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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ep Oct 31. 2022

02. 초겨울의 등불

199x 년 초겨울, 나는 유치원 앞 이차선 횡단보도를 건너가고 있었다. '이제 골목 하나만 돌면 집 앞에 도착하겠다' 생각하던 차에 유치원 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00아, 차 타고 가야지! 얼른 돌아와.' 그 말에 나는 이미 다와 가는 집을 두고서 다시 이차선 횡단보도를 건너 유치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유치원 선생님과 버스를 함께 탔는데 버스는 출발하더니 가장 가까운 우리 집을 지나쳐 버렸다. 나는 속으로 뭔가 이유가 있겠거니 하고 잠자코 있었다.


 한참을 돌아 버스에 '나'와 '선생님'만 남았을 때, 선생님은 깜빡하셨다는 듯 놀라 말했다. '어머, 00아 아직 안 내렸어?'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침착하게 '네'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곤란한 듯  '어쩌지.. 어 그래 여기면 집에 갈 수 있겠지?' 하고 말씀하셨다. 나는 차에서 얼른 내리고 싶은 마음에 밖을 보지도 않고 '네, 갈 수 있어요!'하고 자신 있게 말했다. 버스에서 내린 난 당연히 길을 잃었다.


 어딘지도 모르면서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을까? 내리자마자 난 눈앞에 보이는 골목으로 덜컥 들어갔다. 그런데 막상 골목 안에 들어서니 아까의 용기는 온 데 간데 없어졌다. 갑자기 눈앞이 뿌예지기 시작했다. 집은 안 보이고 주위에 사람은 없고.. 얼마나 서러웠던지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때마침 한 할아버지가 자전거를 끌며 골목을 돌아 나오시는게 보였다. '꼬마야 길 잃었니?' 하시는 할아버지의 말씀에 속으로는 간절히 도움을 구하고 싶었으나, 그 위기의 순간에도 떠오른 선생님의 한 마디. '낯선사람 함부로 따라가면 안 된다'. 그래서 난 대답했다. '아니요!' 그땐, 참 선생님 말씀을 잘 들었다. 눈물범벅에 오열하는 꼬마가 그렇게 말하니 할아버지도 머쓱하셨는지 그냥 그렇게 지나가셨다.


 그 뒤의 중간 과정들은 잘 기억나진 않지만 여차 저차 길을 따라가다 보니 집이 나왔다. 집 현관문을 열고 보니 어머니와 누나는 태연히 커튼을 달고 있었다. 순간 어찌나 안도감이 들던지 눈가의 눈물자욱을 발견하신 엄마의 물음에도 조용히 웃음만 지어 보이며 안겼던 초겨울의 어느 날이었다.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되어 생각해보니 참 아찔한 순간이었다. 차라리 그냥 처음 횡단보도를 건넜을 때 바로 집에 갔으면 좋았을걸 굳이 코 앞에 있는 집을 두고 왜 돌아갔을까? 그리고 아이 걸음으로도 3분이 채 안 걸리는 거리를 왜 굳이 차를 타고 다니라고 했었을까? 그러고 보면 어른이 된 지금의 나도 그때의 '나' 나 '선생님'을 나무랄 처지는 아닌 것 같다. 종종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원칙과 규칙에 기대 누군갈 나무라기도 하고 스스로의 판단을 믿으면 될 걸 괜히 불안한 마음에 물어 물어 돌아갈 때가 한두 번이던가? 그러다 어느 날 한 문구를 보았다.


자등명 법등명

나의 등불을 지키자

‘너희들은 저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를 의지하라.’는 부처님의 말씀. 절로 무릎을 탁 치게 되었다. 괜히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어 남의 답지만 기웃기웃 댔던 내가 바보같이 느껴졌다. 결국엔 제 갈길 가게 될 텐데. 이 순간에도 되뇌인다. '자등명 법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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