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몽마르트르, '물랑 루즈,' 페어리쇼

by 권혜경

여행자에게 프랑스 파리는 로마만큼이나 '숙제'가 많은 도시이다!


루브르 박물관을 위시해서 오르세 미술관, 오랑주리 미술관도 부지런히 다녀야 하고, 저 멀리 개선문을 바라보며 샹젤리제도 걸어야 한다. 또 센 강 유람선을 타고 보든 가까이 가서 보든 에펠탑도 봐야 한다. 센 강에 접해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도 보고 석양 무렵 강변을 따라 저녁 산책도 해야 한다.


센 강과 시떼 섬(the Île de la Cité) 근처 생 미셸 광장(Place Saint Michel) 부근에 숙소를 잡은 이유이다. 공항에서 RER 선으로 바로 이어질 뿐만 아니라 센 강 주변 대부분의 지역을 걸어서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셰익스피어 앤 컴패니'(Shakespeare & Company) 서점도 지척이었고, 스테인드 글라스가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웠던 생 샤펠(Sainte Chapelle) 성당도 근처였다. 무엇보다 아침저녁으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센 강변으로 나가 여유롭게 오가는 배를 내려다보며 손을 흔들고 가볍게 산책도 할 수 있어 좋았다.


KakaoTalk_20260420_160818571.jpg 파리 센 강변의 유서 깊은 서점 <셰익스피어 앤 컴패니>
KakaoTalk_20260420_160818571_01.jpg 스테인드 글라스가 환상적이었던 생 샤펠 성당


생 미셸 지역에 머물면서 여러 곳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둘러보았고, 또 해질 무렵이면 센 강 주변을 거닐다가 인근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다양한 음식점들이 자리 잡고 있어서 이런저런 나라 음식들을 시도해 보는 재미도 있었다. 우리나라의 '파리 바게트' 생 미셸 지점도 있어 무척 반갑고도 신기했다.


외국 도시를 여행할 때 시간이 맞으면 가급적 공연을 하나 정도 보려고 한다. 런던에 갔을 때는 앤드루 로이드 웨버(Andrew Lloyd Webber)의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을 보았고 베로나에 갔을 때는 로마 원형극장에서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를 본 적이 있다.


파리의 경우 몽마르트르(Monmartre)에 있는 '물랑 루즈'(Moulin Rouge)의 '페어리 쇼'(Féerie Show: 요정 쇼) 공연이 유명해서 보기로 하였다. '물랑 루즈'에서 저녁 식사를 하거나 샴페인을 마시며 밤 9시 혹은 11시 공연을 볼 수 있으며, 공연 시간은 두 시간 정도였다. 샴페인/와인과 함께 밤 9시 공연을 보는 것으로 예약하였다.


몽마르트르는 파리 시내 중심지와는 다소 떨어져 있다. 아래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파리 외곽 18구에 위치하는 곳으로 해발 130m 되는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원래 이곳은 파리 시에 속하는 곳이 아니었다. 몽마르트르가 파리의 구역으로 들어온 것은 1860년대이다. 파리의 외곽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술과 여흥, 그리고 매춘을 제공하는 주점들이 이곳에 자리 잡았다고 한다.


image.png 파리 구역별 지도 (출처: https://www.parisalacarte.com)


집세도 파리 시내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저렴하였기 때문에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까지 피카소와 고흐를 위시하여 르누아르와 마네, 로트렉 등 프랑스는 물론 유럽 각지의 예술가들이 몽마르트르에 살면서 작업을 하였다. 오늘날 수많은 여행객들이 가난하지만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넘쳐났던 유명한 예술가들의 흔적을 찾아 몽마르트르를 방문하는 이유이다.


image.png 몽마르트르의 예술가 광장 (출처: https://thegoodlifefrance.com)


유럽사의 시대 구분으로 보면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 보다 엄밀하게 말하면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의 기간을 벨 에포크(La Belle Époque) 시대라고 부른다. 이는 프랑스어로 '아름다운 시절'이란 의미이다. 이 기간 동안 유럽 전체가 평화를 누렸으며, 경제와 문화가 급속도로 발전함에 따라 귀족과 부르주아 등 중상류층들이 부를 향유하던 시절이었다.


