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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딥 다이브 Sep 19. 2023

변화를 맞이하는 이에게

Humans of daiv. 일곱 번째 이야기: 김수민

인생에서 완전히 낯선 환경에 놓여본 적이 있는가? 새로운 사람, 새로운 환경과 연을 맺는다는 건 두렵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삶에 또 다른 활력을 불어넣는다.


낯선 땅은 특히 막막한 순간에 그 진가를 발휘한다. 내가 원래 걸어오던 길을 벗어나 또 다른 도전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쥐여준다. 오늘은 4개월의 교환학생 경험을 살려 AI가 아닌 새로운 꿈을 꾸고 있는 김수민을 만나 근황을 물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

의류 벤더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의류 벤더 회사가 뭐냐면, 예를 들어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GAP(갭)’ 같은 브랜드들이 제조랑 판매를 미국 현지에서 전부 하게 되면 돈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한국의 벤더 회사에 제조를 맡긴다. 한국에서 제휴를 맺은 인도네시아 공장에 제조를 의뢰해서 완제품을 생산하고 현지 마켓으로 조달할 수 있게 하는 회사를 벤더 회사라고 한다. 얼마 전부터 거기서 일을 하게 됐다.



원래 의류 쪽에 관심이 있었나.

처음부터 벤더 회사로 가고 싶었던 건 아니다. 원래 인공지능이랑 리트 두 가지를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둘 다 잘 맞진 않았다.


본 전공이 문헌정보학과인데, 데이터 쪽을 같이 배울 수 있는 학과다. 원래부터 이쪽에 뜻이 컸던 건 아니고, 인문과학 계열로 입학해서 세부 전공을 택해야 했다. 당시에 인공지능이랑 데이터사이언스 쪽을 배울 수 있다고 해서 입결이 높았는데, 남들이 좋다고 하니 선택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다이브 들어가기 전에 데이터 관련 전공 수업을 여러 개 수강해 봤지만, 이 분야에 대해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의 관심은 있으니까 다이브 활동을 시작했는데, 코딩해서 뭔가를 만들어 낼 때 성취감은 있지만 엄청난 흥미나 소질이 있다고 느끼지는 못했다. 내 적성이 아니라는 생각에 더 공부하진 않았다. 오히려 다이브에서는 매거진팀으로 활동한 것이 가장 재밌기도 했고, 나에게 잘 맞았다.


그러고 나서 리트를 준비했다. 리트는 항상 머릿속에 있었는데, 하고 싶지 않아서 미뤘었다. 근데 4학년이 끝날 때쯤 되니까 거의 마지막 시기라는 생각에 서둘러 시작했다. 지금 할 수 있는 것 중의 제일 빨리 해치워야 하는 걸 하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최근에 시험을 봤다. 계속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는데, 결국 안 하기로 했다. 사실 리트도 법조인이 되는 것에 대한 확고한 꿈이 있었던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집안 어른들이 우스갯소리로라도 항상 ‘변호사 해라’라는 소리를 하셨다.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들 대부분이 로스쿨을 준비하다 보니 나도 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고등학교 때 대학교 입시를 준비하듯이, 자연스럽게 대학교 때는 로스쿨 진학을 생각했다.


머릿속에 갖고 있던 선택지들이 데이터사이언스, 리트였는데 그게 전부 사라지고 나니까 뭘 해야 할지 갈피가 안 잡혔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고민하다 보니 ‘옷’이라는 결론이 났다. 기억하는 제일 어렸을 때부터 옷을 좋아했다. 어릴 땐 내가 옷을 직접 골라야 해서 엄마가 옷도 안 골라줬다(웃음). 아예 패션 쪽으로 노선을 정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한번 체험을 해보면 좋겠다 싶어서 의류 벤더 회사에 다니고 있다.



일은 만족스럽나.

막상 들어와 보니 절차적인 일이 정말 많다. 상사분들은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주문을 받고 공장에 의뢰서를 주고 하는 과정에서 보고서 작성 같은 반복적인 업무가 많이 주어진다. 아무래도 바이어들의 니즈를 맞추려면 커뮤니케이션이 가장 중요하다 보니 상세한 부분까지 기록해서 전달해야 해서 그런 것 같다.

사실, 환경 관련 문제 때문에도 이 분야로 나아가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옷을 하나 만드는 데 4개월이 걸리는데, 공정이 굉장히 까다롭다. 계속 샘플을 만들면서 박음질이 잘못되지는 않았는지, 대칭은 맞는지 체크할 것들이 많다. 그 과정에서 버려지는 천들이 계속 생기는데, 이걸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나까지 가담해서 이 일을 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환학생을 갔다고 들었다.

