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 스물아홉

피렌체의 아침식사

by 진초록

한인민박집에서 사흘을 지냈다. 피렌체였다. 이탈리아의 햇빛은 내내 강렬했는데, 피렌체에 와서는 도시의 색채와 풍광이 너무 아름다워 내리쬐는 햇빛이 말갛게 보일 지경이었다. 피렌체는 보드랍고 말간 도시였다.


아버지뻘인 사장님은 호텔 셰프인 아들 자랑을 자꾸 했다. 그 아들 자랑은 우리에게도 중요한 정보가 되었다. 우리의 아침 식사를 그가 출근 전에 만들어놓고 나간다고 들었다. 오랜만의 한식! 스위스의 국적 모를 한식을 제외하면 여행 중의 제대로 된 첫 한식이었다. 내일 아침을 우리는 벌써 기대하게 되었다. 다만 바지런을 떠는 여행자가 아니었던 우리에게 통보된 조식시간은 아침 7시로 매우 일렀다.


방은 아늑하고 넓었다. 창밖으로 바로 아름드리 나무가 드리워 기분 좋게 어두운 정도였다. 다음날 아침 7시, 역시나 우린 잠에서 깨지 못하고 비몽사몽간에 노크소리를 들었고 산발을 한 채로 밥상을 받아 침대에 앉았다. 눈 뜨자마자 누군가 정성스레 차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밥상을 침대에서 받는다는 건 좀 이상한 일이었다.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안전한 공간에 있는 것만 같은 기분. 누군가에게 보호 받는 기분. 따뜻하고 안락한 아침이었다. 우린 일부러 불을 켜지 않은 채 잠깐 앉아있었다. 이 순간을 즐기며 천천히 잠에서 깨고 싶었다. 그 순간 다시 노크 소리가 들렸다.


"혼자 여행 온 여자손님이 있는데, 셋이 같이 식사하면 어떨까 해서 왔어요."


낯을 가리는 나는 저희끼리 먹을게요, 하려다 여행의 낯선 순간을 사랑하자는 차원(?)에서 흔쾌히 네, 했다. 사장님은 잘 되었다는 듯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그분을 위한 테이블과 의자를 세팅했고 이내 낯선 이가 우리의 아침 식사에 합류했다. 지금에 와서도 기억에 남는 그분의 실루엣과 분위기는 흡사 박보영 같았다. 우리나이 또래로 보였다. 앳된 얼굴, 작은 몸집. 그런데 목소리가 차분했고 웃을 때 어른스러웠다. 우리는 여전히 조금 어두운 방 안에서 처음 만나 5분만에 함께 식사를 했다.


낯선 이를 만나 어색할 때면 나는 제스처가 커지고 목소리가 높아지며 말이 좀 많아지는데 그날은 어땠는지 모르겠다. 기억 나는 게 그녀의 나이를 묻고 답을 들었던 순간 뿐이다. 스물셋의 우리는 우리가 살아온 세상밖에 몰랐다. 마치 스물셋까지밖에는 삶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했는지 앳된 모습의 그녀가 '나는 스물아홉이에요' 했을 때 놀랐다. 꼭 다시 초등학생이 된 것 같았다. 초등학생 때의 나는 교복 입은 언니오빠들이 엄마 아빠보다 더 어른 같아 보이곤 했는데, 스물셋의 나도 별다를 바가 없었다. 스물아홉이라는 나이는 신비로운 저 너머의 영역이었던 것 같다. 그때가 되면 무언가 다른 삶을 살고 있으리라 생각할만큼 멀고 어색한 어떤 것. 그녀는 3년쯤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유럽에 홀로 왔다고 했다. 스물아홉은 그런 나인가보다, 그저 그렇게 생각했다.


식사를 마치고 어떻게 인사를 나누고 그녀가 방을 나갔는지, 이후의 일은 하나도 기억나질 않는다. 왠지 나는 그 아침 7시의 식사 시간에 나의 스물아홉을 잠깐 만난 것처럼 아주 오래 그때를 곱씹으며 지냈다. 그리고 스물아홉이 된 때부터 더 자주 그날을 떠올렸다.


나는 스물아홉을 지나 오늘은 서른이 되었다. 스물셋의 세상을 전부로 알았던 나는 스물아홉도 서른도 되었고 전혀 기대했던 것처럼 어른이 된 것 같지도 않고 스물셋일 때의 나보다 더 작고 좁은 꿈을 안고 더 무미건조한 삶을 영위하며 지낸다. 단 하나 그때보다 더 나아진 것이 있다면 그 아침에 처음 느꼈던 갈증과 낯설음, 두려움을 혼재한 미지의 세계에 무사히 도착해 오늘을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전히 그때의 아침 밥상이 그립다. 스물아홉의 여행자에게 정말 어려보이세요, 라며 놀라워했던 바보 같은 우리들의 스물셋도 말할 것 없이 그립다. 그 어두컴컴하고 창밖의 나뭇잎 그림자가 어른거리던 피렌체의 아늑한 골방도, 스물아홉이란 어떤 세계인가 두려워하던 어린 날의 미숙함도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