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먹 다이애나 로스와 안절부절 밥 딜런
조금 긴 여행을 다녀왔다.
그랬더니 남는 것은 추억과 빨래였다.
산타할아버지 선물 보따리만큼 크고 많은 양의 빨래를 여러 번에 걸쳐 빨고 말리고를 거듭하려니 넷플릭스가 필요했다. 집중하지 않아도 되는 영상을 골라서 귀를 심심하지 않게 하려고 이 영상을 골랐다.
The Greatest Night in Pop (밑줄을 눌러 보세요)
잘못 골랐다.
이 영상에 홀딱 빠져 집중하는 바람에 빨래가 하루 늦어졌다.
We are the World. 이 노래를 모르는 사람도 있을까?
1985년. 스프링 연습장에 '데얼 컴즈 더 타임..' 이렇게 한글로 이 노래 가사를 적던 친구도 생생히 기억난다.
내 어린 시절 유명했던 거의 모든 팝가수들이 모여 이런 걸작을 만드는 과정을 사십 년이 지나 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그때 기록해 두었던 모든 자료들과 증언들과 증인들이 합쳐져서 '완결/해설판' 같은 영상이 제작된 것이 참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스튜디오에 몇 시에 도착했고 누구누구가 함께 왔고 어디에서 비행기를 타고 왔고 또 누군가는 거듭된 설득에도 오지 않았고 등등을 자세히 알 수 있는 건 사십 년 전 누군가가 기록을 해 놓았기 때문일 거다.
그리고 덧붙여 지난 40년간 풀리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내 의문점 두 가지도 이 넷플릭스 영상을 보다가 말끔하게 풀렸다.
나의 의문
다이애나 로스 아줌마는 왜 울고 있나
밥 딜런 아저씨는 왜 노래를 안 하고 우물쭈물 안절부절못하고 있나
나는 '위 아더 월드' (밑줄을 눌러보세요)뮤직 비디오를 볼 때마다 옆에 있던 사람들에게 (오빠나 언니 혹은 엄마) 똑같은 질문을 했었다.
왜 저 아줌마(다이애나 로스)는 울고 있어?
내가 이렇게 말하면 다들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 여자는 웃고 있는데 어디 울고 있어? 웃고 있잖아'
그러면 나는 또 갸우뚱했다. 아닌데. 내가 보기엔 울고 있는 것 같은데... 혼자 그렇게 생각하다 말았다.
40년이 지나 거실에서 빨래를 개던 나는 이제야 내가 맞았다는 것을 알았다.
다이애나 로스 아줌마는 다른 가수들의 리허설 때도 울고 자기 솔로 파트에서도 눈가가 촉촉했다.
레코딩이 다 끝나고 동이 트고 아침이 되어 가수들이 하나둘씩 인사를 하고
스튜디오를 빠져나갈 때까지도 끝까지 남아
"아아 나는 이 모임이 영원했으면 좋겠어. 헤어지고 싶지 않아" 라며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했다.
두 번째 의문. 밥 딜런 아저씨는 왜 우물쭈물하고 있나.
내 기억 속에 남은 우물쭈물 아저씨. 노래도 이상하게 부르는데 왜 저렇게 많은 솔로를 맡았을까 했던 의문의 아저씨.
왜 그는 그 많은 가수들 사이에 끼어 안절부절 우물쭈물하고 있는가(밑줄을 꼭 눌러보세요)
그는 밥 딜런이기 때문이다. 다큐에 나온 엔지니어도 같은 말을 한다.
'딜런은 방에 있던 사람 중에서 가장 불편을 느낀 사람이다. 그는 스티비원더 같은 노래를 하는 가수가 아니다'
난 넷플릭스 영상을 보기 전까지는 그 우물쭈물 아저씨가 밥딜런인 줄도 몰랐다. 그러나 그가 밥 딜런이라는 것을 알고 나자 많은 의문이 해소되었다.
안절부절 우물쭈물 밥딜런 아저씨를 가수 친구들이 (특히 스티비원더와 마이클잭슨, 라이오넬 리치) 옆에서 같이 연습해 주고 끊임없이 반주를 맞춰주고 노래를 함께 불러주면서 결국 그의 마음을 녹여서 노래 중 갚진 한 부분을 담당할 수 있게 도와주는 모습에 나는 감동받았다.
안절부절 밥 딜런 아저씨는 막판에 웃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과 어깨동무도 하고 인사도 나눈다.
진심은 꽁꽁 얼었던 사람을 녹일 수 있다.
어머, 어머... 세상에.. 하면서 빨래도 개지 않고 넋 놓고 위 아더 월드 화면을 보는 내 앞으로
아들 녀석이 나를 힐끔 쳐다보며 휙 지나간다.
지나가던 녀석의 얼굴 속에 '가요무대'를 열심히 시청하시고 가끔은 한 소절씩 따라서 부르기도 하시던 집안 어른들 앞을 휙 지나가던 30년 전 내 얼굴이 들어있었다.
사진들- 구글링/ IMD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