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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미치 Jun 29. 2022

아이슬란드, 불과 얼음의 허니문 : 재경의 서문

“Dawn is coming, open your eyes”


오래전 읽은 민경의 단편 속에서 청소년 수영선수로 나오는 주인공들은 아이슬란드로 전지훈련을 간다. 왜 하필 아이슬란드였을까. 나중에 알게 되지만 민경의 삶을 이끄는 가장 큰 동력은 예술이다. 그중에서도 음악이고 그중에서도 록이다. 민경이 가장 좋아하는 록밴드는 시규어 로스이고 시규어 로스는 아이슬란드 출신이다. 여전히 짐작일 뿐이지만 민경의 아이슬란드에 대한 관심은 아마도 시규어 로스로부터 시작된 것 같다. (물어보면 되는데 왜 짐작을 하고 있을까.)


나도 지금은 시규어 로스를 꽤 좋아하지만 그때는 아니었고 지금도 민경만큼은 아니다. 처음 알게 된 건 로로스를 통해서였다. 로로스가 데뷔했을 때 '한국의 시규어 로스'라는 평이 많았고 멤버들도 꽤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드럼을 치던 남규가 가장 먼저 좋아해서 노래하던 재명이에게 전파했다고 들었다. 로로스와 함께하던 시절 나는 벨벳 언더그라운드나 산울림 같은 음악을 주로 들었다. 시규어 로스를 좋아하게 된 건 그로부터 몇 년 뒤 여의도에서 영어학원 강사를 하던 시절로, 어느 늦은 새벽 버스정류장에서 첫 차를 기다리며 노트북으로 헤이마 DVD를 본 뒤부터다. 시규어 로스가 아이슬란드 곳곳을 돌며 펼친 라이브를 담은 영상인데 아이슬란드의 광활한 풍경과 함께 시규어 로스의 몽환적 음악이 마음속 깊이 와닿았다.


아이슬란드에 얽힌 기억이 몇 가지 더 있다. 하나는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이다. 작은 자취방에서 32인치 TV로 본 것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의 모험의 배경으로 등장한 아이슬란드의 풍광은 압도적이고 경이로웠다. 호세 곤잘레스의 'Stay Alive'를 비롯한 수록곡들도 참 좋았는데 훗날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며 듣고 또 들었다. (호세 곤잘레스는 스웨덴 뮤지션이지만 Of Mosters and Men 같은 아이슬란드 뮤지션도 OST에 참여했다.) 다른 하나는 인기 다큐 프로 '걸어서 세계 속으로'이다. 방송에서 소개된 얼음바다와 블루라군이 인상적이어서 언젠가 한 번은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여행에서 블루라군은 가봤지만 얼음바다 투어는 하지 못 했다. 아이슬란드와의 또 다른 인연은 엔야, 뷰욕, 로우 로어, 올라퍼 아르날즈 같은 아이슬란드 출신 뮤지션들인데 한 번씩 푹 빠졌던 시절이 있고, 시규어 로스를 포함하여 나라와 음악 시장 크기에 비해 세계적인 뮤지션이 많이 등장했다는 점이 신기했다. (그 비결은 훗날 아이슬란드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알게 된다.)


나는 언젠가부터 민경과 신혼여행을 가게 된다면 당연히 아이슬란드로 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고 동의된 것으로 알았는데 이 글을 시작하며 물어보니 자신은 몰랐다고 한다.) 그 생각의 원류를 따져보고 싶은데 시규어 로스, 월터 미티와 호세 곤잘레스, 걸어서 세계 속으로, 엔야와 뷰욕이 다 맞으면서도 다 아닌 것 같다. 어쩌면 민경의 단편소설 '이안류'가 아닐까? 소설이 아니었다면 아이슬란드를 둘러싼 이 모든 구구절절한 기억들이 엮일 필요도 없었을지 모르니.


결혼을 확약(?)하고 준비에 착수함과 동시에 당연하다는 듯 아이슬란드행 항공권을 예약했다. 여수 여행 중에 어떤 식당에서 갑작스럽게. 마침 영국 경유 편이어서 런던과, 나의 음악적 고향(??) 맨체스터에도 들르기로 했다. 월터 미티의 것에 버금가는 모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청첩장을 돌리기도 전부터 시작될 줄은 몰랐다. 때는 2019년 늦은 여름이었고 약속된 2020년 2월은 아직 멀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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