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설득하지 않기로 했다
한때 나는
동기부여가 모든 것의 시작이라고 믿었다.
마음이 움직여야 행동이 나오고,
의욕이 생겨야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언가를 앞두고
늘 나를 설득했다.
지금 해야 한다고,
지금 아니면 안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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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상했다.
설득이 길어질수록
행동은 오히려 늦어졌다.
동기부여는
생각보다 조건이 많았다.
기분이 좋아야 했고,
확신이 있어야 했고,
이게 왜 중요한지
납득이 되어야 했다.
그 조건이 맞지 않는 날에는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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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이런 질문이 들었다.
왜 나는
매번 나를 설득해야만
움직일 수 있을까.
그리고 곧 알게 됐다.
그건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니라,
내가 그렇게 살도록
스스로를 설계해 왔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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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부여는
행동의 출발점이라기보다
뒤따라오는 감정에 가깝다.
움직이고 나서 생기기도 하고,
가끔은 아무 이유 없이 오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그걸 항상 먼저 와야 하는 조건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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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방향을 조금 바꿨다.
동기부여를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대신
동기부여가 없어도
할 수 있는 행동만 남겼다.
•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것
• 나를 설득하지 않아도 되는 것
• 의미를 묻지 않아도 되는 것
그건 거창한 계획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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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잘 써질 것 같은 날이 아니어도
두 문장은 쓴다.
몸이 가볍지 않아도
신발은 신는다.
성과가 보이지 않아도
오늘의 최소 단위는 지킨다.
그 이상은
마음이 따라올 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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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식의 좋은 점은
자책이 줄어든다는 거다.
의욕이 없다고
스스로를 문제 삼지 않게 된다.
오늘은 이런 날이라고
그냥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상태가
가장 오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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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부여에 기대는 삶은
늘 출발선 앞에 서 있다.
반면
구조에 기대는 삶은
이미 걷고 있다.
빠르지는 않아도,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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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지금도
“마음이 안 움직여서”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면,
이 질문을 바꿔보면 좋겠다.
“지금 이 상태에서도
할 수 있는 최소 행동은 무엇일까.”
동기부여는
와도 좋고,
안 와도 괜찮다.
계속 가는 데에는
꼭 필요하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