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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서연 Apr 12. 2024

내가 태어난 날

나는 태어난 날을 떠올린다. 기억에 없지만 몸에는 남아 있는 선명한 그 날을. 당시 엄마는 초산이었다. 엄마는 산통으로 힘들어하다가 차라리 딱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즈음 내가 태어났다. 엄마는 우는 나를 신기해서 한참이나 바라보았다고 했다. 작고 꼬물거리는 얼굴에서 눈만큼은 특별히 예뻤고, 쌍커풀이 선명했다고 한다. 쌍커풀이 없는 엄마는 그게 신기해서 한참이나 쳐다봤단다. 그때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그 작고 붉은 덩어리가 엄마의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원수가 되리라는 것을. 그리고 엄마의 자식 중에 가장 속을 상하게 하고, 눈물 흘리게 한다는 것을. 어찌 되었든 새하얀 눈이 많이 오던 1990년 어느 날 나는 세상에 태어났다. 우주에서 제일 사랑스러운 엄마를 만난 채 말이다.      


나는 엄마 복을 타고났지만, 아빠 복은 없는 사람이었다. 아빠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는데 있다고 하더라도 폭력적으로 일그러진 기억뿐이다. 아빠가 술에 취해 집으로 와 난리를 피우는 날이면 나는 동생이랑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많이 울었고, 나는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당시에는 ‘후회’라는 단어를 몰랐지만 나는 웅크려서 무언가 생각했다. 아마도 태어난 걸 후회했던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우여곡절 끝에 이혼한 엄마는 우리를 먹여 살려야 했다. 엄마는 내가 18살 일 때부터 대전 은행동에 나와서 타로 장사를 시작했다. 타로 부스가 죽 늘어서 있는 곳에서 추우나, 더우나 가게를 열었고, 나는 대구에서 지내다가 종종 엄마가 있는 대전에 갔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그 시절의 장면이 있다. 나는 손님들 사이에 줄을 서고 있었고, 밖에서 나를 발견한 엄마는 화들짝 놀라면서 웃었다. 그 순간 나는 엄마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생물이라는 것이 확 와닿았다. 방금 타고 온 기차도 엄마의 돈이었고, 입고 있는 옷도 엄마의 시간이었다. 나는 엄마가 일하는 시간이면 피부가 따끔거렸다. 엄마의 사랑이 절절하게 느껴지고 미안해서 그 시간만큼은 뭘 해도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식으로 나는 제 속을 갈아 먹어갔다. 그래서였을까. 엄마의 사랑을 회피하고 바깥에서 사랑을 찾았다. 타인들의 인정, 호감 어린 눈빛 같은 것들을 원했다. 그리고 20대 끝자락에 와서야 허무하게 흩어지는 눈빛들을 보았다. 내 곁에는 남아 있는 사람들은 없었고, 오직 엄마 한 사람만이 나를 지탱해주었다.      


나는 30대가 되었고, 백야 같은 우울증이 찾아왔다. 낮에도 밤에도 좀비처럼 달라붙은 병은 내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우울증은 마치 내가 낳은 아이 같았다. 나는 그 아이 때문에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어느 날 엄마에게 토로했다. 엄마 내가 병신이면 어쩌지. 가만히 듣던 엄마는 말했다. 엄마가 할머니에게 물어봤는데, 설아는 그럴 일이 없대. 우리 설아는 큰 인물이 될 거래. 엄마는 모시는 조상신을 언급하며 말했고, 나는 그 말을 부적처럼 받아 들었다. 


그럴 일 없다. 나는 큰 인물이 될 거다. 영성이나 신을 믿지는 않지만 나는 엄마를 믿는다. 내가 유일하게 받은 기적이니까 엄마를 믿을 수밖에 없다. 나는 다시 한번 속으로 되뇐다. 나는 큰 사람이 될 거야. 마음속 블랙홀이 커지면서 나를 잡아먹으려고 할 때마다 블랙홀보다 엄마를 보내준 우주가 더 크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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