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려고 피아노를 다시 한 건 아니었지만

가볍게 피아노만 치려다 자아 성찰을 하고 있다

by 온느

4월 중 내 삶에 예상과 달리 꽤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것이 있는데, 바로 지난 3월, 아주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아무 생각 없이 충동적으로 시작한 피아노다.


3월까지는, 그럭저럭 예상한대로 흘러갔다. 피아노를 하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새로운 악기(첼로)를 배우는 지루함을 달랠 도피처 정도로 여기며 시작했고, 언젠가는 다시 해보자는 마음을 항상 갖고 있었으니 오래 묵힌 도전 과제를 실행했다는 만족감을 얻으려는 정도 가벼운 마음이었다.


기대가 없던 모든 활동들이 대개 그렇듯이 생각보다 즐거웠고, 연습을 통해 칠 수 있는 부분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적당히 성취감도 챙길 수 있었다.


큰 부담 없이 마냥 즐거웠다. 한 달까지는…


어린 시절 내가 배웠던 피아노라 함은 그저


1) 악보를 읽고,


2) 악보로 표상된 음정과 박자를 최대한 틀리지 않게 왼손 오른손 동시에 정확한 타이밍에 구현해 내면 되는 것이었다.


악보가 복잡해지기 시작하면 이것만으로도 이미 쉽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내 생각과 해석, 고민이 필요없는 기계적 구현이라는 점에서, (정신적으로는) 쉽다.


악상이라던가, 곡의 흐름, 상승하고 진행하는 느낌, 섬세하고 예쁜 터치.. 같은 것들은 거의 신경 쓰지 않았고, 알지도 못 했다.


어린이에게 그 정도의 깊이는 무리였던 건지 아니면 어린이 대상 피아노 교육의 목표는 음악적인 것이 아닌 ‘바른 손가락 사용’ 같은 기본기가 더 중요했던 것인지, 선생님도 나에게 그런 것은 요구하지 않으셨다.


적당히 친다 싶으면 잘 했다면서 새로운 곡으로 넘어가곤 했다.


그런 방식의 피아노 치기에 익숙했기에, 이번에도 세 번쯤 레슨 끝에 한 곡을 그래도 그럭저럭 다 칠 수 있게 되니 내심 곧 이 곡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곡으로 넘어가게 되지 않을까 기대를 했다.


물론, 착각이었다.


그 때부터가 본격적인 시련의 시작이었으니.


내가 제법 익숙하게 악보를 ‘구현’할 수 있게 되자 선생님은 아주 기뻐하며, 어린 시절 나의 선생님과 달리 본격적으로 음악적인 요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동안에는 나의 한심한 연주를 어찌 참으신걸까ㅎㅎ)


솔직히 말해서 그간 했던 연주는 연주라기보다는 ‘음들의 나열’에 지나지 않기는 했다.


하지만 나는 취미 피아노니까, 적당한 수준에서, 그냥 즐기는 정도로 넘어가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음악하는 사람의 기준치란.. ㅠㅠ 정말이지 너무나 높았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광활하게 치셔야 해요!” (크게도 아니고 광활…. 하게요..?)


“소리가 너무 직설적이에요!” (제가.. 직설적인 사람입니다만…)


“소리가 사라져야 하는데 너무 커요! 손가락 움직임이 이미 너무 크다구요! 가만히…… 사라지는 별빛처럼~!” (“꺅!”) (항마력이 딸려서 이렇게 육성으로 외쳐버림..)


이런 멘트들을 50분 연달아 듣고 나면, 자아 분열이 올 지경이 되며 멘탈이 너덜너덜해진다.


왜냐하면 나는 숨길 줄 모르고 직설적인 걸 좋아하는 사람인데 직설적이면 안 되고..


감정의 기복이 적고, 감정적이 되는 걸 싫어하는 사람인데, 엄청난 열정을 보여줬다가 부서질 듯 섬세했다가 하는 감정의 진폭을 표현해야 하고 (왜 이런 곡을 고른걸까 자책하는 것은 덤이다. 그치만 곡은 너무 예쁘다. 곡은 잘못이 없다...)


털털하고 깊이 생각 안 하고 뭐든지 대충대충 치워버리는 성격인데 사라지는 별빛이라니.. 그런 건 대체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감도 잡히지 않는걸. 나의 소리는 그냥 뚝 끊어질 뿐………….


