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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딥 다이브 Jan 16. 2024

뾰족하지만 담담하게

Humans of daiv. 열 번째 이야기: 홍서윤

당신은 ‘도전’해 본 적이 있는가. 안정적이고 평안한 일상을 누리다가도, 다시 한번 삶을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 말이다. 대개 이런 도전은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동반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절대적으로 좋고 나쁜 도전이 있는 것일까?


온 힘을 쏟아부어 도전한 사람은 그 가치를 안다. 자신이 미덕이라 생각하는 이상을 좇았든, 현실적인 조건에 이끌렸든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니기 마련이다. 오늘은 ‘변리사’의 꿈을 꾸다 다시 AI 연구로 돌아오기를 선택한 홍서윤을 만나보았다.


간단히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4학년 재학 중이고 융합생명과학 원전공, 소프트웨어과 복수 전공 중이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는 변리사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의료 인공지능 연구를 하고 있다.



변리사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가 있나.

변리사에 관심을 가지기 전에도 인공지능을 공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연구를 하다 보니 내가 발명한 과학이나 기술이 적극적인 보호를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연구계와 산업계 사이에 큰 괴리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변리사’라는 직업이 그사이를 조율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꼈다.


실제로 해외에는 인공지능 관련 특허들이 정말 많이 나오고 있고, 국내에서도 꽤 나오는 추세다. 인공지능을 굉장히 좋아하기 때문에, 나중에 산업계에서 인공지능이 적극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해보자고 생각해서 도전했다.


처음엔 변리사 공부가 재밌었다. 민법을 단순히 암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실생활에서 우리가 거래하는 것들이나 믿고 교환하는 것들이 전부 법으로 정의되어 있다. 특허법도 비슷한 맥락인데, 실제 기술이 어떤 과정을 통해 보호받는지 접목하면서 공부하니 흥미를 많이 느꼈다.



다시 인공지능으로 돌아오게 된 계기는.

공부를 좋아하게 된 이유와 포기하게 된 이유가 비슷하다. 변리사 공부를 한 8개월 동안은 ‘이해하는 공부’를 했다. 결국 암기도 이해해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내용을 이해하는데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그만큼 법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힘은 길러졌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8개월 정도 공부를 하고 나서 기출을 풀어보니 잘못 공부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아무리 폭넓은 이해로 법률을 여러 케이스에 적용할 수 있다고 해도, 기억이 나지 않으면 문제를 풀지 못한다. 결국 시험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수십번 암기하고, 또 머릿속에 남아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재미를 느꼈던 공부와 시험에 붙기 위한 공부 사이의 괴리를 느끼기 시작하면서 과연 내가 이 시험에 합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많이 들었다. 그때 변리사 시험을 포기하게 됐다.


포기하기까지 정말 쉽지 않았다. 정말 많이 사랑했던 애인을 보내는 느낌이었다(하하). 차라리 탈락했으면 나았을 텐데 스스로 결단을 내리니 마음이 많이 아팠다. 사람들이 왜 쉽게 포기를 못 하는지 느꼈다. 1~2주는 아른아른하면서 후유증이 있었다.


사실 변리사 시험을 준비한 8개월의 기간이 아깝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연구 성과가 잘 나왔던 편이었어서 다른 공부도 잘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이해하고 쌓아나가는 방식의 연구와 고시는 결이 달랐다. 하지만 변리사 시험에 도전하면서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됐다.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공부나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있어 이때의 경험들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추천시스템에 흥미가 컸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동안 추천시스템 연구실에 있었다. 처음 들어갔을 때는 ‘Continual Learning’에 대해 연구를 진행했다. 모델 학습을 위해 전체 데이터셋을 쓰게 되면 리소스나 시간 문제가 생기기 마련인데, 예전에 학습시켰던 모델에 최신 데이터만 추가로 학습시킨다는 개념이다.


그때 연구실 분들이랑 LG 유플러스에서 진행하는 ‘아이들 나라 콘텐츠 추천 대회’에도 나갔었다. 아이들에게 어떤 영상 콘텐츠를 추천할 지에 대한 모델을 개발하는 일이었다. 여기엔 사실 좀 재밌는 일화가 있다(웃음). 사실 아이들의 시청 경향은 성인과는 차이가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포인트를 잘 잡아서 좋은 성과를 냈다고 생각한다.


