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말고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미드필더처럼 살아온 나의 인생 방식

by Decret

초등학생 때 동네 친구들과 축구를 하면서, 저는 제가 친구들보다 조금은 잘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축구가 너무 재미있어서 장래희망으로까지 축구선수를 꿈꾸게 되었습니다. 부모님께 진지하게 말씀드렸지만, 돌아온 건 반대였습니다. 저는 하고 싶다며 눈물을 뚝뚝 흘렸고, 부모님은 “그러면 축구부 있는 학교로 전학을 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전학’이라는 말이 어린 저에게는 너무 크게 다가왔습니다. 결국 저는 그 자리에서 꿈을 접었습니다. 축구선수가 되겠다는 꿈 대신, 축구를 ‘취미’로 두기로 했습니다.


그 이후 제 학창시절은 거의 축구로 채워졌습니다. 점심시간, 방과 후, 체육대회까지 늘 축구공과 함께였습니다. 중학생 때는 친구들과 포르투갈 유니폼을 맞춰 입었고, 고등학생 때는 첼시,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을 맞춰 입고 ‘갈락티코’라는 팀 이름까지 만들어 축구를 했습니다. 꿈은 접었지만, 축구는 제 삶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제 주 포지션은 미드필더였습니다. 수비와 공격을 잇는 자리. 경기 전체의 흐름을 읽어야 하고, 시야도 넓어야 하는 포지션입니다. 중거리 슛으로 골을 넣기도 하고, 스트라이커에게 패스를 찔러주기도 하고, 수비까지 도와야 했습니다. 활동량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체력도 늘어났습니다. 무엇보다 경기를 조율해 나가는 그 역할이 참 재미있었습니다.


동네에서는 거의 지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처음으로 대회에 나갔던 날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그날 우리는 처음으로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늘 잘 맞던 호흡은 강한 상대 앞에서 엉망이 되었고, 우리는 너무 무력했습니다. 그렇게 쓰디쓴 패배를 맛보면서, 저는 처음으로 ‘겸손’을 배웠습니다.


대학생이 된 후에도 저는 축구를 놓지 않았습니다. 학교 동아리에 들어가 축구를 했고, 일요일이면 동네 조기축구회에 나가 아저씨들과 함께 공을 찼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조금 일찍 사회생활을 배웠습니다. 형님들, 인생 선배들과 함께 운동하고, 경기가 끝나면 같이 정리하고,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경험들은 군대와 회사 생활에서 생각보다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축구를 하며 만난 사람들은 정말 다양했습니다. 나이도, 직업도, 자라온 환경도 모두 달랐습니다. 그래서 같은 팀이어도 의견이 부딪히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다투기도 하고, 중재도 하면서 저는 인간관계를 배웠습니다.


저는 축구팀에서 회장도 해보고, 총무도 해보고, 구장 예약과 매칭을 담당하는 매니저 역할도 해봤고, 그냥 한 명의 팀원으로도 있어봤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보면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걸. 그런데 대부분은 자기 입장에서만 문제를 보기 때문에 갈등이 생긴다는 것도요. 그래서인지 저는 언제부턴가 다툼이 생기면 양쪽 입장이 다 이해되는 사람이 되었고, 자연스럽게 중재하는 역할을 많이 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저는 라이프코칭이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고민과 걱정을 듣고, 이해의 폭을 더 넓혀가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축구장에서 사람들을 조율했다면, 이제는 인생의 방향 앞에서 흔들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함께 정리해 주는 일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마음 건강으로 힘들어하는 직장인들. 하지만 여전히 다시 잘 살아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 저는 그런 사람들이 다시 자기 삶을 조금 더 즐겁고, 조금 더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돌아보면, 제 인생에서 축구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었습니다.


사람을 배우고, 관계를 배우고, 세상을 배우게 해준 제 첫 번째 인생 학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