이를 뒷받침하듯 19세기말 몽마르트르에는 화려한 밤 문화가 펼쳐지는 카바레들이 생겨났다. '물랑 루즈'는 1889년 샤를 지들러(Charles Zidler)와 조셉 올러(Joseph Oller)에 의해 문을 열었다. 이들은 이미 1883년 파리 시내에 '올랭피아'(L'Olympea)라는 뮤직홀을 열어 운영 중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파리에서 처음으로 전기가 들어온 곳이 바로 이곳 '물랑 루즈'라는 사실이다. 전기가 들어옴으로써 이후 '물랑 루즈'의 시그너처가 된 빨강 풍차가 회전하기 시작하였고, 무대를 밝히는 각종 화려한 조명 장치들이 사용되었다. 그리고 카바레 뒤쪽에 정원이 있었는데 커다란 코끼리 모양의 조형물을 만들어 내부를 접대 공간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참고: https://jetaimemeneither.com). '물랑 루즈'는 1915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925년에 다시 문을 열기도 하였다.


image.png 초창기 '물랑 루즈'의 정원 모습. 거대한 코끼리 상이 자리 잡고 있다. (출처: https://www.moulinrouge.fr)


특히 이 시기 '물랑 루즈'를 알리는데 화가 툴루즈 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 1864-1901)의 도움이 매우 컸다. 로트랙은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청소년기에 양쪽 다리가 부러져 키가 자라지 않는 왜소한 체형을 가졌었다고 한다.


1889년 '물랑 루즈'가 문을 열었을 때 로트랙은 카바레를 홍보하는 포스터 제작을 의뢰받았다. 당시 많은 예술가들이 카바레의 홍보 포스터 작업을 경멸하였으나 로트렉은 그 일을 받아들여 다양한 홍보 포스터를 제작해 '물랑 루즈'를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카바레 측은 로트렉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 주었음은 물론 그의 그림들을 전시했다고 한다(참고: 위키피디아).


로트렉이 1891년에 만든 '물랑 루즈' 포스터 (출처: 위키피디아)


로트렉은 포스터뿐만 아니라 '물랑 루즈'의 장면들을 다양한 그림으로 남기기도 하였다. 특히 '물랑 루즈'의 한 장면을 그린 아래 작품 속 중앙의 구레나룻을 기른 남성은 로트렉 자신이라고 한다.


image.png <물랑 루즈에서> (1892)(출처: 위키피디아, 시카고 미술관 소재)


'물랑 루즈'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건 캉캉(can-can) 춤이었다. 캉캉 춤의 정확한 기원은 모호하지만 대략 1840년대부터 뮤직 홀에서 유행했다고 한다. 특히 다리를 많이 쓰는 고난도의 동작이 요구되는 이 춤은 계속 발전하여 1890년대에 이르면 '물랑 루즈' 등 대형 카바레 공연의 단골 메뉴로 자리 잡았다.


제인 아브릴을 그린 로트렉의 포스터 (출처: 위키피디아)

더구나 이 시기에는 전문적인 전업 무용수들이 생겨나 몽마르트르 카바레에 많은 보수를 받고 출연하는 사례가 있었는데, '라 굴뤼'(La Goulue, 대식가란 뜻)와 제인 아브릴(Jane Avril, 1868-1943) 등이 가장 인기가 많은 캉캉 무용수였다고 한다.


'라 굴뤼'는 루이즈 웨버(Louise Webber, 1866-1929)의 별명으로 무대에서 춤을 출 때 늘 손님들의 술을 마시는 그녀의 버릇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로트렉이 1891년 처음 만든 '물랑 루즈' 포스터에 등장하는 캉캉 댄서가 바로 그녀이다(위 포스터 참조).


