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무너졌던 이유를 이제는 안다
나는 한때
의지를 꽤 신뢰하는 사람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버틸 수 있고,
참아내기만 하면
결국 넘어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힘들 때마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조금만 더 참자.
이 정도는 견뎌야 한다고.
나는 그걸
의지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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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한 감각이 쌓였다.
의지가 강해질수록
삶이 나아지기보다는
오히려 더 메말라갔다.
의지가 강해지는 것아 아니라
참을성이 바닥난 것이다.
버텨낸 날이 늘어날수록
회복은 줄어들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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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나는
의지를 ‘선택하는 힘’이 아니라
참아내는 능력으로 쓰고 있었다.
지치지 않게 만드는 힘이 아니라,
지쳐도 계속 버티게 만드는 힘.
그건 의지가 아니라
인내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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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인내가
지속 가능한 에너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참아내는 방식으로 움직이면
몸보다 마음이 먼저 닳는다.
그런데 나는
그 마모를 성장이라고 착각했다.
무너질 때마다
더 단단해지지 못해서라고
나를 몰아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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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깨달았다.
내가 계속 무너졌던 이유는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의지를
잘못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의지는 연료가 아니라
조건이 좋은 날에만 작동하는
보너스에 가깝다.
그걸 매일의 기본값으로 쓰는 건
너무 가혹한 설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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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나는
의지를 중심에서 내려놓았다.
참아내는 힘에 기대지 않는 구조,
컨디션이 바닥이어도
움직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의지가 생기면 더 가고,
없으면 최소만 한다.
그 방식이
훨씬 오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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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를 믿지 않게 된 건
포기가 아니다.
오히려
현실을 인정한 결과다.
나는 매일 강한 사람이 아니고,
매번 참아낼 수도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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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의지를 설계에서 제외했다.
대신 남긴 건
구조였다.
오늘 할지 말지를 묻지 않아도 되는 구조,
결심하지 않아도
다음 행동으로 이어지는 구조.
그 안에서는
참아내지 않아도
조금씩 앞으로 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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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지금도
스스로에게 이런 말을 하고 있다면,
“조금만 더 참자.”
그 말 대신
이 질문을 던져보면 좋겠다.
“참지 않아도
움직이게 하려면
어떤 구조가 필요할까.”
의지는 없어도 된다.
구조가 있으면,
삶은 굴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