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동요제

by deckle edge

가끔 동요를 듣고 싶을 때가 있다. 어린아이 둘을 키우는 아빠로서만이 아니라 맑고 투명하게, 그리고 몽글몽글하게 마음을 정화하고 싶어서다.

나는 옛 동요를 참 좋아한다. '섬집아기'나 '고향의 봄', '꽃밭에서'처럼 약간은 구슬픈 가사와 멜로디의 동요는 애잔함에 눈물을 짓게 하고, 때 묻은 마음을 치유해주기도 한다.

아주 옛 동요까지는 아니더라도 1984년에 발표된 '노을(작사 이동진)'이라는 동요는 순박한 가사와 경쾌한 리듬이 어울려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든다.


"바람이 머물다 간 들판에 /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연기

색동옷 갈아입은 가을 언덕에 / 빨갛게 노을이 타고 있어요.

허수아비 팔 벌려 웃음 짓고 / 초가지붕 둥근 박 꿈꿀 때

고개 숙인 논밭의 열매 / 노랗게 익어만 가는

가을바람 머물다 간 들판에 /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연기

색동옷 갈아입은 가을 언덕에 / 붉게 물들어 타는 저녁놀"


이 노래는 평택의 성동초등학교 6학년에 다니던 권진숙 어린이가 불렀고, 작사는 해당 학교의 이동진 선생님이 하셨으니, 아마도 평택의 드넓은 가을 들녘의 서정을 노래한 것일 게다.

덧붙이면, 이 노래는 1984년 제2회 MBC 창작동요제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였다. MBC 창작동요제는 1983년부터 2010년까지 매년 5월 5일 어린이날에 개최한 생방송 동요제다. 현직교사가 작사, 작곡한 창작동요를 맑은 어린이의 목소리로 노래하는 아름다운 프로그램이었는데, 군사정권이 한창이던 1983년에 시작된 것도 놀랍지만, 2010년까지 이어졌다는 사실은 더욱 놀랍다. '새싹들이다', '노을', '종이접기', '아기염소'처럼 제목은 잘 몰라도 들으면 '아! 이 노래!' 하는 아름다운 동요들이 창작동요제에서 나왔다.


그런데 이 역사적인(아! 직업병~!!) 프로그램이 지금까지 이어지지 않는 것은 꽤 아쉬운 일이다. 자세한 내막이야 알 길이 없지만, 어떤 이유에서라도 계속될 만한 좋은 역사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쉬움을 조금 멀찍이서 보면 그럴만한 이유가 그려진다. 표절 논란과 자격 논란과 같은 잡음은 제쳐두고서라도, 창작동요를 수용할 만한 마당이 이제는 없다.

우선, 서정적인 가사가 등장할 만한 공간적 배경이 없고, 있다 하더라도 어린이들 대다수는 공감할 수 없다. 들판도 없고, 더 이상 들판에서 저녁연기가 피어나지도 않으며, 초가지붕에 열린 박은 민속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시는 곳은 보일러가 놓인 아파트이지 아궁이에 불 때는 시골이 아니다.

교사는 어떤가. 초등학교 교사는 척박한 현실 속에서 아름다운 노랫말을 만들지 못하고, 학생에게 노래를 '시키지' 못한다. 학생 보육과 학부모의 지나친 간섭, 잔무에 바쁜 선생님들은 이젠 그럴 여유가 없고 그만한 이유도 없다. 창작동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한들 승진고과에도 아무런 이익이 없지 않은가. 어쩌다 정말 뜻있는 교사가 노래 잘하는 어린이와 동요제에 나간다고 하더라도 아마 그 어린이의 부모는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 시간에 학원에 가서 영어를 배우는 게 낫다고 생각할 테니.

어린이들은 어떤가. 사실 어린이들은 잘못이 없다. 자본의 이기에 물든 부모가 동요보다는 트로트 경선에 자기 자식을 내보내는 것이니. 어린 자녀에게 반짝이 재킷을 입히고, 원하든 원치 않든 반짝이 옷을 입은 어린이는 한껏 목소리를 꺾어가며 어른들도 어려운 사랑 타령을 한다.


어른이 어린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 동요는 그 자체로는 모순이지만, 어린이에게는 고운 심성을 주고 어른에게는 서정과 순수를 느끼게 한다. 점점 각박해지고 치열해지기만 하는 요즘, 창작동요제가 부활하기를 바라는 것은 나 혼자만의 바람일까. 어린이의 맑고 고운 눈망울처럼 순수하고 아름답고, 요즘 유행하는 말로 '무해(無害)'한 것을 바라는 것이 비단 나만의 추구일까.


매거진의 이전글한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