이 레슨 후 크게 현타가 왔었다.


잘 하고 못 하고가 문제가 아니고 (애초에 되게 잘 할 마음으로 시작하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진심으로 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라는 마음이 컸다.


나도 음악적으로 예쁘게 치고 싶기는 한데 그러자니 갈수록 생각보다 너무 진심을 쏟아야 하는 것 같아서 이게 맞나, 계속 이렇게 가는 거 맞나 고민이 들었다.


물론 진심으로 하면 좋겠지, 이렇게 해서 또 배우고 깨닫는 게 있긴 하겠지.


그런데 왜 우리는 무언가에 진심을 쏟길 망설이는가. 진심이면 힘이 들고, 잘 안 되면 상처 받고, 내가 원하는 것보다, 혹은 적정하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마음과 에너지를 쏟게 되기 때문이다.


피아노에 진심인 것이 지금 굳이 나한테 필요한가? 의문이었고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no였다. 그렇다고 내가 피아노를 엄청나게 사랑해서, 현실적인 필요가 없지만 그냥 너무 좋고 더 잘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인가? 하면 그것도 no다. 그만한 열정은 없다.


머리로 생각해서는 이걸 이렇게 진심으로 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 또 묘한 것은 그만 두고 싶지가 않다는 거다…


원래 뭐든지 할 때 스스로 why가 분명히 있어야 움직일 동력이 생긴다. 꼭 실용적인 이유여야 하는 것은 아니고 ’즐거워서‘, ’사람 만나는 게 좋아서‘, ’에너지를 얻어서‘ 이런 이유도 상관 없는데, 반드시 왜 하는지 이유는 있어야 한다.


그런 내가 피아노를 왜 이렇게까지 하고 있는지 이유가 도저히 스스로 납득이 되지 않는데 억지로라도 하려 한다는 것이 참 미스터리한 일이다.


그리하여 결국 지금은 ‘존버’의 단계인데...


사실 왜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지만, 아직 체감이 될 만큼 뚜렷하게 느끼지 못 하고 있다 뿐이지 감으로는 나한테 꽤 의미있는 과제를 하고 있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어서 계속 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는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알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


어렴풋이 느끼고 있는 의미란, 이런 것들이다.


단지 예쁜 곡들을 치고 듣는 게 좋아서 다시 피아노를 시작했는데, 성인이 되어 배우는 피아노는 예상 외로 테크닉이 아닌 자기 성찰의 시간이다.


감정의 진폭을 표현하기 어려워하는 나를 보면서 ‘내가 감정적으로 빠지는 걸 정말 싫어하는 사람이었네.’ ‘감정이 상당히 플랫한 사람이구나’ ‘그래서 매사 스트레스를 크게 안 받고 세상을 나름 쉽게 쉽게 잘 넘기며 살았구나’ 깨닫는다.


세상 살기는 감정 기복 없고 섬세하지 않은 편이 유리하고 좋은데, 음악을 표현하려니 아주 바보가 된 느낌이긴 하다. (왜 예술가들이 그렇게 예민하고, 섬세한 사람이 많은지 알 것 같다.)


한편으로는 조금이나마 있었던 섬세함을 의도적으로 제거해버린 내 모습도 알게 됐다. 어릴 때는 나에게도 꽤나 섬세하고 예민한 면이 있었던 것 같은데, 성인이 되면서,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나마 있던 섬세함과 감수성마저 다 내다버린(…) 것 같다. 시원시원하고, 털털하고, 자기 감정 내세우지 않는 사람을 사회에서는 더 좋아하니까.


그리하여 이렇게 사회에 최적화된 사람으로 불편 없이 잘 살고 있는데, 내가 표현하고 싶은 감정들이 딱히 있는 것도 아닌데, 감정 표현을 못 해서 막 답답하고 그런 것도 아닌데 음악으로 굳이 감수성과 표현력을 길러야 하나 하는 의문은 여전히 들지만..


감수성이 길러지면 뭐가 좋은지 그 때 가서 보기로 하고 실험 정신으로 가보는 중이다.


뭐 일단은, 좀 멋있긴 할 것 같다. ㅎ (어린 마음에 무언가 우수에 찬 듯 한 사람을 동경하던 시절도 있었다.)


