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성당
이곳저곳 여행을 가면 그 도시의 성당에 꼭 들어가 본다.
유명한 성당도 가보고 그냥 아무 이름 없는 성당도 가보고. 문이 열려 있으면 들어가 본다.
그리고 잠깐이라도 앉아 있다가 나온다.
나는 가톨릭 교인이 아니다.이었던 적도 없고 앞으로도 가톨릭 신자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굳이 자세히 따지자면 나는 개신교- 장로교인이다. 그러나 나는 개신교인이라고 나를 분류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분류해서 뭐 하나.
나는 그냥 크리스천이다. 나는 그러고 싶다.
내 평생의 첫 번째 미사는 친척 어르신의 장례식이었다.
신촌인가 홍대 근처였나 그 부근 성당이었고 그때 나는 어렸다.
앉았다 일어났다를 많이 한다고 생각했고 2층에서 울려 퍼지던 성가대의 찬양이 아름답다 생각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성가대에서 노래를 하고 있다 생각했다.
뉴욕. 맨해튼 세인트 페트릭스 성당이었다.
빌딩숲 사이로 칼바람이 불어오는 5th Ave. 를 엄동설한 1월에 걸어서 누비다가 너무너무 추워서
몸을 녹이러 들어갔던 세인트 페트릭스 성당.
언제나 그렇듯 그 성당 안은 99% 관광객으로 꽉 들어차 있었다.
처음엔 한 10분만 앉아서 몸을 녹이고 나올 생각이었는데 밖에서 몸이 얼마나 꽁꽁 얼었던지 10분을 가지고서는 몸이 따뜻해지지 않았다. 그래서 멀뚱멀뚱 좀 더 앉아 있었는데 그때 마침 정규 미사를 시작하는 시간이 되었던가보다.
갑자기 어떤 꾀꼬리 같은 목소리의 여자가 샬랄라~ 앞으로 나와 오라토리오 같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성당 안에 있던 사람들이 급 조용해지면서 의자에 다소곳이 앉기 시작했다.
앉아있던 나는 일어나서 나올 타이밍을 놓쳐서 그냥 계속 앉아 있었다.
유명 관광지에 있는 너무 유명 대성당이라 미사 자체가 '미사스러웠다' 고는 말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뭐랄까 '미사체험' 같은 그런 미사랄까.
내가 그날 본 광경 중 잊지 못하는 것은 헌금을 걷기 위한 바구니의 모양이었는데
1-2미터쯤 되는 긴 장대 끝에 바구니가 붙어 있어서 의자의 안쪽에 있는 사람 코 앞까지 그 헌금 바구니가 도달하는 구조였다.
원시적인 방법=긴 막대기+바구니지만 멀찍이 앉아 있는 신도에게 헌금을 용이하게 할 수 있게 접근성이 좋은 바구니였고 헌금을 할까 말까 고민하는 신도에게 코 앞까지 바구니를 들이밀어 압박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기에 안성맞춤인 구조의 바구니라고 생각했다.
서울 경기권 어느 신도시 아파트 단지 안에 위치한 성당의 저녁 미사.
그 도시에 살고 있던 친구 부부를 따라 그 미사에 참석했었다.
나는 내가 이전에 경험한 두 번의 미사와는 달리 이번 미사는 정말 'local church'의 보통 미사이니 이번에야 말로 내가 '진정한' 미사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냥 뭐. 앞에서 집전하는 사제를 목사로 바꿔 놓으면 여기가 성당인지 교회인지 딱히 꼬집어서 다른 점은 없어 보였다.
굳이 찾으려면 자잘한 예전의 차이라던가 머리에 미사포를 쓴 몇몇 여인들 등등이 달랐지만 미사를 이끌고 가는 대장 '사제'에게 모두가 다 쩔쩔매는 듯한 분위기는 흡사 대형교회 목사들이 강단 위에서 뭐라도 된 양 우쭐대는 모양새와 너무 비슷했다.
명동성당 밤 9시 미사.
명동 성당은 아름답다.
여러 나라 여러 도시의 성당을 가봤지만 명동 성당은 상당히 아름다운 성당 중의 하나이다.
설교(? 천주교에서는 뭐라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를 하는 사제는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이 사제의 설교 메시지도 그리고 말하는 톤 tone도 아주 마음에 들었다.
가식이 없었다. 그래서 마음에 들었다.
나는 나의 네 번째 미사, 명동성당 밤 미사에서 비로소 진정한 천주교식(?) 예배를 처음 드렸다.
미사가 끝난 후 발딱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잠시 앉아 눈을 감고 기도를 드렸다.
아마도 나는 앞으로도 세계 어딜 가든 교회나 성당에 많이 들어가 볼 것이다.
시간이 딱 맞는다면 예배나 미사도 참석할 것이다.
목사나 사제가 집전하지 않더라도. 아니, 솔직히 말하면 사제도 목사도 없었으면 싶은 소망이 더 많다.
나는 그들이 없어도 신에게 내 마음을 털어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