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Om asatoma Nov 28. 2020
농장 한 구석 소주 공병이
흙탕물과 거미와 박제된 담배꽁초와
돌보지 않은 거대한 성전처럼 쌓여있었다
한 포대 서른 병씩
큰 고개 작은 고개 넘어 읍내에 내다 파는 길
사월이라 해도 아직 봄이 찾지 않은 북사면 산골에서
땀방울은 가슴골을 타고 흐르고
시골에 어울리지 않는 번듯한 건물 일층 편의점 사장은
흙 묻은 병이 더럽다며 박대를 하는데
마치 자신이 그 소주병이 된 듯 밀려오는 설움에 그만두고 싶었단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도 씻어지지 않는 그 피로를 쌓아놓고 바라보는 일이
아비 한 숨 가득한 시간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 같아서
산기슭 기어가며 날랐을 비료포대의 무게가 느껴져셔
고된 노동의 끝을 달래었을 한밤의 쓸쓸함이 덮쳐와서
앞좌석 뒷좌석 할 것 없이 승용차에 가득 싣고
이 상점 저 상점 사정해가며 받아달라 애원하는 여자
수없이 고개를 오르내리며 하루에 팔아 낸 소주 공병 천 병
언제 깨어질지 모르는 아슬함을 싣고
아무리 쉬어도 꺼지지 않는 숙명의 무게와
여전히 돌고 있는 운명의 수레바퀴로
무엇에도 취할 수 없는
소주 천 병 팔아넘긴 그 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