당시에는 배운 지 얼마 안 됐다 보니 데이터를 많이 들여다보고 싶었다. 거기서 아이들은 같은 영상을 여러 번 본다거나, 시리즈물을 보는 등 영상을 반복적으로 본다는 특징을 찾아냈다. 대부분의 성인들은 여러 콘텐츠를 동시에 소비하지만, 예를 들어 뽀로로를 좋아하는 아이는 하루종일 뽀로로만 본다. 이런 아이들의 특징을 잡아서 모델에 일종의 가중치처럼 넣어줬더니 성능이 매우 좋아져서 상위권에 들 수 있었다. 당시에 시니어분들은 어떤 모델을 적용할지를 중점적으로 고민하고 계셨어서 반대가 있었다. 제안한 아이디어가 전통적인 방법도 아니었고, 요즘에는 모델이 점점 고도화하다보니 데이터에서 추출된 인사이트보다는 모델 기반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많았다. 그런데 시니어분들이 놀러 갔을 때 제가 제출해 버렸다(하하). 결과적으로 퍼블릭에서 1등, 프라이빗에서 2등을 하면서 인정을 받았다.

요즘엔 어떤 연구를 하나.

지금까지 자연어(NLP), 컴퓨터 비전(Computer Vision), 추천시스템(Recommendation System) 멀티모달(Multimodal) 등 다양한 분야를 폭넓게 공부해 왔다. 그중에서 세부 분야를 정함에 있어서 고민했던 건 인공지능이 어떤 분야에서 가장 강력하게 동작할 수 있을까였다. 인공지능이 지금은 기초 과학처럼 연구 단계에 있지만, 언젠가는 다양한 산업계에 흩어져서 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변리사를 공부하면서 인공지능 특허 동향을 접할 기회가 있었는데 산업계 중에서도 바이오나 금융 쪽에 많이 몰려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바이오/의료 분야에서 강력하게 동작할 수 있다는 점과 원전공인 생명공학 덕분에 접근성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세부 분야는 의료 AI(Medical AI)로 정하게 됐다.


지금은 멀티모달 기반으로, 환자의 안저(眼底) 사진과 성별, 몸무게, 혈압 같은 기본 정보들을 활용해 심혈관계 질환을 예측하는 모델을 만드는 연구를 하고 있다. 기존에 나온 연구를 고도화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서 진행하고 있다. 차별점은 바이오 데이터를 얻기가 용이한 선진국에 비해 개발도상국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피처(Feature) 수를 줄이더라도 간편하게 얻을 수 있는 바이오 데이터로 성능을 올려보자고 하고 있고, 성능이 꽤 괜찮게 나와서 조만간 논문이 나올 것 같다.


지금 공부하는 의료 AI는 추천시스템과 완전히 다른 영역이다. 하지만 도메인만 다를 뿐이지 궤를 같이하는 면이 많아서, 큰 괴리감은 없다. 그래도 추천시스템에 대한 사랑과 미련이 아직 남아있다(웃음). 아직 교수님과 상의하진 않았지만, 추후 개인 과제로는 약물 추천 모델을 생각 중이다. 유전체 데이터, 환자 데이터, 의사의 처방 데이터 등을 활용해 보려고 한다.



인생을 살면서 후회했던 순간이 있나.

옛날엔 좋은 선택과 나쁜 선택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쯤 열심히 살고 나니 절대적으로 좋고 나쁜 선택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생각이 든 뒤부터는 어떤 선택이든 스스로 책임을 지자는 마인드를 갖게 됐다. 그래서 어떤 걸 하지 않아서, 혹은 어떤 걸 해서 후회한다는 건 없다. 다니던 추천시스템 연구실을 나갈 때도, 변리사를포기할 때도, 지금 연구실을 선택할 때도 내 선택에 온전히 책임지자는 마음 가짐으로 살아가고 있다.



앞으로 도전해 보고 싶은 것은.

어릴 때 꿈은 가수였다. 할머니가 매일 ‘내새끼 노래 잘하네’하면서 칭찬해주셔서 내가 노래를 잘하는 줄 알았다. 초등학교를 가고 나니 할머니의 사랑이었다는 걸 깨달았다(웃음).


비록 가수는 포기했지만, 여전히 도전해 보고 싶은 건 있다. 예전부터 강연을 하고 싶었다. 정보를 주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도전하고 실패하고 또다시 방향을 설정하는 이 삶의 경험을 세상을 살아가는 후배들이나 친구들에게 전달해 주고 싶다. 그 일환으로 삼성 드림클래스 활동이나 멘토링, 봉사활동도 꾸준히 해왔다.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라는 프로그램을 좋아하는데, 그곳에 출연할 만큼 이야기가 많은 사람, 그리고 그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냥 누군가가 나를 보고 ‘저 사람은 참 이야기 많구나’라고 느껴졌으면 한다.



지금까지의 인생으로 강연을 한다면.

예전에는 꿈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꿈을 찾는 법, 하고 싶은 일을 찾는 법에 대해 강의하고 싶었는데 요즘 이렇게 꿈을 좇아가며 살아가다 보니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그래서 꿈을 찾아가면서 마주하는 실패와 좌절, 또 그것을 극복하는 법, 지속가능한 행복에 대해서도 같이 얘기하고 싶다. 강연의 제목으로는 ‘인생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지 뭐’가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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