은 서울로 갔다. 선한 이모부는 성실했지만 결핵을 앓았다. 힘들게 들어간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 이모부를 대신해 이모가 생계를 이었다. 마로니에 공원 옆에는 외국인 수녀원이 있었는데, 이모는 그 수녀원의 기숙사 식당에서 오래 일했다. 이모가 예비 수녀들의 밥을 안치고, 반찬을 만드는 동안 이모부는 때로는 용달을 몰고, 가끔은 부잣집 회장님의 승용차를 운전했다. 쌍문동의 작은 쪽방에서 삼 남매를 키우던 이모와 이모부는 건실함과 성실함을 무기로, 끝내 신도시 일산의 햇빛마을이라는 동네에 작은 아파트를 마련했다. 육지에 자신의 자리를 잡은 이모와 이모부는 세 남매를 결혼시킨 후 바로 살림을 정리했다. 둘은 자신들이 자란 섬으로 돌아왔다.


평도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곳, 마당을 가만히 걸으면 파도 소리가 들려오는 곳. 하지만 주민들이 모두 육지로 떠나고 방치된 집이 덩그러니 놓여있는 곳에 마음을 뺏겼다. 둘은 오래된 집을 고치고 마당 한쪽에 봉선화, 채송화, 나팔꽃을 심었다. 그리고 작은 화단을 따라 돌담을 쌓아 올리고, 마당 한쪽엔 평상을 놓았다. 평상에 누우면 잔잔한 바닷바람에 실려 온 파도 소리가 조곤조곤 말을 걸어왔다. 집 뒤편으로 가면 크고 작은 장독이 나란히 서 있었는데, 그 위에선 생선과 해산물들이 바닷바람과 햇살을 맞으며 꼬득꼬득 말라갔다. 그 옆에 있는 작은 수도가 이모부의 작업대다.

이모집1.jpg 이모와 이모부의 새 집

이모부에게는 작은 배 한 척이 있다. 그 배를 타고 섬 주변을 돌며 볼락, 쏨뱅이, 농어, 참돔, 문어 등을 건져 올린다. 생선들은 이모부의 작업대인 수도에서 깨끗이 씻긴 뒤, 이모부의 능숙한 칼 놀림에 즉각 회 쳐졌다.


이모와 이모부의 새집이 완성되고, 엄마는 나와 동생들을 처음 평도에 데려갔다. 그 날 이모와 이모부는 바다에서 잡아 올린 생선과 해산물로 한 상을 차려냈다. 밥상 한가운데에는 이모부가 그날 잡아온 푸르스름한 금빛이 반짝이는 하얀 농어회 한 접시가 놓였고 그 주변으로 간장에 조린 배말, 거북손, 전복, 해삼 등이 먹음직스럽게 쌓였다. ‘샛기’라고 불리는 섬의 뒷산에서 따온 고사리를 조물조물 무친 나물과 아삭아삭 씹는 맛이 일품인 숙주나물 옆에 화단에서 직접 키운 오이, 상추, 깻잎, 고추도 수북이 놓였다. 직접 짠 참기름을 넣은 고소한 쌈장과 소금장까지, 평도에서 이모와 이모부가 차린 밥상은 섬의 자연 그 자체였다. 평도의 바다와 산이 주는 사랑을 듬뿍 받으며 나고 자란 이들만이 차릴 수 있는 한 상이었다.


