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가 사랑받는 이유
자리에 앉아 무엇에 대해 글을 쓸까 하다 문득 지금 읽고 있는 책이 떠올랐다.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라는 에세이 책이다. 2016년에 처음 발행되었고, 2017년까지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차지한 유명한 책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는 다 읽었는지라, 리뷰를 적을까 하다 마음을 고쳐먹었다. 책은 너무 좋았다. 다만 내용에 대한 생각을 리뷰로 적는 걸 좋아하는 나에게 에세이는 너무 방대한 생각을 남긴다.
짧은 글을 여러 개 엮은 형식의 에세이 책은 자연스레 다양한 주제와 많은 생각이 한 책에 담겨있고, 그것은 독서의 과정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돼 더 많은 생각으로 확장된다. 가장 인상 깊은 몇 가지 내용을 뽑을 순 있지만, 책을 읽으며 얻을 수 있는 것들 중 일부에 불과하다. 그래서 조금 다른 것을 적기로 마음먹었다. 바로 에세이를 좋아하는 독자로서 에세이가 사랑받는 이유를 풀어 적기로 했다.
에세이는 현재 사랑받고 있다. 베스트셀러에서도 심심찮게 에세이 책을 찾아볼 수 있고, 유명한 에세이 책의 이름이 여기저기에서 자주 보인다. 에세이 시장 역시 확대되었다. 2015년 연간 등록 권수가 1668권이었던 것에 비해 작년 2018년에 에세이 분야 연간 등록 권수는 2695권에 육박한다.(*이미지 참고) 이미 유명한 작가의 (그래서 많은 이들에게 존경받는) 에세이뿐만 아니라, 새로운 신인 작가들의 에세이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래서 정리했다. 내가 에세이를 좋아하는 이유를 바탕으로 에세이가 사랑받는 이유 몇 가지를.
기본적으로 우리는 남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걸 좋아한다. 인간이 1인칭 생물이라는 점에서 타인에 대한 호기심은 어찌 보면 당연하기도 하다. 누구나 오지라퍼의 기질을 마음 한구석에 품고 있기도 하다.
에세이는 저자가 직접적으로 드러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만큼 저자의 일상과 삶 역시 아주 잘 드러난다. 많은 관찰 예능이 아직도 종영되지 않고 이어지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에세이 역시 타인의 삶을 들여다 보기에 최적인 매개체이고, 이 사실은 그 자체로 일종의 흥미를 유발한다.
마냥 흥미만 유발하는 게 아니다. 에세이에 드러나는 개인적인 삶은 '공감'을 일으킨다. 모든 이의 삶은 다 다르지만, 그래도 살아감에 있어서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무언가가 있지 않은가. 이 무언가가 '공감'을 일으킨다. 나와 비슷한 생각이나 가치관, 경험이 담겨있는 에세이를 발견할 때면 그 '공감'의 영향력은 더욱 막강하다.
공감은 창작물의 큰 매력 요소이다. 사람에게 여운을 주는 강한 요소이자, 책이나 글이 아니더라도 공감이 가는 무언가는 기억에 더 오래 남는다. 처음 보는 사람, 혹은 작품이라도 '공감'이 되는 순간 그들은 나와 연결이 된다. 나의 밖에 있으면서 동시에 '내 안에' 있게 되는 것이다.
공감은 많은 이들에게 위로가 되어주기도 한다. 때론 빠듯하고 빡빡하게 느껴지는 우리네 삶에 나와 비슷한 일상을 살아가는 또 다른 사람의 존재는 위로가 된다. 에세이에는 한 사람이 담겨 있다. 다양한 주제의 다양한 생각들이 담겨있는 이 다채로운 하나의 책을 관통하는 가장 큰 주제는 바로 저자라는 '개인'이다. 공감되는 에세이를 발견하고 읽었을 때 그 에세이에서 보이는 나와 비슷한 사람의 존재와 그 사람의 경험은 우리에게 위로가 된다.
에세이 그중에서도 일상 에세이의 많은 부분은 (사실 거의 대부분) 작가의 '생각'이 차지한다. 삶을 이루는 다양한 것들에 대한 생각과 인생에 대한 생각까지 다양하다. 그 생각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 시작될 때가 많은데, 그 과정 자체가 실제 우리가 매일 삶에서 하고 있는 것과 똑같다.
에세이 속에서 저자는 끊임없이 어떤 것을 접하고 생각한다. 사물, 혹은 어떤 상황, 혹은 또 다른 누군가와의 만남을 발단으로 생각을 시작하고 넓힌다. 이렇게 생각이 확장되는 과정이 에세이에는 고스란히 담겨있다.
