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Om asatoma Feb 2. 2021
사관생도였다. 합성동 시외버스 정류소에서 대구행 버스의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날씨는 추웠고, 주말이어서 사람들이 많았는데 어딘가 축제 분위기였던 듯하다. 이십여분이 더 남아있었지만 지정좌석제가 아니어서 버스 문이 열릴 때까지는 줄을 서 있어야만 했다. 당시 만나고 있던 사람이 대구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에게 줄 향수 샤넬 알뤼르를 포장하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려, 뒷사람에게 자리를 맡아줄 것을 부탁하고 근처 팬시점에서 포장을 했다. 일을 마치고 돌아가면서 초콜릿 하나를 샀다. 내 자리를 맡아준 그 아이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서. 그날은 2월 14일이었다.
사관생도들이 입는 제복을 입고 있었다. 핸드백에는 '그'에게 줄 알뤼르가 있었고, '그 아이'에게 줄 초콜릿이 있었다. 내 손에는 민음사 책 마담 보바리가 들려 있었다. 아직 운전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자가운전으로는 대구까지 갈 수가 없어 시외버스를 타야만 했다. 버스는 만원이었고, 그 아이는 옆자리를 맡아 주었다. 그 아이는 너무나 앳되었기 때문에, 아무런 주저 없이 고마움의 초콜릿을 내밀었고, 대구까지 가는 동안 옆자리에서 지난여름의 그리스 터기 여행 이야기와 손에 있는 책 이야기와 당시 하고 있던 문학 동아리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가까이 앉아서 보니 그 아이 얼굴에는 여드름이 한창 피어있었다. 서른을 앞둔 나와 달리 아직 고등학생 같기도 한, 풋풋한 그 아이와 그렇게 처음 만났다.
잘 모르겠다. 연락처를 어떻게 주고받게 되었는지. 때로 배를 타고 나가는 교육이 있을 때는 망망대해에서 엽서를 써서 타국에서 보내오기도 했고, 대구 본가에 들렀다가 오는 날에는 갖가지 빵과 쿠키를 만들어서 가져다 주기도 했다. 보드랍고 촉촉한 마들렌의 상큼한 맛과 조심스럽게 구워진 마카롱의 고소한 단맛을 잊을 수가 없다. 본가에 다녀올 때면 마중 나가 태워서 남원로터리 지나 있는 해군사관학교 정문까지 데려다주었다. 생활관까지 가는 교내 버스가 오기 전 교문 앞에 주차를 하고 커피 한 잔 나누던 무수한 봄날 밤. 벚꽃은 그렇게 밝기만 했다.
사관생도들은 졸업할 때까지 '그걸'할 수가 없어요, 누나. 하며 고개를 푹푹 숙이던 아이가 언젠가는 창가득 바다가 펼쳐진 찻집에서 피아노 연주를 들려줬다. 별빛이 쏟아지는 밤, 벚꽃 피는 언덕에 올라 키스하지 않을 수 없었던 순간에도 누나, 우리는요, 생도들은 졸업할 때까지는 안 돼요, 누나, 하던 아이. 마카롱을 만들고, 피아노를 연주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연서를 보내오던 아이가 생각났다.
싱그럽기만 하다.
내가 와인을 마시는 제일의 이유인 떫은맛이 전혀 없다. (내 기준에서는)
가볍다. 밉지 않게 가볍다.
그런데 너무나 싱그러워서 깊이가 없어도 모든 것이 용서된다.
어른들의 포도주스.
프랑스 와인들은 항상 이렇게 싱그러운가.
알코올 향도 없고 알코올 맛도 없다.(거의)
그런데 어느새 취해있다.
아무런 아무런 부담 없이 홀짝이다 훌쩍 마셔버려도 아무렇지 않을 것 같은데
그런데 어느새 취해있다.
그래서 어느새 우리는 .
한때 잘 생긴 유명 배우가 박스채 사기도 해서 유명했다는데
마시고 보니 그는 게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게 만드는,
와인 같지 않은 와인.
남자지만 남자 같지 않은.
The Long Little Dog
가격은 기억나지 않지만 2만 원대 전후 정도..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
물론, 마시는 중에도 저항할 수 없이 덮쳐오는 묵직하고 떫은맛을 매우, 매우 그립게 한다.
+
심심해서 쓰는 와인 시음기 입니다만..
처음엔 굉장히 가볍고 경쾌한 느낌의 글이었는데
브런치에 가지고 오려니 훅, 무게감을 줄 수밖에 없는... 수정을 하게 되네요.
다음엔 더더 가볍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