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현실의 균형
정통적인 전시였다.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는 최근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고 가장 기본의 것들을 담아내고자 하였고, 전시의 방향성이 뚜렷했다. 보도사진의 절절한 현실감보다는 조금은 편하게 사진을 볼 수 있게 하는 거리감이 있는 사진들이었다. 거리감을 주는 요인들은 바로 색체와 사진미학이었다. 절규하는 현실을 담아낸 사진보다는, 사진으로 담아낼 수 있는 순간의 아름다움과 현실의 균형을 맞춘 사진전이라고 느껴진다. 마찬가지로 사진들 속에 담긴 현실 또한 '비극'과 '일상'의 순간이 균형을 이루고 있어 누구나 더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는 사진전이었다.
개인적으로 보도사진의 주요 특징 중 하나가 거리감 없이 전해지는 현실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현실성을 통해 보도 사진에 담긴 곳곳의 '현실'들을 세상에 알리는 것도 보도사진의 중요한 역할이다. 세상에 알려야 하는 현실은 바꿔 말하면 알리지 않으면 쉽게 보이지 않는 '비극'을 뜻할 때가 많다. 보도 사진은 이 '비극'을 한 장의 사진을 통해 누군가의 '현실'로 전달한다. 하지만 이 현실성 때문에 때로 보는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도 보도 사진이다. 사진 속에 담겨 있는 현실이 비극일 때, 우리에게 그 비극이 현실로 다가올 때, 수많은 과정과 사람을 거쳐 우리의 눈 앞에 있게 된 이 사진 한 장을 마주하는 짧은 순간 우리는 그 너머의 있는 현실의 비극을 감당하지 못할 때가 있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이 글 처음에 쓴 타이틀이자 팜플랫의 첫 장에 있는 타이틀 글귀처럼 ("숨쉬는 카메라, 보도 사진의 편견을 깨다")
"보도 사진은 비극만을 담지 않습니다.
보도 사진은 격동적인 순간만을 담지 않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어찌 보면 실제 우리의 삶이 비극과 격동, 고요와 일상이 무수히 얽혀 끊임없이 흘러가는 순간순간들인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이번 전시는 내가 느끼기에 보다 '대중적'이다. 현실을 담는 보도 사진에 대중들이 더 편안하고 쉽게 다가올 수 있게 하는 요인이 거리감이라는 것이 아니러니 하기도 하지만, 결론적으로 전시에 등장하는 사진들은 생각보다 '보기 쉬웠다'. 감정을 극적이게 만드는, 눈을 못 떼게 만드는 그런 사진보다 잔잔한 사진들이 많았다. 극적인 감정과 순간보다 일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담긴 사진들이 많았다. 보도 사진의 현실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나에게는 살짝 아쉬웠지만, 그렇다고 일상'만'을 담지도 않았다. 현실의 안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닌 한 발자국 뒤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담긴 사진들이었다. 그것이 이번 전시의 매력이었고 전시가 의도한 방향성이기도 했다.
보도사진의 격동적인 현실성이 보다 온전하게 그 현실을 전달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했던 나에게도 이번 전시는 나름대로의 신선함을 주었다. 한 발자국 뒤에서 바라본 시선이 담긴 사진들은 기존의 보도사진들보다 '거리감'이 있었지만, 신기하게 그 거리감이 사진 속 대상들을 자세하게 바라보게 했다. 감정을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 세상을 보는 듯한 느낌. 숲 안에서 나무들을 하나하나 살피는 것이 아닌 밖에서 숲을 보는 느낌이려나.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위에서도 말했지만 사진들이 하나 같이 이뻤다. 이번 사진전에서 본 사진들은 사진 속에 담긴 현실만큼이나 색체의 존재감이 강렬했다. 색이란 요소가 피사체의 위로 올라오는 느낌이다. 색과 구도와 빛이 어우러져 사진 자체가 이쁘다 보니 사진에 담긴 현실이 아닌 사진이 보인다. 그렇게 '사진'을 보다 사진에 관한 설명을 들었을 때 다시 밀려오는 현실감은 눈에 보이는 이쁜 사진과 대비돼 또 다른 인상을 남긴다.
전시는 <사진 속으로 스며버린 감정, 온도, 소리>라는 3가지 테마와, <북한전>, <마스터피스전>으로 이루어져 있다. 팜플랫 사진을 참고하길 바란다. 그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구간은 <내게 남긴 온도>, <특별전 북한전-너를 다시 만난다면>, <기자전>이었다.
<내게 남긴 온도>에서는 사진의 색에서 느껴지는 온도가 가장 잘 보였던 구간이었다.
나에게 '온도'는 추상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 색에서 느껴질 수 있는 온도였다. 차가운 눈이 덮인 새하얀 색, 시원해 보이는 파란 하늘, 따뜻한 촛불의 주황색. 가장 이번 전시의 주제에 맞는 사진들이 있었던 구간이 아닌가 싶다.
<북한전>도 인상 깊었는데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사진에 담긴 사람들의 구도였다. 각 잡힌 대열의 사람들을 마치 패턴 마냥 빼곡하고 일정하게 담은 사진들이 많았다. 통일된 색, 반복되는 색들로 딱딱한 분위기를 풍김과 동시에 그 대열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 개개인의 표정도 세세하게 담겨 있었다. 북한에서 풍기는 이미지를 담은 듯한 사진들 뿐만 아니라 북한에서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담은 사진들도 많아 인상 깊었다. <기자전>은 전시의 가장 마지막 (영상을 제외하면) 구간이다. 현실과 조금은 거리감을 둔 보도 사진들을 이전에 배치했다면 여기에선 내가 위에서 말한 '현실성'이 조금 더 강조된다.
괜찮은 전시였다 생각하기에 가서 보기를 추천하며, 사진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보다는 전시를 더 잘 관람할 수 있는 팁을 적겠다.
전시를 보기 전 팜플랫을 제대로 읽고, 전시장 곳곳에 있는 테마를 나누는 구간의 시작에 있는 글들 또한 자세히 읽기를 추천한다.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사진이 기존의 보도 사진보다 거리감이 있기 때문에, 그 거리감을 사진이 아닌 글들이 채워준다. 그리고 이번 전시 글귀들이 유독 좋다. 부가적인 설명이 아니라 사진과 어우러지는 가이드라인 같은 역할을 하기에 꼭 글을 읽기를 추천한다.
같은 맥락으로 '오디오 가이드'(유료 3000원으로 매표소에서 구매할 수 있었다.)도 꼭 듣기를 추천한다. 사진 너머에 있는 현실을 설명해주어 '거리감'과 '현실'의 균형을 맞춰준다. 특히 이번 전시는 사진이란 매체로 놓칠 수 있는 것들을 언어라는 형태로 보완해주기에 오디오 가이드를 꼭 들으며 관람하기를 바란다.
전시명 : AP 사진전 "너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장소 :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1층
일시 : 2018. 12. 29 ~ 2019. 03. 03
관람시간 : 11:00~20:00
관람요금 : 성인 13000, 청소년 9000원, 어린이 7000원
writer 심록원
문화예술플랫폼 '아트인사이트'에 작성한 글입니다.
직접 전시를 관람한 후 적은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