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타인의 고통
여자는 그동안의 결혼생활 동안 수도 없이 죽고 싶었지만 그때마다 버텼다.
우울감과 좌절감의 나날들이었지만
그저 버티며 시간이 지나기를 바라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프랑스 파리에 와서까지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이제 끝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여자는 파리의 센강에서 죽을까 말까 고민하며 깊은 절망에 빠져 있을 때였다.
'지이잉~ 지이잉~'
가장 친한 친구 수민이다.
여자는 받지 않았지만 이내 다시 전화가 울린다.
'지이잉~ 지이잉~ 지이잉~'
"여보세요.."
"야!! 나 없이 파리 가니 좋아? 왜 이렇게 연락이 없어?"
한 없이 밝은 친구 수민의 장난 섞인 말투.
여자는 다시 왈칵 눈물을 쏟아낸다.
".... 그럼.. 흑.... 좋지..."
"뭐야~! 너 우는 거야?? 거기까지 가서 울고 있으면 어떻게!!"
"흑.. 나 어떻게... 이제 더는 못 견딜 것 같아.."
"당연하지. 네가 지금 제정신 일 수가 없지!! 지금 너 어디야?"
여자는 자신의 불행을 가장 친한 친구인 수민에게도 최근에야 털어놓을 정도로
그동안 혼자 모든 시간을 감내하려 했다.
그것이 일종의 자존심 때문인지 뭔지는 몰라도, 그녀 마음이 그저 혼자 이길 원해서였다.
"혼자 여행 갔으면 아무 생각 말고 그냥 즐기고, 맛있는 거 먹고, 내려놔! 제발 생각 좀 하지 말란 말이야."
"그래.. 그러려고 나도 노력하는데 안돼. 무서워. 두려워서 미쳐버릴 것만 같아. 죽고 싶어 수민아....”
가장 친한 친구인 수민은 여자의 어릴 적 친구다.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의 여자와는 달리 쾌활하고, 항상 자신감 넘쳤으며,
장난치는 남자아이들을 혼내주고 하던 잔다르크 같은 강한 아이였다.
집안도 넉넉해 늘 모든 걸 다 가지고 행복하던 아이.
좋은 차와 넓은 집, 고급스러운 소품과 우아함이 느껴지는 인테리어까지 친구 수민은 완벽함 그 자체였다.
여자는 한 때나마 속으로 생각했다.
'네가 내 고통을 알까?'
그래서 여자는 처음부터 더 수민에게 자신의 고민을 터놓을 수 없었다.
가장 친한 친구였음에도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내가 지금 당장 파리로 날아갈까?"
"너 남편은 어쩌고.. 이제 곧 시술도 받는다며.."
"남편이랑 시술이 대수야? 친구가 파리까지 가서 울고불고 난리인데?!"
"흑.. 나 어디부터 생각해야..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어쩌긴 뭘 어째! 토끼 같은 아이들이 있잖아~
정신 차리고 마음 강하게 먹어!! 안 그러면 내가 뺏어 온다~."
수민은 우스갯소리로 여자의 아이들을 데려간다 자주 말하곤 했다.
언제나 우아하게 밝게 빛나던 여자의 친구 수민은
산부인과 의사 남편과 결혼했지만 한참 동안 아이가 생기질 않았다.
좋다는 약들은 물론, 병원을 돌고 돌아봤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남편이 의사고 수민의 집이 넉넉하기에 망정이지 그간의 병원비만 해도 어마어마했다.
수민은 아이가 생기지 않을 때마다 실망은 했지만 그렇다고 크게 절망하는 것 같지 않았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카드를 가지고 백화점 쇼핑을 하며 새로운 아이템을 마련하고,
언제든 비즈니스석을 타고 남편 혹은 가족과 또 때로는 혼자 자유롭게 세상을 누비는 그녀였기에
수민은 언제나 행복했다.
여자는 그런 수민은 전생에 도대체 무슨 좋은 일을 했을까 생각하며 늘 부러워하며 비교하곤 했다.
자신에게는 언제든 아이들이 껌딱지처럼 붙어 있었고, 본인의 생일도 잊을 만큼 시댁의 제사며 가족행사를 챙겨야 했기에, 그저 친한 친구 수민의 sns를 들여다보며 대리만족으로 마음을 달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런 수민이 여자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이야기한다.
"니 아이들 말이야.
난 노력해도 안되는데 넌 예쁜 아이들이 둘이나 있잖아~
솔직히 얼마나 부러운 줄 알아?"
"아이들..?
수민아.. 넌 이미 많은 걸 가졌고, 아이도 곧 생길 거야 걱정 마~"
"아니.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알았어.
쇼핑, 여행..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단 말이야...
아이를 가진 지나가는 가족들의 행복한 웃음을 볼 때, 시끌벅적한 너희 집을 다녀와 텅 비고 조용한 우리 집을 들어올 때마다 너무 슬펐어.."
"몰랐어. 수민이 네가 너무 씩씩해 보여서.."
"그래 바보야~ 다 자기 아픔이 가장 중요하고 가장 커 보이는 거야!
죽고 사는 건 네가 선택할 수 있잖아~ 그러니까 용기 내서 살아~ 아이들 두고 그런 생각 하는 거 아니야!
네가 어떻든 난 널 응원하고 옆에 있을게."
여자는 수민의 이야기를 들으며 처음으로 그녀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여자의 본인의 고통만 보고 생각하느라, 수민뿐만 아니라 주변을 돌아보지 않았구나 싶었다.
수민이 언제나 행복했다는 건 여자의 큰 착각이고, 거짓이었다.
‘다른 누군가도 나와는 다른 문제로 힘들구나’ 생각하니 여자는 마음이 왠지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그리고는 죽고 싶었던 자신의 모습을 한심해하며 피식 웃었다.
'그래 아이들...
내가 죽으면 아이들은 무슨 죄야?'
"수민아.. 고마워. 그리고 너무 미안해.
내가 힘들어서 너 힘든 건 생각 못했어 정말.."
"괜찮아~ 그래도 나 아이 갖는 거 포기하지 않을 거니까!!
언제나처럼 오뚝이 같이 밝게 웃는 친구 수민이다.
여자는 그런 긍정적인 수민이 부럽고 아름답다 느꼈다.
"보고 싶다 친구야~ 그러니까 울고 있지 말고 내가 가보라고 했던 몽생미셸 투어나 가봐~"
"응.."
"가서 근사한 사진 찍어 보내줘~ 이건 미션이야!! 알겠지?"
전화를 급히 마무리 한 여자는 한참을 멍하게 프랑스 파리의 센강을 바라본다.
정신을 차리고 둘러보니 해가 참 예쁘게 지고 있었고 하늘은 온통 핑크빛이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가 참 좋다는 말, 진짜 친구를 알 수 있다는 말이
참 마음에 와 닿는다 생각하던 여자는
죽음의 순간에 전화해준 친구 수민이 너무도 고마웠고 하늘에 감사했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여자는 다시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며 새벽에 출발하는 몽생미셸 투어를 예약한다.
'그래 아무 생각 없이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