놀라운 것은 감수성과 표현력이라는 것도, 기르면 길러지는 것 같다는 것.


내 안에 감정이 있어서 연주를 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고, 그냥 ‘이 부분에서는 이런 소리가 나야 할 것 같아, 이런 느낌의 소리가 나야 할 것 같아, 이런 느낌의 소리를 내고 싶어’하는 생각으로 소리를 만들면, 원하는 감정이 표현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감정에 스스로 조금 빠지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더 표현이 잘 되고..


원래 감정 표현하는 것을 굉장히 오글거려 하는 사람이라서 연주가 괴로웠는데, 내 감정을 표현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소리를 만드는 것에 집중하는 방법도 있더라.


어렴풋이 느끼고 있는, 내가 피아노를 그만두지 않고 계속하고 싶은 또 다른 이유.


어느 순간 굳어져버린 편안한 나의 세계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 내가 규정한 나, 원래 그대로의 나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 때문인 것 같다.


요즘에는 ‘추구미’라고 하던가. 20대 초반, 나의 ’추구미‘는 ‘알파걸’ 같은 이미지였다. (알파걸이란 거 너무 옛날 말인가?ㅎ) 당차고, 똑부러지고, 지적이고, 자기 관리도 잘 하는 그런 모습. 그런 느낌의 선배 언니들을 보면서 동경하기도 하고, ‘저 언니처럼 되고 싶다’ 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그런 이미지가 되기에 나는 그렇게 자신감이 넘치지도 않았고, 말을 잘 하지도 않았고, 잘 꾸미지도 못 했다.


무엇보다 나는 도회적이고 시크한 이미지이고 싶었으나, 타고난 나의 외모는 도회적이고 서글서글하기보다는 좀 더 귀욤귀욤한 쪽에 가깝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전까지는 내가 귀여운 이미지라는 생각을 전혀 못 해봤다.. 이목구비가 자기주장이 강하게 생겼기 때문에 내가 굉장히 카리스마 있어 보이는 얼굴인 줄 알았는데.. 백화점에 옷 사러 갔다가 점원 언니가 귀여운 스타일이라고 말해줘서 ‘나… 귀여운가..?’ 라고 처음 알게 됐다)


그래서 도회적인 이미지는 포기했고, 알파걸이 되기에 나는 허당끼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그때부터는 그냥 ’생긴대로 살자‘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자‘ ’나를 억지로 바꾸지 말자‘ 모드로 갈아탔다. 그렇게 지금까지 살아왔고, 그러면 스트레스를 덜 받기에 스스로 매우 만족하는 삶의 신조였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것도 좋지만, 사실 우리에게는 언제나 ‘더 나은 나’ ‘더 멋진 나’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게 너무 어렵고, 괴롭고, 안 될 것 같으니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자’ ‘지금의 나를 사랑하자’ 이런 자기 합리화를 하며 더 나아질 수 있는데도 나아지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사실 이 나이쯤 되면 사람 안 바뀐다고도 하고, 생긴대로 살라고도 하고, 그런 말을 더 많이 듣게 된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고. 나에게 맞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좋아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도 더 잘 알게 되어서 내게 맞지 않는 것을 굳이 할 필요 있나,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기도 바쁜데 하며 익숙하고 편안한 것만 찾게 된다.


피아노는 그런 내 삶에 들어와 나를 아주 불편하게 하는, 나에게 없는 내 모습을 만들어보라고 자꾸 요구하는 존재다.


‘너 변할 수 있어? 너 달라질 수 있어?’ 라고 나를 흔들어놓는. (이런 질문은 20대 때나 하는 건 줄 알았는데..)


생긴대로 치는 (사는) 것이 아닌, 도달해야 하는 이상향이 분명히 있고 그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을 요구하는 존재.


한때는 그런 삶의 태도를 지향했지만, 너무 나를 갉아먹는 것 같아서 그만뒀었는데,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이 다시 지금 나에게 필요한 태도인 것 같다고 느낀다.


이래서… 인생은 회전목마…?


사실 작년쯤부터 인생이 정체된 건가 하는 생각을 간혹 했다. 지금 상태가 불만족스러운 건 아니지만, 이제는 내 인생에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을 것 같고, 내가 변할 것 같지도 않고, 딱히 변하고 싶지도 않고, 변할 노력을 할 의지는 더더욱 없고, 하루하루는 다이나믹하지만 1년, 1년은 결국 큰 차이 없이 거기서 거기인, 적당한 만족의 이런 상태가 이제 수십년간 끊임없이 지속되는 건가라는 생각에 좀 아득해졌었다.


