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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밤 Oct 07. 2024

우리 집에 씨디 없어?

CD

 

우리 집에 씨디 없냐고


뭐? 남편은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뭐?”라고 대답했다.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이거, 이거 음악 시디 돌리려면 어떻게 하느냐고. 나는 또 물었다.


. 주문한지 하루만에 배달되신.
임윤찬의 씨디


나는 당황하고 있었다. 충동적으로 구입한 시디를 돌릴수가 없어서 당황했다. 진심.

한 달 뒤, 11월에 임윤찬의 연주회에 갈 예정인 나는 미리미리 공부를 하고 연주회에 가서  그의 연주를 충분히 즐기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집안 어디에서도 그의 음악 시디를 돌릴 방법이 없었다.

3년 전 이사한 후 풀지 않은 박스부터 서랍 하나하나를 다 뒤져 보았지만 그 알량한 시디 플레이어 하나가 나오질 않았다. 진정 우리 집에서는 시디를 돌릴 수 없단 말인가!


남편은 황당해했다.

집안 곳곳에 포진된 블루투스 스피커만해도 몇 개이며 노이즈 캔슬링이 장착된 헤드폰 이어폰이 몇 개인데. 갑자기 시디, 정확히 시디 플레이어를 찾으며 광분(?)하는 나를 보며 남편은 황당해했다.


아! 랩탑! 거기에 시디 못 넣나?


이 말을 내뱉자마자 후회했다. 내가 치매가 아니고서야.30년 전쯤 사용하던 삼보컴퓨터를 생각하고 저런 말을 한 건지. 아휴. 당황하다 보니 헛소리가 나왔다.

집에 데스크탑도 없는 2024년, 식구들 각자 얇디얇은 맥북을 사용하고 있으면서 무슨 시디 타령을.


2015년 현대차


차! 차에 있다!


2015년형 현대차.

우리 차에 시디 플레이어가 있다는 기억이 났다. 이 차를 운전하는 첫날부터 지금까지 시디를 슬랏에 넣어본 적도 없는 것 같다. 내가 이 차에서 음악을 듣는 방법은 언제나 블루투스 연결만이 유일한 작동 방식이었던 것이다.


임윤찬의 시디에 별 감흥도 없는 남편을 굳이 끌고 차에 탔다. 플레이어에 시디를 넣었다. 음악이 나온다.  

아아 감동이야. 세상에. 마음에 평화가 오네. 이게 시디로 듣는 거랑 음원으로 듣는 거랑 기분이 또 조금 다르거든.


대관절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의 남편이 내 옆자리에 앉아 가만히 음악을 듣고 있었다.

묵묵히 내 소란을 받아준 그가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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