'물랑 루즈'의 캉캉 댄서였던 제인 아브릴 역시 로트렉의 그림이나 포스터 속에 자주 등장하였다.







밤 9시가 가까워지자 몽마르트르 '물랑 루즈'의 네온사인은 한층 더 빨갛고 노랗게 피어올랐다. 공연 시간에 맞춰 도착하자 이미 많은 관람객들이 입장을 하고 있었다. 멋진 이브닝 드레스 차림의 여성 관객들이 눈에 많이 띄었고 또 그녀들을 에스코트하는 남성 관객들 역시 정장 차림이었다.


'물랑 루즈'의 홈페이지에도 공연을 보러 올 때 정장과 이브닝 드레스를 입고 오도록 권유하고 있다. 반바지나 샌들 같은 캐주얼한 차림새는 지양하도록 권장한다. 여행을 하면서 필요할 때를 대비해 원피스 한 벌 정도는 늘 갖고 다니지만 한껏 멋을 부린 여성 관객들의 모습에 비할 수는 없었다!


실내에 들어서자 붉은색과 황금빛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무대와 객석 테이블이 나타났다. 화려했던 벨 에포크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공간이었다. 그리 넓지 않은 무대를 중심으로 빽빽하게 층별로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이미 많은 관객들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로 웨이터들이 샴페인과 와인 잔을 서빙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 공연장은 대략 1,000 m²이며 수용 인원은 최대 850 명 정도라고 한다. 공간에 비해 관객을 많이 수용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image.png '물랑 루즈' 공연장 내부 (출처: https://www.moulinrouge.fr)


이윽고 쇼가 시작되었다. '물랑 루즈'의 페어리 쇼는 4막으로 진행되는 스펙터클한 무대이다. 약 100여 명 정도의 인원이 참가하는데 그중 '도리스 걸'(Doriss Girls)이라 부르는 주 무용수들은 전 세계에서 모집한다고 한다. 하룻밤 2시간의 공연을 위해 온갖 화려한 무대 의상 1,000여 벌이 필요하며, 주문 제작된 500 여벌의 구두가 필요하다. 또한 무대에 서는 무용수뿐만 아니라 음악을 연주하는 80여 명의 음악가와 60여 명의 합창단도 참가한다('물랑 루즈' 홈페이지 참조).


쇼의 1부는 '물랑 루즈'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화려한 춤과 무대로써 보여주는 공연이다. 무용수들의 체형 조건이나 외모가 뛰어났으며 무대 의상과 조명 역시 매우 화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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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png 1부 공연 모습 (출처: https://www.moulinrouge.fr)


2부는 '해적'이라는 테마로 전개되는데 매우 이국적인 의상과 춤들이 소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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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png 2부 공연 모습 (출처: https://www.moulinrouge.fr)


3부는 서커스를 주제로 광대와 마임, 저글러 등이 등장해서 다양한 묘기를 선보였고 후반부는 '물랑 루즈' 무용수들의 화려한 춤이 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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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png 3부 공연 모습 (출처: https://www.moulinrouge.fr)


4부는 과거와 현재, 또 미래로 이어지는 파리의 여성들을 춤으로 담고 있으며, 공연의 클라이맥스에 이르면 '도리스 걸'들이 추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캉캉춤"을 선보였다. 다리를 크게 올리고 무대 위를 뛰어다니는 지극히 역동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캉캉 공연이 절정으로 치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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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png 4부 공연 모습 (출처: https://www.moulinrouge.fr)


공연을 보고 나오자 밤 11시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이 다시 물밀듯이 '물랑 루즈' 안으로 입장하였다. '물랑 루즈' 밖은 수많은 인파와 택시의 물결로 넘쳐났다.


'물랑 루즈'의 빨강 풍차는 그 화려한 색감으로 여전히 밤손님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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