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mans of daiv. 여섯 번째 이야기: 한준희
많은 사람들이 ‘도전’하며 살아간다. 도전이 가져다 줄 가치와 미래를 기대하며 때로는 천천히, 때로는 빠르게 저마다의 방향과 속도로 나아간다.
누군가는 다른 사람이 잘 닦아놓은 길을 성실하게 따라가는 것에 도전한다. 반대로 자신의 강점을 살려 새로운 길을 만들어나가는 이도 있다. 오늘은 모두가 가는 길, 그 너머를 꿈꾸며 세상에 딥다이브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한준희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학부 연구생을 시작했다고 들었다.
이번 여름방학에 아날로그 회로 시스템 연구실에 들어가게 됐다. 사실 들어가기까지는 우여곡절이 꽤 있었다. 원래 일을 계속 만들어야 하는 성격이라, 이번에는 연구실 인턴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인턴보다 연구실 인턴이 문턱이 좀 낮은 편이라, 바로 교수님한테 연락을 드렸다. ‘전자 회로’라는 과목을 너무 재밌게 들어서 아날로그 회로 쪽으로 더 공부하고 싶고 이런저런 프로젝트에도 관심이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사실 거절당했다. 지원자가 거의 20명 가까이 돼서 3학년은 안 뽑는다는 이유였다. 또 전자 회로 쪽을 한 과목밖에 안 들었기 때문에, 더 많은 과목을 배우고 오면 좋겠다고 하시면서 4학년 때 다시 오라고 하셨다.
근데 그 답장을 받고 새벽 4시에 오기가 생겨서 다시 메일을 보냈다(웃음). 그런데 답변이 없으셔서 ‘아, 망했다’라고 생각하고 진로 관련된 질문을 5개 정도 준비해서 교수님 면담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제 메일을 받고 너무 감명받았다면서 학부 연구생을 받아주셨다. 한 번 거절을 당했는데도 다시 도전하는 열정이 보기 좋다고 해주셨다. 감사하게도 여름방학 때 열심히 집중할 수 있는 의미 있고 재밌는 기회가 주어져서 이번 여름을 알차게 잘 보낼 수 있었다.
지금은 어떤 연구를 하고 있나.
지금은 라이더 센서를 이용해서 사람의 모션을 감지하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주거 빈곤 아동들이 제대로 된 보호자가 없다는 데서 시작한 프로젝트다. 보호자 역할을 하는 센서 장치를 만들어서 아이들이 학교에 가야 하는 시간인데 아직 자고 있다거나, 화장실에 들어가고 나서 너무 오래 안 나온다거나 하는 일상생활의 문제들을 도우려고 한다.
어쩌다 보니 7년 장기 프로젝트의 초반에 참여하게 됐는데, 아직 시작한 지 두 달밖에 안 돼서 많은 걸 하지는 못했다. 지금은 가정마다 커스터마이징해서 어디가 방이고, 어디가 화장실인지 공간을 지정해 주는 작업을 하는 중이다. 라이더 센서를 가지고 데이터를 받은 다음에 rviz랑 포인트 클라우드로 시각화하고 사람을 인식, 표시하는 태스크를 하고 있다. 팀원이 나 포함 4명밖에 없어서 매일 열심히 하는 데도 딥러닝까지는 진도가 나가진 않았다.
전공에 너무 만족하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 이화여자대학교 전자전기공학과에 다니고 있는데, 다른 과에 갔으면 불행했을 거라고 생각할 정도로 잘 맞는다. 사실 공대는 초등학교 때부터 가고 싶어 했다. 인간이 마법을 쓰는 것에 제일 가까운 게 기술이라고 생각해서다. 나도 그걸 만들고 싶어서 기계 공학과나 전자전기공학과를 고민했는데, 지금 다니고 있는 대학교는 기계공학과가 생명공학이랑 연계되어 있어서 전자전기를 선택했다.
대학교 초반에는 솔직히 왜 해야 하지 하는 것들을 많이 배웠다. 수학 문제를 풀려면 구구단을 공부해야 하는 거처럼, 아무래도 저학년이다 보니 이론 위주의 공부를 많이 했다. 그런데 요즘에는 실생활에 관련된 것들을 많이 배운다. 특히 공대 중에서도 제일 여러 가지를 배우다 보니 계속 새로운 걸 접하는데, 어떤 과목이 재밌다고 꼽을 수 없을 정도로 전부 재밌다.
