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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수 Jul 31. 2017

경기보다 더 중요한 건, 경기 이후를 받아들이는 것

UFC214 대회를 보고 나서 든 생각들

한국 시간으로 7월 30일 오전에 UFC214를 봤습니다. 웰터급, 라이트헤비급, 여성 페더급까지 하루에만 무려 세 번의 챔피언 타이틀 경기가 있어서 기대하던 대회였어요.


20대 중반까지 보다가 UFC를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최근 다시 UFC를 보게 된 건, 헬스장에서 러닝머신을 뛰다가 짧은 시간 집중할 거리를 찾던 중이었습니다. 1라운드에 5분, 보통 3라운드에서 5라운드로 진행되는 경기는 40분 안팎으로 러닝머신을 뛰는 제게 딱 맞았죠.


UFC214를 기다린 이유 중 하나는 '라이트헤비급 강자' 다니엘 코미어와 존 존스의 대결이 메인이벤트였기 때문입니다. 레슬러 출신으로 강자를 무너뜨리면서 챔피언이 된 선수 다니엘 코미어, 그리고 다니엘 코미어에게 유일한 패배를 안긴 선수 존 존스의 재대결이었습니다.


둘은 과거 맞붙었는데, 당시 존 존스가 승리했습니다. 이후 존 존스는 음주 뺑소니와 금지약물 적발로 챔피언 자격이 박탈됩니다. 타고난 신체조건이 좋고 실력이 뛰어나서 최연소 챔피언에 오르지만, '타락한 천재'라는 소릴 들어야 할 정도로 망가졌죠.


이번 경기는 둘 중 하나의 결말로 끝나게 될 시나리오였습니다. '유일한 패배를 뒤집을 설욕전'이나 '타락한 천재의 챔피언 벨트 탈환'이었죠. 어느 쪽이든 격투기 팬이라면 흥분할만한 소식일 겁니다. 저는 '타고난 천재'보다 '노력파'에 가까운 다니엘 코미어를 응원하게 됐습니다.


둘은 경기 전부터 감정싸움을 이어갔습니다. 이전 대결에서도 그랬듯이, 경기 전 개체량 상황에서나 기자회견에서도 티격태격 말싸움을 계속했습니다.


"난 누구처럼 술에 취하지도 않았고, 차는 집에 잘 주차돼 있다. 지난 2년간 경기도 못 한 사람이 아니라 내가 챔피언이다."

"넌 그냥 뚱뚱한 레슬러야."


'진정한 챔피언'이 되기 위해 서로 꺾으려는 두 선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피할 수 없는 대결. UFC에서도 이를 잘 이용해서 홍보하는 듯했습니다.


경기 하이라이트 보기 


경기는 2라운드까지 팽팽했는데, 3라운드에서 나온 '번개 같은 하이킥' 한 방이 승패를 갈랐습니다. 승자는 챔피언 박탈의 불명예를 딛고 돌아온 '문제아' 존 존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패배하고 나자, 다니엘 코미어는 옥타곤 위에서 울음을 터뜨리고 맙니다. 오랫동안 기다린 대결이 자신의 패배로 끝난 것이 억울했는지, 눈물만 흘리는 게 아니라 거의 흐느껴 우는 수준이었습니다.


"두 번이나 졌다면, 이젠 라이벌도 아닌 거겠지."


패배 직후 심정을 묻는 해설자가 마이크를 내밀자, 다니엘 코미어가 한 말입니다. 경기 결과에 크게 실망한 그는 몹시 걱정될 정도로 감정의 동요를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경기가 끝난 다음날, 다니엘 코미어는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립니다. 존 존스의 승리를 축하하고 존 맥카시 주심에게 사과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경기 직후 결과에 실망해 심판의 손을 뿌리치는 행동을 보였기 때문인데요. 애석한 결과에도 상대 선수와 심판, 주최 측에 사과하고 자신의 태도를 돌아보는 코미어의 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결국 본인의 멘탈은 본인이 추슬러야 하는 법이겠죠.


무엇보다 눈에 들어온 부분은 "이건 싸움이고 뭐든 일어나지(It's a fist fight and things happen)"라고 쓴 문장이었는데요. 마침내 덤덤하게 패배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씁쓸하면서도 박수칠만 한 태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 나오던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울고 미친 듯이 소리칠 수 있지만, 결국 받아들여야 해"라던 글 말입니다.


상대 선수였던 존 존스도 경기 직후 옥타곤에서 "최대의 라이벌이자 동기부여가 된 코미어에게 고맙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지난달 경기에서 목 조르기 공격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여성 선수가 링 위에서 대변을 본 사건도 있었는데요. 해당 선수가 "이런 일도 있는 법이다. 난 전사고, 다시 돌아올 것"이라 본인 SNS에 남긴 것도 떠올랐습니다.


어쩌면, '경기'보다 더욱 중요한 건 '경기 이후' 받아들이는 자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때로는 어떤 사건 자체보다, 사건 이후가 더 많은 것을 보여주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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