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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밤 Sep 22. 2022

행복하라는 말

그냥 가벼운 아무말

사람들은 언젠가부터 이 '행복하세요'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이런저런 인사말로, 카카오톡 메세지, 아이 메세지, 뭔가 빈 공간이 많은 생일카드, 크리스마스 카드,

스승의 날 카드 이런 어정쩡한 공간을 채우기 위해 또는 뭐라고 끝을 내긴 내야 하는데 딱히 끝낼 좋은 말이 떠오르지 않을 때

'그럼 어쩌구 저쩌구 건강하고 행복하세요'라든가

'즐거운 생일 보내시고 오늘도 행복하세요' 많이 이렇게들 하는 것 같다.

따지고보면 이것도 유행이다.



예전에는(10-20년전) '행복하세요'가 흔한 인사말은 아니었던 듯싶은데 말이다.

생일카드엔 생일 축하나 하면 되고 스승의 날 카드엔 스승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면 되고 크리스마스 카드엔 축 성탄과 연말연시 잘 보내라는 말을 하고 끝냈지 뒤에 '행복하라'는 말을 붙이지도, 그런 말이 붙은 카드도 나는 받아보지 못했다. 

여기, 내가 지금 사는 나라에서 판매하는 카드에는 안쪽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구구절절 다 인쇄를 해 놓은 카드들이 대부분이라 나는 그런 카드 중 내가 하려던 말과 가장 비슷한 구절이 인쇄된 카드를 골라

맨 끝에 내 이름이나 써서 보내면 된다. 

물론 이름만 달랑 쓰긴 매정하고 예의 없어 보여서 두 줄 정도는 뭐라 뭐라 쓰긴 쓴다.나는.

카드나 편지지를 앞에 놓으면 머릿속이 하얗게 되며 차라리 에세이를 쓰거나 짧은 보고서를 만드는게 와이프 생일 카드를 쓰는 것보다 낫겠다는 남자들에겐 이렇게 이미 구구절절 아름다운 글귀가 인쇄된 카드가 제격인 것이다.

이런식의 카드 내용 문구 말미에 '행복하시오' 라고 인쇄된 카드는 본 기억이 별로 없고

카드 겉면에 큼지막하게 BE HAPPY 이렇게 문자로 디자인을 한 카드는 본 적이 있는 것도 같다. 




나는 "행복하세요"라는 끝맺음을 남에게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우선 나는 그 행. 복이라는 단어가 주는 모호성이 인사말로 사용하기엔 별로 적당하지 않게 느껴진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개념으로 타인에게 '행복해라' 축복의 말을 했는데 그가 추구하는 '행복' 은 내가 빌어준 '행복'과 전혀 다른, 동떨어진 다른 '행복' 일 수도 있지 않나.

어쩌면 내가 빌어준 '행복' 은 받아들이는 그가 보기엔 전혀 행복스럽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주로 상대방에게 마음으로 비는 '행복'은

잠 잘 자고 개운하게 일어나서 밥 잘 먹고 X 잘 싸고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도 두루두루 평안하고

밤에 잠자려고 누웠을 때 근심이 없는 상태를 유지하기 바란다 = 행복하세요

이거였는데

듣는 사람에게 있어서의 '행복'은

잠자고 일어났더니 천지가 개벽을 해서 갑자기 벼락부자가 되어 통장에 수십억이 찍혀있고

월화수목금 총 5대의 삐까뻔쩍한 차를 요일마다 바꿔 타고

나이를 거스르는 왕성한 체력과 무병장수의 유전자 탑재에 명망 높은 배우자와

잘 나가는 자식 최소 두어 명은 갖고 있어야만 비로소 그때 입에 올릴 수 있는 단어가 '행복' 일지도 모르니.


나도 안다.

대충 카드 맨 뒷줄에 끼워 넣기 좋은 말로써의 '행복하세요'는 이렇게나 곰곰이 생각하고 따질 일도

아니라는 것을.

그냥 허전하고 할 말이 없으니까 행복하세요~ 그러는 거란 걸.

행복하라는데 얼굴 붉힐 일도 없고 행복하라는 말에 쌍심지를 켤 사람도 없다.

"언제 밥 한번 같이 먹어요."라는 말과 무게가 비슷한 말이라는 걸

갑작스러운 자백을 하나 하고 싶다.

나는 저 '밥 한번 같이 먹자'라는 말이 무의미한 인사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아, 그럼 언제가 좋을까요라고 되물어 상대방을 당황시킨 적이 있다. 그렇다. 큰 죄를 지었다.

당황하여 흔들리던 상대방의 동공을 잊을 수가 없다. 동공을 흔들리게 만든 내가 두고두고 부끄럽다. 하지만 내가 왜 부끄러워야 하나?

밥을 같이 먹을 생각이 없는데 왜 저런 말을 하는지 아직도 명백히 완전하게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행복하세요. 그냥 깃털처럼 가벼운 아무말.

두 번 생각하지도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는 인삿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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