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았써 알았써
나는 이 말을 다 큰 아들에게 들었다.
같이 길을 걷다가 들었다.
나는 이 말을 듣자마자 귀까지 빨개졌다.
한 5초 정도 빨개졌다가 금방 원래 귀로 돌아왔다(그랬을 것이라고 혼자서 굳게 믿고 있다).
내가 결국엔 아들에게 이 소리를 듣고야 마는구나.
내 귀는 5초 동안 빨개졌을지 모르지만 나는 아들 녀석의 이 발언에 은근 대처를 잘했다.
"엄마, 그 옷 좀 안 입으면 안 돼?"라고 나를 구박(?)하는 말에
그치? 나도 아까부터 이 옷은 이 거리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어쩐지 나만 동동 뜨더라
라고 대답했다. 빠른 인정.
나에게는 아들의 저 말에 대꾸할 몇 가지 대답/대처할 방법이 있었다.
- 엄마 옷이 뭐가 어때서 그러냐? 난 잘 차려 입었구만. 이러면서 부르르 화낸다.
- 아, 입을 옷이 이것밖엔 없어. 입을 옷이 없다고. 이러면서 궁상을 떤다.
- 옷이라도 한 벌 사주고나 그런 말을 하던지! 이러면서 남 탓을 한다.
- 아무 말도 없이 입만 앞으로 쭉 빼문다. 이러면서 늙은 삐진 여자가 된다. 최악.
하지만 나는 저 위의 네 가지 방법 중 아무것도 고르지 않고 아들의 의견에 빠른 인정을 했다.
심지어 히히히 웃기까지 했다.
간단히 교체할 수 있는 겉옷이었기 때문에 녀석이 싫다고 한 옷을 벗어 배낭에 넣고 다른 옷으로 바꿔 입었다.
나란히 걷고 있던 발걸음과 아름다웠던 그 길과 엄마와 아들 사이 흐르던 어색한 기류에 다시 평화가 왔다.
그날의 산책에 대해 며칠 후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만약 내게 저렇게 말한 것이 아들이 아니라 딸이었다면 내 귀는 빨개지지 않았을까?
나는 딸이 없기 때문에 상상만 할 뿐 정확한 답을 얻지 못할 것이다.
만약 같은 여자 대 여자인 딸에게 엄마가 저런 소리를 들었다면
'어이쿠, 역시 딸이 있어서 좋아. 나의 부족한 코디를 봐주고 지적해 주는 딸이 있으니 나는 얼마나 행운인가!' 이럴까? 글쎄.... 알 수 없다.
그래서 또 생각을 해봤다. 내 아들이 나에게 했던 그 말. "엄마, 그 옷 좀 안 입으면 안 돼?" 이런 말을 나는 우리 엄마에게 얼마나 많이 했었던가.
딱 저렇게도 말했고 여러 가지 다양한 변종(?)으로도 많이 말했다.
분명 나는 우리 엄마에게 저런류의 말을 아주 많이 하였다.
엄마, 그 목걸이는 지금 이 옷엔 아니지
엄마, 그 바지랑 그 블라우스가 지금 어울린다고 생각해?
엄마, 너무 우중충하고 칙칙하지 않아? 뭐 상큼한 색 없어?
엄마, 너무 요란하지 않아? 뭐 고상하고 차분한 거 없어?
엄마, 그 신발은 아니잖아
엄마, 요즘 누가 이런 거 입어
엄마, 사이즈가 애매해. 맞는 것도 아니고 안 맞는 것도 아냐 이건
엄마, 톤온톤 몰라? 색깔 매치가 혼란해
몽땅 다 내가 우리 엄마한테 했던 말들이다. 글로 적어보니 하나하나가 비수처럼 뾰족하다.
나에게 저런 말을 들었던 엄마의 대응방식은 처음엔 반항(?)하고 그다음엔 자문요청이었다.
아, 이 옷이 어때서? - 이렇게 한번 반항하고
그럼 나 뭐 어떻게 입어?- 이렇게 자문을 구하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