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요
언제더라. 몇 년 전 어느 Sunday에 예배 반주를 마친 후 피아노 뚜껑을 덮고 돌아서던 나에게 누군가 다가와 물었다.
피아노 전공자세요?
아니요. 나는 대답했다.
아, 그러시구나
질문했던 사람은 그렇게 말하고 뒤돌아섰다.
교회에서 오랜 시간 동안 피아노 반주자였다.
서울 변두리 작은 교회였다. 피아노 전공자 같은 인재(?)는 없었다. 피아노를 칠 줄만 알아도 어디든 투입되어 봉사를 해야만 하는 교회였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된 교회 반주자 생활(?)의 첫 임무는 유치부 꼬맹이들을 위한 예배 반주였다.
유치부를 위한 예배실엔 피아노가 없었다.
발로 페달을 연신 밟아 바람을 넣어야 소리가 나는 ‘풍금‘ 이 한 대 있었고 나는 그걸 익혀서 연주를 했다.
이후 중고등부 대학부 성가대 등등 피아노 반주를 하다가 80년대 후반 개신교를 강타(!) 했던 경배와 찬양의 물결에 편승하여 교회에 신디사이저와 전자기타 드럼 등등이 들어오게 되어서
나는 피아노 연주에 더하여 키보디스트가 되었다.
헐.
난 피아노 전공자도 아닌데.
한국을 떠나 이곳에 온 후
교회 안에는 한국 유명 음대를 졸업한 피아노 전공자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버클리 음대 출신, 줄리어드 예비학교 학생들도 많이 있어서 나는 교회 피아노 근처에도 가보지 않았다.
피아노를 칠 줄 안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의 연주는 근사했다. 그들의 코드 진행은 신선하고 세련되었다.
나는 비로소 기도 시간에 눈을 꽉 감을 수 있게 되어서 좋았었다.
그 도시에서 몇 년 후 이사를 했다.
피아노를 칠 줄만 알아도 어딘가 봉사를 해야만 하는 교회가 있는 그런 도시로 이사했다.
전공자냐고 물어봤던 그분이 또 나에게 다가왔다.
정말 피아노 전공이 아니냐고 물어본다. 아니라고 대답했다.(아니 왜 이게 이렇게 궁금한 거지? 왜 또 물어보지? 내 연주가 거슬리나?)
그분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전공자라기엔 좀 갸우뚱하고 비전공자라고 하기엔 또 갸우뚱해서요. 그런데 연주가 참 좋아요. 뭐랄까 진정성이 있달까요. 진정성이 느껴져요.
얼마 후 나는 그가 한국에서 유명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또 얼마 후 나는 그 교회가 있던 도시를 떠나 이사를 하였다.
내 연주에 대해서 그분의 평가를 바란적도 부탁한적도없지만 여하튼 그분은 나를 평가했고 나는 그 평가에 감사한다.
진정성이 있다는 평가가 그저 실력이 애매~한 자들에게 애매~하게 사용되는 단어일지도 모르지만.
뭐 어떠랴. 나는 진정성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요즘도 가끔 건반을 누를때면 그 ‘진정성’ 이라는 말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