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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밤 Mar 27. 2024

셋이 친했나?

The Last Supper

1월에 밀라노에 갔었다.

Santa Maria delle Grazie 산타 마리아 델라 그라치에 성당 벽에 있다는 '최후의 만찬'을 보러 새벽부터 일어나 일찌감치 숙소에서 나와 지하철 타고 걸어 걸어 성당 앞에 도착했다.


미리미리 일찌감치 다른 사람들이 침투하기 전에 재빨리 신속하게 눈치껏 움직인다고 움직였는데도

벌써 성당 앞에는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 존재하고 있었다.

줄을 선 사람들이 구사하는 언어가 귀에 쏙쏙 잘 들어오는 것을 보니 그들은 한국인이 분명했다.

코가 맹맹하도록 추웠던 밀라노의 겨울 이른 아침이었다.




입장을 하려면 표를 구입해야 하고(미리 구입해야 한다. 현장에서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은 버려야 함)

표를 구입했으면 시간에 맞춰서 현장으로 온 후 줄을 서야 한다. 왜냐하면 한 번에 입장시키는 인원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는 어딘가로 잠시 들어가서 가방 검사를 받는다. 당연히 액체를 휴대할 수 없다.

상상해 보라. 어떤 미친 자가 나타나 벽화에 약품이라도 뿌리는 날엔. 아흑.

가방 검사까지 마치고 나면 이젠 진짜 벽화가 있는 방으로 입장을 하는 줄을 서야 한다.

입장 인원 관리는 하는 사람이 명 수를 세면서 하나, 두울... 하면서 사람들을 들여보내고 멈춰 세울 때 은근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동동 동대문을 열어라 남남 남대문을 열어라 하는 어릴 적 놀이를 할 때의 심정과 비슷했다.


예상보다 소박


입장하면 이렇게 생긴 방이 나오고 그 방의 벽에 저 그림이 있다. 안쪽에서도 입장객들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크게 떠들거나 카메라를 벽화 앞으로 많이 뻗는 사람들을 제지한다.

사람들은 알아서 조용조용 말하고 비상식적인 행동은 하지 않으려 했다.

나는 벽화 사진을 자세히 찍으려는 노력을 별로 하지 않았다.

벽화 코 앞에서 사진을 아무리 찍어봤자 어차피 마음에 드는 사진은 잘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와 저 벽화를 사진으로 결합시키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카메라 코 앞에 있는 내 못생긴 얼굴만 크게 나올 뿐일 테니까 말이다.


요한, 베드로 그리고 그 옆에 유다? 셋이 친했나 봐?


예수님 옆 브이자가 무슨 코드다 그 브이자 옆이 요한이 아니고 마리아다 뭐다 컨스피러시가 많다는데(그 무슨 책.. 그 책 때문에) 아무튼 됐고. 이 설명은 저 박물관에서 제공한 설명이니 나는 이것을 신뢰하고 싶다.

나는 유다랑 베드로랑 요한 이 세 사람의 배치를 저렇게 가깝게 했을 거라고는 예상 못했다.

적어도 유다는 그림의 배치상 어딘가 음습한 구석 쪽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수님의 오른팔 왼팔인 베드로와 요한의 그룹에 끼어 있을 줄이야.

자세히 보면 뭔가 셋이 무척 친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쏙닥쏙닥.


빵 그릇에 동시에 손을 뻗는 예수님과 유다


이런 디테일. 하아...

예수님이 힌트도 주었잖나. 요한복음에 나오던가? 내가 빵을 주는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거라고. 다들 밥 먹느라 정신이 없어서 못 봤는지. 원. 참.


폭격에 의한 충격을 대비한 모래주머니가 살렸구나


처음엔 수도원 식당벽이 허전하니 그려 넣으라는 대주교의 지시로 그려진 벽화였다.

수백 년이 흐르는 동안 수많은 풍파와 시련에 시달렸지만 그래도 살아남아 지금까지 사람들이 와서 보고 감명받는 벽화로 남아주어 다행이다.

이 벽화를 위해 애쓰고 힘썼을 수많은 조력자들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이 우러나왔다.


30년, 60년, 100년 뒤에도 보전이 잘되어 미래의 사람들이 보고 감명을 받으면 좋겠다.


photo by 푸른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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