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안원구 전 대구지방국세청장과 구영식 기자의 <국세청은 정의로운가
다음 글은 <오마이뉴스> 기사로도 발행됐습니다.
최순실 일가가 해외로 빼돌린 재산을 추적하는 인물이 있다. 그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일한 바 있으며, 이명박 정부에서 '도곡동 땅 실소유주 MB 문건'과 관련해 고초를 겪고 자리에서 물러난 사람이다. 바로 전직 대구지방국세청장 출신인 안원구씨다.
구영식 : "그래서 최순실 일가의 재산이 10조 원 대에 이른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안원구 : "그 이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통칭 최순실 일가 재산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그 재산의 연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중략) 최순실은 독일에 1992년도부터 유벨이라는 회사를 시작으로 유한회사를 수백 개 만들어 놓았다. 한국 회사에서 주로 그 회사들로 자금이 나간 것으로 보이는데, 한국 회사와의 무역거래로 위장한 정황도 있고, 한국 법인이 독일에 투자해서 독일 법인을 만들기도 했다." (본문 83~85쪽 중에서)
지난 3월 박영수 특검이 발표한 최순실 일가의 재산 규모는 최소 약 3000억 원에 이른다. 하지만 이마저도 국세청에 신고된 신고가 기준의 부동산과 금융자산에 불과하다고 한다. 독일에 가서 안원구씨가 알아낸 바에 따르면 10조 원 이상에 이를 수도 있다는데 실로 충격적인 내용이다.
지난 9월 발간된 책 <국세청은 정의로운가>는 구영식 <오마이뉴스> 기자가 안원구씨를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구성됐다. 안원구씨는 그의 책에서 최순실과 재벌 일가의 다양한 부정 축재의 사례를 거론하면서, 최순실 일가의 재산 환수작업이 '박정희의 낡은 유산을 청산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평가할 때 국가경제를 견인했다는 공이 그의 과에 비해 더 많이 부각되어 왔다. 박정희 정권에서 국가경쟁력을 키운다는 미명 하에 국가가 정책적으로 지원해 재벌이 탄생했는데, 끊임없이 제기되는 의혹처럼 재벌의 재산 속에 박정희 자금도 포함되어 있다면 박정희를 둘러싼 역사적 평가뿐만 아니라 재벌의 존재도 뿌리부터 흔들릴 수 있다. 일부 재벌들이 박정희의 자금을 관리해주고 있었다는 것까지 사실로 드러난다면 엄청난 역사적 사건이 아닌가." (본문 97쪽 중에서)
종교인 과세에 관한 전직 지방국세청장 일침 "종교인은 우리 국민 아닌가?"
구영식 기자가 묻고 안원구씨가 답하는 과정에서 최순실 일가의 재산 추적 과정, 국가가 몰수할 수 있는지 따지는 부분은 상당히 흥미롭다. 또한 두 사람이 얘기하는 도중에 재벌이 재산을 물려주는 데 이용되는 공익법인의 문제점과 해결책도 제시된다. 본문 전체를 읽으면서 막연하던 국세청의 역할과 내부 구성까지 상세하게 엿볼 수 있다.
국가 재정을 조달하는 기관으로서 국세청이 세금을 징수하고 체납자와 모범납세자를 가려서 채찍과 당근을 주기도 한다. 규정에 따라 세무조사를 벌이고 올바른 세금 납부가 이뤄지도록 장려하기도 한다. 단순한 업무를 하는 곳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지난 역사적 사건을 보면 국세청의 막강한 권한이 드러난다. 이 과정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태광실업 세무조사 뒷얘기, 최순실 일가의 재산 은닉 방법, 삼성과 국세청의 유착 관계까지 언급된다.
선거 때마다 수면으로 떠오르는 부자 증세에 관한 저자의 주장도 볼 수 있고, 최근 화두로 떠오른 종교인 과세에 대한 부분도 빠짐없이 나온다.
구영식 : "세금의 사각지대 중 하나가 종교인들이다. 종교인 과세 여부를 놓고 논쟁이 많이 벌어졌는데 어떻게 보나?"
안원구 : "종교인은 우리 국민이 아닌가? 종교인도 똑같은 국민이다. 이념과 종교의 차이가 국민이냐 아니냐를 가르는 기준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인에게 과세를 하지 않는 이유는 종교인은 사업을 해서 소득을 얻는 사람이 아니라는 논리에 근거한다. (중략) 사실 그동안 종교단체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고, 종교단체가 갖는 정치적, 사회적 특수성 때문에 국세청에서 강력하게 과세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소득이 있으면 세금을 내야 하는 국민개세주의 원칙에 따라 종교인도 국민인 이상 세금을 내야 한다." (본문 142~143쪽 중에서)
책의 내용에 의하면 해외로 재산을 빼돌리는 경우가 국내에서도 많아졌는데, 자금을 빼돌리는 곳을 공식적으로 '조세피난처'라고 하고 은어로는 '저수지'라고 표현한다고 한다. 이어 안원구씨는 해외재산 은닉을 파악하는 데 현행 제도로는 한계가 있다며 "각 대사관에 세무공무원을 배치해 정보수집활동을 벌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깝고도 먼 국세청, 과연 정의로운가?
소득이 생기는 국민이라면 개인 누구나 세금을 내야 한다. 이런 '국민개세주의'를 바탕으로 많은 사람이 세금을 납부하는 현실에서, 국세청은 국민에게 '가깝고도 먼 기관'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책에서 안원구씨는 '부마 항쟁'과 '박근혜 탄핵'을 이끌어낸 촛불민심의 기저에 납세자의 반발이 있다고 주장한다. 국민에게 피부에 직접 와 닿는 세금정책이 역사를 바꾼 거라는 주장은 꽤 솔깃한 부분이다.
'세금'이라고 하면 일단 부정적인 인식이 깔리기도 하는데, 이에 관해 안원구씨는 그런 측면이 있다고 인정하면서 "납세자의 권리를 제한하지 않고는 국가 운영에 필요한 재정수입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세법 용어가 난해하고 설명도 복잡하다는 이유도 덧붙인다. 그러면서 국세청이 국민에게 더 친근한 기관이 되기 위한 나름의 해법도 제시한다.
안원구씨는 "탈세의 심리에는 탐욕이 자리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스웨덴처럼 세금이 복지혜택으로 국민에게 돌아가면 인식이 바뀌고 세금납부를 대하는 태도도 바뀔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책의 전체 내용을 돌아보고 마무리하는 부분에서는 제목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과연 국세청은 정의로운가? 국세청장이 검찰조사를 받거나 고위직 인사 문제가 자주 제기되고 '세피아'까지 언급되는 시점에서 이 질문에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저자 안원구씨는 이렇게 말한다. 상식적이고 원론에 가깝지만 현직 국세청 인사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일 것이다.
"국세청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큰 사건의 중심에는 국세청이 많이 등장해 왔다. 특히 정치적인 큰 사건에는 항상 돈이 연관되어 있다 보니 국세청이 도구로 자주 이용되어 왔던 것 같다. 정치적 회오리에 휘말리면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정권이 바뀌면 국세청장은 반드시 스크린 당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일해야 한다." (본문 273쪽 중에서)
덧붙이는 글 | <국세청은 정의로운가>(안원구, 구영식 공저/ 이상 펴냄/ 2017.9.11/ 1만5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