나는 물기가 남은 상추를 왼손에 펼치고, 그 위에 깻잎을 얹었다. 상 한가운데 놓인 농어회 중 가장 크고 먹음직스러운 한 점을 골라 쌈장을 듬뿍 찍었다. 오이만큼 큰 고추 하나를 꺾은 뒤, 그 위에 올리고 쌈을 두 번 접어 입에 넣었다. 입안에선 알싸한 깻잎과 물기 묻은 상추 향이 퍼지고, 곧 농어의 식감이 느껴졌다. 두툼했고, 씹을수록 단맛이 났다. 참기름 쌈장의 고소함은 덤이었다. 쌈을 씹는 박자에 맞춰 손은 더 빨라졌다. 찬사가 절로 나왔다. 그렇게 몇 번 회를 싸 먹고 난 뒤, 간장에 조린 해산물들로 눈길을 돌렸다. 간장에 조린 거북손과 해삼, 전복은 외가의 큰 행사가 있을 때만 먹는 별미였다. 짭짤하고 고소한 맛, 꼬들꼬들한 식감의 거북손은 술을 불렀다. 시원한 맥주가 벌컥벌컥 잘도 넘어갔다. 회 접시가 바닥을 드러낼 때쯤, 이모는 주방으로 가 약한 불에 끓고 있던 농어 매운탕을 가지고 나왔다. 빨갛고 진한 국물, 부드럽게 익은 농어살 덕에 걸쭉해진 매운탕에 흰쌀밥을 말아먹었다. 밥 한 공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와, 더 이상은 못 먹겠다."라는 말을 내뱉으며, 바지 버클을 풀고 말았다. 그런데 이모는 "이제 배 꺼지게 막걸리 한잔해야지" 하며 부엌 뒷문으로 나갔다. 이모는 ‘"이런 거를 핸드 메이드라 하제? 내가 직접 담근 평도 매실 막걸리"를 외치며 양은 주전자를 가지고 들어왔다. 직접 키운 매실과 쌀로 만든 수제 막걸리였다. 장독대 안에 차갑게 보관되어 있던 뽀얀 매실 막걸리가 양은 잔에 담겼고, 잔들이 부딪치며 짤랑하는 소리를 냈다. 더 못 먹겠다는 말이 무색하게 막걸리는 잘도 넘어갔다. 시큼하면서도 부드러운 막걸리, 톡톡 튀고 생활력 강한 이모를 꼭 닮은 맛이다. 그렇게 연이어 몇 잔을 마시니 몸이 점점 뒤로 기울어졌다. 배가 무거워서였을까, 술기운이 올라서였을까. 비스듬히 앉아 주변을 보니 엄마, 아빠는 물론이고 이모와 이모부도 이미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있다. ”아이고~“ 하며 드러눕기 직전이다.


손맛만큼 맛깔난 말맛도 일품이었던 이모는 매실 막걸리에 취해 섬 곳곳에 얽힌 유년의 기억을 늘어놓는다. 내가 몰랐던 엄마와 이모의 어린 시절, 이모부와의 풋풋했던 사랑 이야기들이 녹아든다. 엄마는 7남매의 막내였다. 외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고, 외할머니는 오래 아팠다. 엄마는 10살 터울의 이모를 엄마처럼 따랐다. 아픈 외할머니를 대신해 1.5t 용달 트럭에 이불, 냄비 등의 온갖 살림살이를 바리바리 싣고 엄마 신혼집에 도착한 사람도 이모였다.


사실 엄마는 남쪽 바다의 작은 섬, 평도 출신인 사실을 오랫동안 부끄러워했다. 자식인 나에게도 그랬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육지로 나가 양장점의 아가씨로 일하며 돈을 벌어야 했던 엄마. 또래 아이들이 교복을 입고 지나가는 모습을 몰래 지켜보던 엄마는 "아무도 모르는 깡시골 평도 출신인 것. 배워야 할 때 배우지 못한 것"이 부끄러웠다고 했다. 그런 엄마에게 "진짜 배움은 그런 게 아니다. 너는 삶의 지혜가 있잖냐잉. 평도처럼 이렇게 풍족하고 아름다운 고향을 가진 사람이 진짜 배운 사람이여!"라고 다독여주는 사람이 우리 이모였다. 엄마는 평도 출신의 꼬리표를 부끄러워했지만, 이모는 평도가 준 축복을 온몸으로 긍정했다. 평도에서 나고 자란 것들을 먹고 소화하며 컸고, 그 바다를 잊지 못해 돌아와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한 이모와 이모부.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엄마는 비로소 자신의 유년 시절을 지켜주었던 평도의 바람과 파도, 언덕을 사랑할 수 있었다.


