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영화 <캐롤>이 말한 우아하고 뜨거운 사랑에 대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까지 걸리는 시간, 그리고 사랑에 빠지는 데 필요한 것들. 과연 얼마나 길고 뭐가 필요할까? 이 질문에 무수한 답이 나올 것이고 많은 것이 거론될 것이다. 단 하나의 정답이 어디 있으랴. 다만 그 많은 것들조차 어쩌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고 보여주는 영화가 있다. 토드 헤인즈 감독의 영화 <캐롤>도 그 중 하나다.
<캐롤>에서 주인공 캐롤(케이트 블란쳇)과 테레즈(루니 마라)를 보고 있자면 사랑의 이유와 과정에 많은 것이 필요할까 싶다. 둘은 첫눈에 서로를 알아보고, 서로에게 마음이 끌린다.
캐롤은 남편과 이혼 소송 중이다. 딸의 양육권을 놓고 남편과 갈등 중이다. 테레즈에겐 유럽 여행과 결혼을 제안한 남자친구가 있다. 하지만 캐롤은 남자친구에 대한 확신이 없다.
각자의 삶에서 방황을 겪던 두 사람은 천천히 가까워진다. 다른 삶을 살던 캐롤과 테레즈는 우연한 계기로 만나 점차 서로 알아간다. 우아하면서도 뜨겁게 마음을 키워가던 둘은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 먹는다.
함께할 때 빛나는 두 사람
영화 <캐롤>이 그려내는 1950년대의 미국 뉴욕은 어둡고 쓸쓸하다. 각자 웃고 떠들고, 파티를 열고 어디론가 걸어가는 사람들. 왁자지껄한 풍경 속에서도 테레즈는 혼자다. 남자친구는 계속 사랑을 고백하지만 진심인지 아닌지 모를 지경이다. 그러던 어느날 나타난 중년 여성 캐롤에게 테레즈는 마음을 빼앗긴다.
영화의 줄거리는 천천히 상대를 알아가는 캐롤과 테레즈를 보여준다. 사랑에 빠져드는 둘은 열정적이되 서두르지 않는다. <캐롤>은 덤덤한 장면들로 그 과정을 설득력있게 그려낸다.
"그 사람에게 끌리거나 끌리지 않는 이유는 알 방법이 없어. 우리가 아는 건 그 사람에게 끌리느냐 아니냐 뿐이야. 서로 부딪히는 핀볼들처럼."
캐롤의 남편은 캐롤에게 강요한다. 자신의 아내이자 딸의 엄마로 남으라고. 결혼과 유럽 여행 계획을 두고 테레즈도 남자친구의 독촉을 받기는 마찬가지다. 특정 관계에서 역할을 강요당하는 캐롤과 원하지 않게 빠른 속도의 관계를 요구받는 테레즈가 남성에게 질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남성 중심적인 관계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마저 쉽지 않다. 여성이 여성과 만난다는 이유로 캐롤과 테레즈는 주위의 편견 섞인 시선에 시달린다. 영화 <캐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있을 때 빛나는' 두 사람을 비춘다. 같이 있는 순간 평화롭고 따스한 햇살이 쏟아지는 장면은 둘이 다른 남성에 의해 시달릴 때 불안을 자극하는 음악이 깔리는 것과 대비된다.
눈빛으로 사랑을 말하는 영화
영화 <캐롤>에서 주인공 두 사람은 대사보다 눈빛을 더 많이 주고받는 듯하다. 마치 대화가 아니라 서로를 바라보는 모습으로도 충분히 사랑을 묘사할 수 있다는 듯이.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그랬던 것처럼 케이트 블란쳇은 농염한 매력을 발산한다. SF 영화 <그녀(Her)>에서 테오도르의 부인으로 나왔던 루니 마라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물기 머금은 차창 밖으로 보이는 희뿌연 풍경, 어디로 달리는지도 모를 자동차 안. 우리네 삶도 캐롤과 테레즈가 탔던 자동차같은 공간은 아닐까.
영화 <캐롤>은 '새로운 사랑을 찾거든 그 기회를 잡으라'고 말한다. 함께 있을 때 자신의 마음이 움직이는 사람이라면, 놓치지 말라고 말이다. 두 여성이 보여준 사랑 이야기가 말하는 것은, 아마도 그런 것 같다. 사랑에 필요한 것은 단 하나, 서로를 알아보는 것뿐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