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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밤 Jun 19. 2024

삼복더위에 정전이라니

청천벽력

분명히 지난주까지는 추웠다. 정말. 추웠다.

일찍 잠에서 깬 지난주 어느 평일 아침엔 뒷마당에 나가 나뭇가지를 주워 모아 모닥불을 피우고 그 앞에서 커피를 마실 정도로 쌀쌀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틀 전부터 펄펄 끓는 날씨가 시작되었다.

어제 하루 종일 집안 에어컨이 쉴 새 없이 윙윙 돌아갔고 일기예보를 보니 오늘 더 기온이 올라간다고 했다.

에어컨이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소리를 듣고 있자 하면 불안하다. 전기요금 폭탄도 걱정이지만 그것보다 더 큰 우려는 저것이 윙윙 돌아가다가 뚝! 서 버릴까 싶어서이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1950년에 건축된 집으로서 6.25 전쟁과 나이가 같고 우리 엄마보다 다섯 살 어린 집이다. 전기, 수도, 배관 등등이 다 노쇠해 있는 집이다.

집 안과 밖의 모든 것들을 살살 달래 가면서 살아야만 한다.




오늘 오전 10:45

바깥은 벌써 섭씨 30도 가까이 도달했고 에어컨은 또다시 윙윙 열심히 돌아가고 있었다.

침구를 정리하고 아침 먹은 것들을 정리하고 발바닥에 거슬리는 부스러기를 치우려 청소기 핸들에 손을 딱 얹은 순간!! 그 순간!

갑자기 진공상태에 들어간 것 같은 온 집안의 정적.

냉장고, 에어컨 소리도 공기 순환을 위해 거의 24시간 켜 두는 서큘레이터 소리도 일시에 뚝!

전자레인지와 토스터 그리고 진공청소기 거치대에서 제각각 '빼애액!' 하는 소리를 냈다.

정전.

황급히 '두꺼비집'이 있는 지하실에 내려가 온갖 버튼들을 살펴봤지만. 내가 보면 뭘 아나.

우리 집만 문제인가? 아님 다른 집들도 정전인가? 아아... 제발 다른 집들도 다 같이 문제였으면 좋겠어.

우리 집만 문제인 것은 정말 큰 문제일 테니까...

창문으로 옆 집 앞마당을 보니 옆 집 여자 N의 차가 있었다. 집에 있는 것 같아서 문자를 보냈다.

이미 N은 전기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정전을 접수했고 전기회사는 정전 신고가 많이 들어왔으니 곧바로 조치하겠다는 답을 받았다고 나에게 알려 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렇게 덧붙였다.


This is first sign of SUMMER



남편은 소식을 듣자마자 동네 커피샵으로 몸을 피하라고 했다. 오늘 엄청 더울 텐데 에어컨도 없이 어찌 지내려 하냐면서. 그러나 나는 '피신' 하지 않았다. 대신 뒷마당에 이것을 설치했다.


햇님이 주는 공짜 전기



정전이 장기화될 경우를 대비해서 솔라제너레이터를 빵빵하게 충전시켜야만 했다.

셀폰과 랩탑의 배터리가 다 방전되는 순간이 바로 재난 영화 시작이기 때문이다. 저 제너레이터가 100% 충전만 된다면 냉장고도 몇 시간은 돌릴 힘이 있을 것이다.

태양은 위대한 것. 해님이시여 고맙습니다.

정전이 풀릴 때까지 냉장고를 절대 열지 말아야지. 바깥에 나와 있는 음식으로 점심을 간단히 때워야겠다 싶어서 주위를 살펴보니 아침에 먹다 남은 베이글 반쪽이 보인다.

베이글을 씹으면서 집안의 모든 손전등들과 건전지, 보조 배터리 등등을 샅샅이 찾아 한 군데에 모아 놓았다.

그래, 난 최선을 다했어.오늘은 견딜 수 있을거야 라고 한숨 놓던 바로 그 순간.

띠띠띠.. 삐이~ 찌이~잉 하면서 집안의 모든 불이 동시에 다 켜지고 가전제품에서 온갖 삐삐 소리가 났다.


전기가 다시 들어왔다. 정전이 시작된 지 2시간 만이었다.

2시간.

혼자만의 호들갑이 좀 허무하게 끝났다.

온갖 디바이스들의 충전은 언제나 빵빵하게 미리미리 해놓자라는 교훈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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