이모가 평도의 생선과 해산물로 가득한 상을 차려주었던 날, 엄마는 나와 동생들을 '샛기'라는 야트막한 뒷산으로 데리고 갔다. 분교에 다니던 시절 이곳으로 소풍을 왔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언덕을 넘으며 엄마는"내가 자라온 곳을 내 자식들이 이렇게 커서 걷고 있으니, 어쩌냐이. 눈물이 날라고 한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육지에서 돌아와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이모와 이모부, 그 둘의 넉넉한 품성과 삶을 닮은 한 상을 배불리 먹고, 엄마와 이모의 어린 시절이 곳곳에 깃든 섬을 걷던 시간을. 엄마보다 딱 10살 많은 이모 역시 작은 섬을 떠나 서울에 도착했을 때,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는 콤플렉스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런 이모를 바꾼 것은 성당을 다니며 접하게 된 세계 문학 전집과 철학서였다. 이모는 그중에서도 쇼펜하우어의 <인생론>을 가장 좋아했다. 외딴섬 출신으로 어깨가 움츠러들 때마다 이모는 서양 철학자 문장에 기대, 자신을 똑바로 세웠다. 이모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어른이었다.


그리하여 내게 평생을 약속하고 싶은 사람이 생겼을 때, 나는 이모에게 주례를 부탁하려고 했다. 삶의 고단함이 우리를 지치게 할지라도, 두 손을 꼭 잡고 앞으로 걸어 나갈 용기에 대해 이모에게 듣고 싶었다. 그러나 이모는 주례는커녕 결혼식조차 오지 못했다.


가장 닮고 싶었던 사람, 저런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던 사람, 내가 아는 가장 건강했던 사람이었던 이모의 몸이 허물어졌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자신의 생에 최선을 다했던 이모가 타인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생활을 할 수 없게 됐다. 누군가 먹여주는 음식을 받아먹고, 샤워를 하려면 타인에게 알몸을 보여야 한다. 대변과 소변을 처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모는 자신의 의지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지는 병에 걸렸다. 이모의 딸인 사촌 언니는 이모의 병에 대해 '어쩌면 우리 엄마에게 가장 가혹한 병'이라고 했다. 이모는 언젠가 병간호를 하던 사촌 언니에게 "차라리 죽여주라"고 했다고 한다. 이모부와 사촌 언니, 그리고 엄마는 점점 허물어지는 이모를 보면서 어떤 마음이 들까. 그리고 그토록 자신을 사랑했던 이모는 점점 굳어가는 몸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바다에 온몸을 내맡기고, 엉덩이를 물 위에 내놓고 자유롭게 자맥질을 하던 이모의 건강함. 이모부가 배를 타고 나가 잡아 온 펄떡이는 생선을 회 쳐서 내오던 이모의 부지런함. 맥주가 떨어지고, 소주마저 동이 나면 소화에는 이게 최고라며 직접 빚은 시원한 매실 막걸리를 꺼내오던 이모의 유쾌함. 내가 아빠와 갈등하고 아빠는 내게 말 한마디 건네지 않던 때, 아빠에게 내 입장을 설득하다 끝내는 화를 내주었던 이모의 단단함. 이모는 시련이 가득한 인생도 겁내지 않고, 사랑하는 이모부의 가장 약한 면을 품고 그의 가장 빛나는 면을 갈고닦아주었던 아름다운 사람이었는데... 이모는 지금 루게릭병을 앓고 있다.


