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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결 Aug 18. 2021

배움의 과정에서 얻은 것

취직 준비를 못해서 대학원으로 도망쳤던 2년 반의 시간에서 얻은 것

돌이켜보면 애초에 취직은 생각하지도 않고 보내온 학부 생활이었다. 

대학원에 가고 싶어서라기보다는 가족 중에 회사원인 사람이 없어서 취직이라는 것이 낯설었을지도 모르고, 대학원에는 가야 하지 않겠냐는 부모님의 바람이었을지도 모르고, 대학 이후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은 내 게으름이 대학원밖에 생각하지 못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또는 마지막 일 년간 들었던 강의들에서 비로소 심리학과의 매력을 느낀 것도 컸다. 강의 내용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해보게 되고, 질문을 하게 되고, 배운 내용으로 세상을 이해해보면서 더 공부하고 싶다는 열망도 있었다. 그렇게 가장 많은 학문적 호기심을 주었던 한 강의의 교수님의 연구실로 들어가서 RA(Research Assistant, 학부 연구생을 그렇게 불렀다.)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대학원에서 지낸 시간들은 내 이력서의 "교육" 란에 한 줄을 추가해주기도 했지만, 내가 연구한 분야와 내 졸업 논문이 취직이나 직장 생활에 큰 도움이 되진 않았다. 다만 대학원에서 보낸 시간들이 지금의 나에게 영향을 준 것이 있다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찾았다.

대체로 대학원 수업들은 주마다 논문을 읽고 돌아가면서 발제하고 토론하고, 학기 말에는 작은 실험을 하고 결과를 정리해서 발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매주 영어로 된 논문을 읽고 이해하는 것은 고역이었지만 그 논문들이 시사하는 바가 이 사회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나는 (그 때나 지금이나)  "세상에 쓸모 있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던 시간들이었다.

좀 더 그럴싸하게 표현하자면 "실용적인 것"을 만드는 일에 내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싶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필요한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고, 불편한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는 어떤 것을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커진 시기이기도 하다. 논문을 읽고 쓰는 것은 즉각적인 효용 가치를 주지는 않는다고 생각해서 학업을 더 이상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취업을 해야겠다는 결정에는 학우들과 나의 경제적인 상황도 영향을 주었다. 

당시에 대학원에서 만난 사람들은 정말 공부를 하러 온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크게 나뉘었다. 

우선, 대학원 이후의 진로가 "유학"인 사람들, 인생의 업을 공부로 삼은 그들이야말로 자신에게 맞는 길 위에 서 있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연구에 진심인 사람들. 눈이 반짝이는 사람들. 실험 결과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데에 매진하는 사람들. 학자들의 이름과 그들의 논문을 줄줄이 꿰고 있는, 정말 그 세상 속에 살고 있는 것만 같은 사람들. 그런 동료들과 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나의 관심은 학문보다는 세상에 더 많이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반면, 나를 포함한 다른 무리들은 사실은 박사 과정이나 유학을 생각했지만 막상 공부하는 과정이 맞지 않거나, 경제적으로 학문을 완주할 여력이 없어서 발길을 돌려야 하는 상황들에 있었다. 그래서 석사 졸업 후의 취업은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빨리 졸업할 수 있을지, 우리 전공이 취업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고민들을 나누곤 했다. 그리고는 수업이 없는 시간에는 과외하러 다니며 춥고 더운 나날들을 대중교통에서 논문을 읽고 쓰곤 했었다.

그 시간들을 보내는 동안은 끝이 보이지 않는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느낌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굽이 굽이 높은 산들을 넘는 것보다 더 빠르고 편하게 가기 위해 그 터널을 지나왔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어떤 사람이며, 어떤 가치의 일을 하고 싶은지를 비교적 안전하게 찾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으니까.



교양 있는 사람들의 언행을 경험했다.
"대학원"의 일반적인 장점이라기보다는, "그때 함께한 나의 선배, 후배, 동료들이 있었던 대학원"의 특징일 것 같다. 


새로운 환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운 사람들인 것 같다. 

같은 분야의 세부 전공을 하기 위해 모인 우리들이지만, 랩마다 그 문화나 성격이 매우 달랐다. 