다이브 끝나고 휴학하면서 교환학생 준비를 했다. 그리고 4개월을 파리에서 지냈다. 사람들에게서 여유가 느껴지는 점이 가장 좋았다. 프랑스 사람들은 “profiter du soleil(햇빛을 만끽하다)”처럼 ”profiter“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잔디밭에 풀썩 풀썩 앉아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보면 ‘저 사람 정말 삶을 만끽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도시가 정말 예쁘다. 계획도시라 대부분의 건물이 오스만 양식으로 지어졌는데 여기에 낮에는 화창한 햇살, 낮에는 은은한 불빛이 더해지니 매일 매일 외출이 설렜다. 한국과 차이가 가장 크게 느껴지는 부분은  예술이나 문화를 대하는 태도인 것 같다. 이런 분야를 여가가 아니라 일상생활의 일부분으로 대한다는 점이 좋았다. 미술관이 하도 많아서, 거의 매일 미술관 투어를 했는데도 다 보지 못했다(웃음).


파리에서 기대했던 건 외국인 친구를 많이 사귀는 것도 있었다. 그런데 파리 사람들이 자기들만의 카르텔이 좀 있어서,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을 잘 안 끼워주는 문화가 있다. 학교에서 바를 많이 열었는데, 막상 가도 내가 먼저 말을 걸지 않는 이상 나한테 큰 관심이 없었다. 외국에서 학교를 다니는 게 처음이니까 그런 걸 극복하기가 조금 어려웠다. 먼저 가서 친해지려고 얘기하는 게 쉽지 않아서 많은 친구를 사귀지는 못했지만, 학교에서 만난 몇몇 친구들과는 아직도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교환학생을 다녀오고 달라진 게 있나.

망설임이 많이 사라졌다. 마트든 어디든 생존을 위해서 물어봐야 했다(웃음). 망설이는 시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그냥 막 물어보고 다녔다. 원래 한국에서는 요청할 때 ‘혹시 어떤 거 해주실 수 있냐’ 이러면서 조심스러운 면이 없지 않아 있는데, 파리를 다녀오고 나서 그게 많이 없어졌다. 파리에 친절한 사람도 있었지만, 자기 일을 대충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가 어떤 걸 요청하면 그건 자기가 해줄 수 없다면서 방치하거나 비웃기도 했다. 그래서 막 말다툼했던 기억도 있다.



유럽에서 여행도 많이 다녔을 거 같은데.

주로 서유럽의 국가들을 많이 여행했다. 프랑스 안에서는 니스랑 마르세유 같은 남부지방을, 프랑스 밖으로는 벨기에나 런던 포르투 리스본 같은 도시를 많이 돌아다녔다. 가장 인상 깊었던 도시는 마르세유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부산 같은 항구도시인데, 부산보다는 거친 느낌이다. 사실 치안이 안 좋기로 유명해서 경유지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항구도시만의 자유로운 느낌과 뜨거운 햇빛이 너무 좋았다. 10월 말쯤이었는데도 바다 수영을 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11월은 너무 추워서 상상도 못 하는 일인데 말이다(하하).



취미가 어떻게 되나.

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 근데 카메라는 없고 그냥 휴대폰으로 찍는다(웃음). 원래는 풍경만 찍었는데, 요즘엔 사람이 조금 있는 풍경을 좋아한다. 교환학생을 갔다 오면서부터 여행을 많이 다니고 있는데, 영상 찍어서 혼자 쇼츠 같은 걸 만들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어릴 때부터 카메라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했다. 한창 영화 ‘겨울왕국’이 유행했을 때, 집에서 동생을 주인공으로 ‘렛잇고’ 뮤비를 찍은 것도 있다(하하). 내가 카메라를 잡고 아빠가 음향을 담당하셨다. 주인공인 동생이 집안을 뛰어다니면 나랑 아빠가 쫓아다니면서 영상을 찍었다. 옷까지 갈아입으면서 리허설도 했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나.

요즘엔 집에 가면 너무 힘들어서 진로 생각을 잘 못한다(웃음). 그래도 영어나 프랑스어에 친숙한 만큼 이러한 강점을 살릴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다. 그중에서도 브랜드 발굴이나 수출 쪽에 관심이 생겼다. 잠재력 있는 신생 브랜드나 중소기업들을 발굴하고,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일이 재밌을 거 같기도 하고,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현재 회사에서도 적응 중이어서 구체적으로 어떤 직무를 하게 될지는 시간이 조금 흐른 후에 천천히 결정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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