약 2년 정도 병원 생활을 했던 이모와 이모부는 얼마 전 다시 평도로 돌아갔다. 정신이 흐릿해지고 몸이 점점 제 말을 듣지 않는 시간을 통과하며 이모와 이모부는 여러 번 넘어졌다. 병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이모는 여러 곳의 병원에서 같은 검사를 반복해서 받았다. 민간요법을 내 세운 치료원을 찾기도 했다.


내가 이모를 본 것은 그 시간을 모두 통과한 후의 국립 재활원 휴게실에서였다. 이모의 머리는 짧지만 단정했고, 살이 꽤 빠져 보였다. 이모는 휠체어에 앉은 채로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우리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모 무릎에 놓인 손수건 위로 투명한 침이 흘렀다. 사촌 언니와 엄마, 나는 번갈아 가며 이모의 손수건을 새것으로 바꾸고, 입가에 묻은 침을 닦아 주었다. 이모는 임신한 내 배를 보고 작게 미소 지었다. 나는 이모의 따뜻했던 웃음을 분명히 보았다.


병은 이모와 이모부 삶의 많은 것을 바꿨다. 이모는 맛깔난 수다를 늘어놓을 수도, 유쾌하고 크게 웃을 수도 없다. 이모는 의사 표현을 하기 위해 떼를 쓰거나 운다. 이모부만이 딸인 사촌 언니도 쉽게 눈치채지 못하는 이모의 상태를 알아차린다. 이모와 이모부는 힘겹게, 그러나 꿋꿋이 둘만의 속도로 새로운 삶을 받아들였다.


그리고는 또 한 번 용기를 내서 평도로 돌아갔다. 작은 병원이라도 한 번 가려면 배를 두 번이나 타야 하는 외딴섬, 그곳으로 돌아간 이모부와 이모부의 마음을 가늠해본다. 둘의 인생이 시작된 곳, 육지에서의 치열했던 삶을 품고 돌아온 고향, 여전히 잔잔한 파도가 치고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섬, 이모부에게 모든 것을 의지해야만 하는 이모가 그 섬에 돌아가기 위해 낸 용기에 대해서 생각한다.

이모와 이모부가 병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모부가 잡은 참돔이, 이모가 고소하게 조려내던 거북손, 배말이 놓인 밥상은 차려지지 않을 것이다. 볕에 살짝 말린 뒤, 쪄낸 참돔을 놓고 "머리 드시게" "눈알 드세요" 하며 얼핏 들으면 다소 무섭고 살벌한 대화로 서로를 챙기던 모습은 더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평도에는 이모와 이모가 평생을 보내온 시간이 있고, 둘은 그 넘실거리는 파도 곁에서 가장 편안한 시간을 보낼 것이다.


이모는 위로 연결된 호스를 통해 미음을 받아먹는다. 이모부는 이모가 그것들을 소화시킬 때까지 기다린다. 이모의 식사가 끝나면, 이모부는 제 밥상을 차린다. 이모는 그런 이모부의 뒷모습을 휠체어에 앉아 바라본다. 이모부는 이모가 먹지 못하는 마른 생선들을 삼킨다. 몇 남지 않은 평도의 이웃들이 이모와 이모부의 사정을 알고 챙겨준 음식들이다. 이모만큼 손맛이 좋은 이모부가 끓인 빨간 매운탕을 혼자 먹는 모습을 이모는 가만히 지켜본다. 이모와 이모부는 더는 함께 농어회를 맛깔나게 먹고, 매실 막걸리를 마실 수 없다. 그러나 그 둘은 먹을 수 있는 것들을 먹여주고, 먹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으로 함께 식사한다. 둘의 밥상은 많이 달라졌지만, 어쩌면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모와 이모부, 둘의 시간이 고스란히 깃든 밥상은 오늘도 차려진다.

나는 평도 앞바다에서 건져 올린 생선과 해산물들이 가득한 밥상을 그리워하지 않을 생각이다. 다만 이모와 이모부의 평안하고 조용한 식사가 더 오래 지속되기를 바란다.

이모 이모부 사진.png 젊은 시절의 이모부와 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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