예를 들면 어떤 랩은 출퇴근을 매일 체크하며 목표 지향적으로 달려가는 느낌인 반면, 우리 랩은 기한 없고 기약 없는 연구의 마라톤을 달리는 느낌이었다. 교수님들의 연구실도 제각기 다른 스타일의 배치와 장식과 연구 자료들이 있는 것도 참 흥미로운 포인트였다. 극과 극의 스타일로 모여도, 같은 전공이라는 공통점 아래 모인 이곳에서의 경험은, 당시에는 몰랐지만 오히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더욱 참고하게 되는 교훈을 줬다. 


우리 랩 선배들은 유순하고 둥글고 끈기 있는 성향의 분들이었다. 물론 우리 교수님도 방목형 지도 스타일로 유명하실 만큼 그러신 분이었고. 그래서일까. 내 대학원 생활은 강압적인 위계 관계로부터의 스트레스는 거의 없었다. 보통 석사라고 소개하면 주변 사람들이 다들 대학원 생활이 힘들지 않았냐, 교수의 갑질은 없었냐 등등을 물어보지만 대학원에서 나의 인간성을 짓밟힌 적은 없었다. 분노와 설움의 눈물을 흘린 적도 없다. 도무지 바뀔 것 같지 않은 시스템에 무력함을 느낀 적도 없다.


학부나 대학원에서 만난 사람들은 동일한 선발 절차를 거쳐 동일한 학문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 작고 좁은 사회에 모인 우리들은 대체로 최소한의 윤리와 서로 간의 선은 지키려고 노력했었다.

간혹 말이나 감정 표현이 센 사람, 일처리 방식이 서로 달라서 소통이 안 되는 답답한 사람 등이 없진 않았지만, 어떤 일이나 사건에 대해 체계적으로 사고하고, 감정적인 대화와 이성적인 대화 모두 가능한 사람들이 있었다. 


생각의 구조나 흐름이 유사한 사람들이었고, 사용하는 단어가 비슷하며, 적어도 그 시기만큼은 인생의 관심사가 유사한 사람들이었다. 판단과 행동의 기준은 다를지언정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서로에게 있다는 무언의 "신뢰감"이 있는 집단이었다. 그리고 소위 "교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예의 바른 태도를 지닌, 서로를 인간으로 존중하는 습관이 들은 사람들이 많았다. 

어쩌면 심리학과 특성이었을 수도 있고, 어쩌면 "대학원 생활"이라는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전우애 같은 것이었을까. 혹은 우연히 모인 그 시기 우리들의 성품이었는지도 모른다.


직장 생활 6년 차에 접어들면서 요즘 무척이나 그때의 그들이, 그 집단이 그립다. 같은 언어로 같은 생각의 구조를 공유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 대화의 즐거움이란! 

사회는 대학원보다 넓다 보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그저 다름에서 그치면 "우리 사회는 다양하고 재밌어."라며 이해할 수 있지만, 상식의 선이 다르고, 윤리 의식이 다르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의 기준이 다른 사람들을 더욱 자주 관찰하거나 만나는 요즘이다. 

요즘 스트레스가 생길 때마다 대학원에서의 선후배들과 동료들이 보여준 교양 있는 언행의 장면들을 다시 떠올려본다. 그리고는 지금의 내 언행도 다시 점검해본다. 극한의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돌발 행동이나 분노 표출이 아닌 자제하고 자신을 통제하면서 묵묵히 그 길의 끝을 완주한 사람들. 그 사람들의 모습들이 내 마음속에 본받아야 할 인간성 중 하나의 좋은 예로 남았다.




학력이나 학벌이 아닌, 배움의 과정에서 배우는 사람들과 상호 작용으로 얻게 되는 것들이 분명히 있었다. 

배움의 공간에서는 지식을 쌓는 것 외에도 개인의 성향, 개인의 호불호, 사람들과의 사회적 교류로 배우는 것들이 있다.

이런 내용이 대학원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것이냐고 물어도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 만큼, 대학원은 참 독특한 공간이다. 공부를 업으로 삼은 사람들의 세상에도 그만의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함이 있었다. 

다름을 수용해야 한다는 전제 아래, 어쩌면 지켜야 할 최소의 선 마저 희미해진 이 사회에서 "교육 과정"에서 얻는 것들의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본다. 


그리고 지금 내가 속한 이 사회도, 직장인이라는 포지션도 하나의 배움의 과정임을 새겨본다.

인생 학교가 있다면, 지금의 나는 더 배우고 성장할 여지가 많은 중간 단계의 학년에 있다.

이 삶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에게 나부터 더욱 인내하고 존중하는 사람이 되어 희망의 가이드라인으로 살아보겠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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