공대생과 영자신문은 독특한 조합이다.
영자 신문 동아리는 입학하자마자 처음 들어갔다. 한 학기 수습 기간을 거치고, 1년 반 정도 정기자 생활을 했다. 지금은 부국장 간부다. 사람들이 처음 보면 공대가 아니라 국제학부, 정치 외교 이런 쪽인 줄 안다. 공대 얘기는 절대 안 한다(하하).
동아리를 이렇게 오래 하는 이유는 ‘내 길’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솔직히 전공 공부에 재능이 있어서 탁월하게 잘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잘하는 사람들 틈에서 아등바등할 바에는 나만의 길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대에만 집중해 온 사람들이 갖고 있지 않은 다른 재능이 뭘까 고민하다 보니, 영어 잘하는 사람은 많이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융합형 인재가 되기로 결심했다. 무엇보다 해외에서 일하고 싶다는 비전이 있어서 언어 쪽으로 소양을 기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영어에 대한 감을 유지한 것도 있지만 책임감이나 화합을 많이 배웠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이라 책임감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동아리를 하면서 총대 멜 줄도 알게 되고 책임감도 갖게 됐다. 또, 부국장이 되면서부터 어떻게 하면 모두가 즐겁고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한다. 그전에는 간부나 임원분들이 모든 걸 감당해야 하는 줄 알았는데, 역할 분담을 잘했을 때 훨씬 조직이 효율적으로 돌아간다는 걸 알게 됐다. 그 역할에 맞는 사람을 알아보는 눈을 기른 것 같다.
생각보다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어려움은 별로 없다. 사실 글은 못 쓰는 편이다(웃음). ‘CNN’이나 ‘뉴욕타임즈’ 기사를 읽으면서 느낌만 살리는 정도인데, 오히려 영어 기사라 더 수월한 것 같다. 모두가 유창하게 영어를 잘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한글 기사처럼 탁월한 수준의 글이 아니더라도 괜찮은 기사가 나오는 것 같다.
다이브에서도 많이 배웠다고 생각하나.
다이브가 AI를 배우는 데 길잡이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혼자 AI를 공부하려고 했다면 절대 못 했을 것 같다. 뭘 먼저 공부해야 할지 모르는 초보 수준에서 다이브가 많은 도움을 줬다.
다이브는 1학년 때 들어갔다. 지금 활동했다면 어느 정도 글도 잘 썼을 텐데, 너무 저학년 때 시작해서인지 다들 멋지게 글을 내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이제 딥러닝을 막 배우는 단계라 뭘 써야 할지도 몰랐다. 프로젝트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니까 맨날 언니, 오빠들한테 배우기만 했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 목표가 좋은 분위기를 만들기였다(웃음). 나도 뭔가 기여를 해야 하는데, 아티클은 잘 못 쓰니까, 그거라도 잘하면서 일단 많이 배우자고 생각했다.
다이브 세미나는 지금도 자주 가는데, 갈 때마다 항상 배운다. 어떤 게 있다는 존재조차 모르면 배우려고 해도 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세미나에 가서 이런저런 모델과 방법들을 보고 오면, 나중에라도 찾아볼 수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된다.
요즘의 취미는 어떻게 되나.
러닝을 한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개인적인 욕심도 점점 커지고 생각도 많아지면서 번아웃이 정말 자주 온다. 그럴 때마다 달리면, 달리는 게 너무 힘들어서 생각이 없어진다. 사람들이 힘들 때 술을 마시는 것처럼, 번아웃 상황에서 도피할 수 있는 창구가 ‘달리기’인 것 같다. 지하 1층 헬스장에서 열심히 달리고 헉헉대면서 집에 간다(웃음).
번아웃을 겪다 보니, 한편으로는 건강하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할 수 있다는 게 참 감사하다. 학교 가기 싫으면 감기 걸렸으면 좋겠다 싶지만, 막상 걸리면 고역이다. 하고 싶은 일들이 있는데 몸이 안 따라줘서 못 하고 바라만 보고 있는 것도 힘든 일이다.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못 찾는 사람들도 많은데, 열정을 가지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특별히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게 있나.
어려운 질문이다(웃음). 세상에 어느 정도 기여를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걸 온전히 스스로 만들어 내긴 어려울 것 같다. 대신 세상을 바꾸는 기술, 세상에 기여하는 기술을 만드는 일원으로써 함께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