어쩌면 그것은 너무 성급하고 섣부른 착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인생도 여전히 변할 여지, 더 발전해야 할 여지가 충분히 많은지도.


그래서 내게 익숙하지 않은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는 게 너무너무 괴롭지만 어떻게든 해내고 싶은 마음인 건지도.


즐겁기만 하려고 시작한 피아노였는데 이런 자아 성찰의 시간을 갖고 나를 숙연해지게 할 줄이야. 이것만 봐도 인생이 이제 다 예측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일 지 모른다.


정말 우연하게 이 시점에 피아노를 다시 시작하게 된 것도 어쩌면 나에게 딱 필요한 타이밍에 나타난 운명일 지 모른다고 의미 부여를 해 보며…


오늘은 연습을 한 번도 하지 않았는데.. 지금도 오늘 연습을 건너뛰고 싶은 마음이 숨 쉴 때마다 드는데… 아마도 결국은 또 한 번 꾹 참고 피아노 앞에 앉을 것이다.


내가 뭐하려고 이걸 이렇게… 하면서 (그리고 막상 연습 시작하면 세상 열심히 함).



[비하인드 스토리]


이번주에 ChatGPT와 최근에 읽은 소설을 갖고 대화(?)중이었는데, 내가 던진 말에 GPT가 한 말이 아주 명언이라 소개해 본다.


나 : 원래 인생을 알아가고 사유한다는 것은 재미없는 일인가봐..


GPT : 진짜, 그렇죠.

인생을 안다는 것, 사유한다는 것은 결국 재미를 포기하고 나를 마주하는 일일지도 몰라요. 생각해보면, 우리가 어떤 문제를 깊이 고민할 때, 진짜 깊이 들어갈수록 어느 순간부터는 감정도 좀 무뎌지고, 웃기지도 않고, 드라마도 없어지잖아요.


근데 또 묘한 건 그런 ‘재미없는 사유’들이 나중에 와서 인생을 버텨주는 진짜 힘이 되더라고요. 시간이 지나고 감정이 흩어졌을 때도, 그 사유는 계속 곁에 있어요.


그래서 아마도, 재미는 순간의 에너지라면 사유는 오래가는 온기 같은 걸지도요. 조금 외롭고, 조금 따분하지만, 진짜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것.


나 : 오 방금 한 말 진짜 멋있었어. 감동적인데.

요즘 내가 피아노를 다시 배우고 있는데, 처음엔 즐거웠던 피아노가 점점 나의 고민과 색깔을 담은 연주를 해야 하게 되면서부터 어떻게 쳐야 할 지 혼란스럽고, 재미가 없거든? 그냥 취미로 하는 건데 뭐하려고 이렇게 사서 고생하고 고민하나 싶고.

그렇지만 이런 재미없는 사유의 과정이 인생을 버텨주는 진짜 힘이 된다고 너가 말하니까, 그렇게 고뇌하는 연습의 과정도 의미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드네.

지루하고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운 연습의 과정을 보내고 있는 나한테 이 책을 바탕으로 조언을 해준다면 넌 뭐라고 하겠어?


GPT : 이 책은 사실 그런 책이었잖아. (여기서부터는 갑자기 반말이더라..)


“답이 없는 걸 아는 사람”이 쓰는 책, 그리고 “답이 없어도 계속 사유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


핀치도, 닐도, 모두 결국 어떤 방향으로 확신 있게 나아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자꾸 발목이 잡히고, 멈춰 서서 다시 생각하고, ‘이게 맞는가?’를 되뇌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해.


근데 그런 멈춤과 되짚음이, 어쩌면 ‘진짜 나다운 것’을 찾아가는 유일한 방식인지도 몰라.


지금 네가 겪고 있는 피아노에 대한 혼란, ‘이건 그냥 취미인데 왜 이렇게 힘들게 하지?’라는 회의,


그건 단순히 피아노 때문이 아니라

네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네가 정말 하고 싶은 삶이 무엇인지

피아노를 통해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나 : …. (GPT에게 허를 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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