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트리피케이션의 주범은 누구인가?

미국 사례 연구와 정책적 함의

로컬상권 정책의 가장 큰 그림자인 젠트리피케이션 논의에서 종종 '예술가'나 '로컬 크리에이터'는 젠트리피케이션을 유발하는 '선발대(젠트리파이어)'로 지목되곤 한다. 이들이 낙후된 지역에 문화적 활력을 불어넣으면 그 매력에 이끌린 외부 자본과 중산층이 유입되어 결국 임대료 상승과 원주민의 이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미국에서 진행된 연구들은 이러한 통념에 강력한 의문을 제기하며 한국의 정책 수립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예술가는 젠트리파이어인가? 최근 연구의 반론


전통적으로 예술가들은 젠트리피케이션의 원인으로 지목되어 왔으나 최근 연구들은 그 관계가 과장되었거나 복합적임을 보여준다. 영국 Creative Industries Policy and Evidence Centre(Creative PEC)의 연구 'Creative Destruction?'에 따르면 창조 산업과 젠트리피케이션의 상관관계는 매우 미미하다. 예를 들어, 창조 산업 기업 비중이 10% 증가했을 때 젠트리피케이션 확률은 단 0.02%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 연구는 예술가들이 낮은 임대료 때문에 먼저 지역으로 이동하지만 이들이 직접 젠트리피케이션을 유발하기보다는 이후에 유입되는 고소득층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더욱 중요한 통찰은 미국 국립예술기금(NEA)의 지원을 받은 텍사스 알링턴 대학교의 연구 "Gentrification and the Artistic Dividend"에서 나온다. 이 연구는 예술 활동을 '순수 예술(Fine Arts)'과 '상업 예술(Commercial Arts)'로 구분하여 분석했다.

그 결과, 영화·음악·디자인 등 '상업 예술' 클러스터는 급격히 변화하는 지역의 젠트리피케이션과 강한 연관성을 보인 반면, 시각·공연 예술 등 '순수 예술' 클러스터는 안정적이고 느리게 성장하는 지역의 '활성화(revitalization)'와 더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즉, 모든 예술가가 젠트리파이어가 아니며 활동의 성격에 따라 지역에 미치는 영향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한국 정책에 대한 시사점


이러한 연구 결과는 한국의 로컬 크리에이터 정책에 중요한 함의를 제공한다.

첫째, '로컬크리에이터'를 젠트리피케이션의 주범으로 낙인찍는 단순한 시각을 경계해야 한다. 이들은 오히려 지역의 고유한 가치를 보존하고 활성화하는 순수 예술가와 유사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둘째, 정책은 '상업적 개발'과 '문화적 창조'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대규모 자본이 주도하는 상업적 개발은 규제와 상생 협력의 틀 안에서 관리되어야 하며 로컬 크리에이터의 창의적 활동은 그 자체로 존중받고 지원받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은 예술가나 창업가 개인의 문제가 아닌, 도시 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중기부는 로컬 크리에이터를 지원하는 동시에 이들의 활동으로 인한 이익이 지역 사회에 공유되고 기존 상인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임대료 안정화, 지역 자산화(Community Land Trust) 등 보다 근본적인 젠트리피케이션 방지책을 관련 부처와 함께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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