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스럽긴
아주 먼 옛날 한국에서 띄엄띄엄 보던 'sex and the city' 시리즈를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열혈 시청 중이다.
'Friedns'와 함께 영어공부의 양대산맥처럼 이용되던 '미드' 섹스 앤 더시티.
난 이 드라마를 통해서 영어는 많이 배우지 못했는데 딱 한 가지 소망은 가졌었다.
만약 내가 언젠가 맨해튼에 가게 된다면 매그놀리아(Magnolia)에 가서 컵케잌은 꼭 먹어봐야지.라는 소망.
하찮은 듯 하찮치 않았던 그 소망은 곧 이루어졌다. 매그놀리아
컵케익은 그저 그런 맛이었다.
그래서 두어 번 먹고 나서는 매그놀리아 컵케익을 사 먹지 않는다.
더 괜찮은 컵케익이 세상엔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그놀리아는 내가 사 먹어주지 않아도 아직도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오늘 쓰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에 관련한 것이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4명의 여인들 중 내가 가장 이해 못 할 이상한 정신구조를 가진 여인. 캐리 브래드쇼.
이 여인이 you have to forgive me라고 8번을 연달아 말하자 그의 연인 에이든 씨가 치명적인 잘못을 한 이 여인을 용서해 준다.
미라클!!!!!
정확히 따지자면 you have to forgive me라고 일곱 번을 말하고 you can forgive me라고 한번 말한다.
you have to 이든 you can 이든 간에. 기적 같은 일이다.
같은 말을 8번 반복해서 상대방에게 내 요구를 받아들이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놀랍지만
그 같은 말 8번이
'나 아이스크림 좀 사줘' 8번이 아니고
'넌 (대놓고 바람을 피운) 날 용서해 줘야만 해' 8번이었는데 그게 성사가 되다니!
물론. 이것은 현실이 아니고 드라마. 허구, 상상, 판타지, 꿈, 소망, 소원, 미지의 안드로메다 같은 세상, 작가의 옹고집, 뉴욕시티의 괴상함, 배우의 혼이 담긴 연기력이 모두 배합된 상황에서 탄생된 장면이라는 것을 너무너무 잘 알고 있다.
그렇다. 나는 어느 오후 그저 빨래를 개면서, 혀를 쯧쯧 쯧 차면서,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저게 말이 되나 이러면서 이 드라마를 보고 있는 중년 여자일 뿐이다.
드라마와 현실을 구별 못하는 아주아주 아줌마는 아니라고 괜한 변명 같은 걸 하는 중이다.
이 장면이 묘하게 기분이 나쁜 이유는
뭐랄까 나도 왠지
이제껏 살면서 타인에게 저런 말도 안 되는 당당한 요구를 받아봤던 경험이 있었던 것 같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라고 딱 집어서 말할 순 없지만 분명히 저런 경험-적반하장-을 한 기억이 나기 때문이다.
나에게 싹싹 빌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오히려 떽떽거리고 눈을 부라리며 그래, 아휴 나도 지친다 지쳐.
그래 해볼 테면 해봐라. 되뇌고 곱씹고 있는 너만 손해지 나는 아쉬울 것 하나 없다. 난 편안해. 극복했어.
이런 식의 태도를 취하는 어떤 사람(들)을 분명히 살면서 만난 적이 있었던 기억이 나서 그렇다.
비단 예전의 기억뿐만이 아니고 지금도 이런 방식으로 삶을 사람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캐리 브래드쇼나 2024년에도 이렇게 사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신들은 cool하고 모든 것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꽉 차있으며 궁극적으로 자신들이 뭘 그리 대단히 잘못했는지 정말 모른다.
바로 이 부분이 언제나 나를 당황시킨다.
비록 허구인 것을 알고 있지만 드라마에서 나오는 저 여덟 번의 동일한 대사를 듣고 있자 하니
화가 스멀스멀 기어 올라와서
보송하게 말라 착착 잘 예쁘게 개고 있던 수건을 괜히 획! 발밑에 던졌다.
영어 공부는 Friends로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