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간 만나
연말에 네바다 Nevada, 유타 Utah 그리고 와이오밍 Wyoming에 다녀왔다.
캘리포니아도 갔었다. 거기서 동쪽으로 오다 보니 저곳들을 지나가야만 했다.
쓰고 보니 꼭 울산, 부산, 대구를 다녀왔다고 쓴 것 같지만 저 넓디넓은 '주들 States' 면적을 합치면
도대체 얼마던가. 계산해보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는다.
시속 75마일(시속 120킬로미터)로 달리는 차 안에서 5시간 꿀잠을 자고 일어나도 잠들기 직전 달리던 '광야'를 그대로 달리고 있는.
데자뷰.
나는 이번 여정동안 어서 빨리 내 집으로 돌아가서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깨끗하게 정돈하고 나왔던 내 포근한 침대로 들어가서 '아아~' 하며 눕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타향에 있다가도 왠지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것만 같은 그런 시즌. 연말연시에 나는 왜 집에서 나와 타향을
전전하고 달리고 있는가. 이런 생각도 많이 했다.
하지만 집이 간절했던 동시에 내 마음 한구석에는 달려도 달려도 끝이 보이지 않는 이 길 위에서 벗어나거나 멈추고 싶지 않다는 이상한 '오기' 같은 것도 있었다.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이었다.
집에 도착하면 몇 년 전 봤던 영화 '노마드랜드Nomadland'를 꼭 다시 집중해서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네바다, 유타, 와이오밍, 아이다호, 뉴멕시코 주변을 달리다 보면 언제나 저 영화가 생각난다.
어디선가 여주인공(펀)과 그녀의 밴(뱅가드)을 마주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노마드랜드. 이 영화를 처음 본 건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리고 있을 때였다.
우리는 이 영화를 식구 전체가 다 같이 모여서 거실에서 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코로나를 그리 벌벌 떨며 무서워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지만 사람은 망각의 동물.
그땐 무서웠다. 건강하게 살아남아 다 같이 모여 영화도 볼 수 있구나 라며 하늘에 감사드렸었다.
영화 중간에 I'll see you down the road. 대사를 들었다. 듣자마자 멋지다고 생각했다.
이 말 너무 멋지다. 그런데 정확히 무슨 뜻이야?라는 내 질문에 아이가 나에게 최선을 다해서 설명해 주었다.
언제 어디서 만날지는 정해진 게 없어. 하지만 어쨌거나 만나긴 만날 것 같다는,
혹은 만나자는 바람... 그럴 때.
이번 여정에서 유타를 달릴 때였던가 네바다였던가.
혼잣말로 저 대사를 조용히 말해봤다. 해가 지는 광야를 바라보며. See you down the road...
운전을 하느라 못 들었을 거라 생각했던 남편이 내 혼잣말을 들었나 보다.
그가 나를 힐끗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우린 같이 있잖아. 같이 있는데"
남편의 말이 멋지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