내가 좋아하는 에세이의 성질은 책 속에서 작가가 끊임없이 하는 '생각의 확장'을 책을 읽는 독자도 동시에 하게 된다는 점이다. 책 속에 담긴 작가의 생각과 경험은 나에게 전해져, 또 다른 생각을 낳는다.
생각은 생각을 부른다. 이 성질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살아가는 많은 순간 도움이 된다.
폭넓고 깊이 있는 생각은 사람의 시야를 넓히고 성장하게 한다. 생각의 그릇이 커질수록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더 많은 것을 보는 만큼 생각의 그릇은 더욱더 커진다. 선순환이다.
에세이는 생각을 확장시키는 좋은 재료가 된다.
누구나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나'라는 틀 밖에서 새로운 것을 경험하기 쉽지 않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 한다. 나의 시야를 넓히려면 내 안이 아닌 내 밖에서 많은 것을 경험해야 한다.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는 건 시야를 넓히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다.
한 사람을 만난다는 건 그 사람의 인생을 만난다는 것과 똑같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살아온 시간과 경험이 지금의 그 사람을 만들었을 테니깐. 누군가를 만나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는 건 항상 값지다. 새로운 사람과 만나는 경험은 그 자체로 신선하기에 다양한 영감을 일으키고, 그 사람과의 대화는 내가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시야를 제공한다.
에세이의 화자는 상상 속 인물이 아닌 글쓴이 '자신'이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것에 한계가 있고, 만나더라도 진지한 이야기를 쉽게 할 수 없는 현실과 다르게, 에세이를 읽는 것만으로 아주 쉽게 나와 다른 상황에 있는 혹은 비슷한 상황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경험과 생각, 삶과 가치관등을 접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내가 에세이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에세이를 읽다 보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 진지한 이야기를 하며 그의 경험과 인생에서 또 다른 인사이트를 얻는 느낌이 든다. 물론 책이라는 수단이 실제 사람을 만나는 것만큼 입체적이고 상호작용이 되는 수단은 아니다. 하지만 책에서 작가의 삶과 생각을 가깝게 마주하며 그것들이 나에게 와 더 다양한 생각으로 확장되는 걸 보면, 마냥 일방적인 소통방식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에세이를 통해 사람을 만난다. 다른 책들보다, 보다 가깝게. 그리고 그 사람의 경험과 생각, 영감, 아이디어, 열정 같은 것들을 얻는다.
에세이를 통해 새로운 것을 얻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들의 삶에서 우리 자신을 찾기도 한다. 위에 적은 공감의 효과와 같은 맥락인데, 에세이에 담긴 작가의 일상은 우리의 일상과도 닮아있어, 그 상황에 자신을 대입해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내가 몰랐던 스스로의 모습이 보이는 등 내 삶에 대한 새로운 성찰이 가능할 때가 있다.
『언어의 온도』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질문이 가슴 한구석에서 살금살금 고개를 들 때가 있다. -중략- 이럴 때는 정답을 얻기 위해 애쓰기보다 정답에 가까운 것을 직접 찾아 나서는 게 오히려 현명한 방법일 수 있다. 예를 들면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물들이는 영화와 음악과 책 같은 삶의 참고서를 들여다보면서 스스로 주석을 달고 밑줄을 그으며 생각의 조각을 맞춰보는 식이다.
에세이는 좋은 '참고서'이다. 에세이에 담긴 다른 이의 경험이 나의 질문에 답을 내리는 과정에 '영감'을 주는 것과 동시에, 그들의 삶을 접하는 경험은 나 자신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나와 비슷한 가치관이나 상황을 가지고 있는 작가의 에세이는 나로 하여금 자기 객관화도 가능하게 한다. 글 속에 담겨있는 작가의 모습에 나를 투영해 나를 한 발자국 멀리서 보는 느낌이다.
자기 객관화의 좋은 점은 말해 무엇하나.
결국 에세이가 사랑받는, 그리고 내가 에세이를 사랑하는 이유는 살아가는 이야기가 담겨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것도 비유와 은유가 가득한 상상 속 이야기나 추상적인 시가 아닌, 진짜 한 사람의 생생한 경험이 담긴 살아가는 이야기.
답을 알려주는 사람보다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생각을 나누는 사람을 더 좋아한다. 에세이가 딱 그렇다. 그래서 나는 에세이를 좋아한다. 여러 에세이 책을 발간한 김신회 작가는 <월간 채널예스>에서 이런 글을 적었다.
서점을 잠깐 둘러봐도
마치 내 속을 옮겨 놓은 것 같은
에세이가 한 권씩은 꼭 있다.
그런 날은 있는 줄도 몰랐던
단짝을 처음 마주한 것처럼 가슴이 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두근거림을 느끼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writer 심록원
Artlecture에 기고한 글입니다.
*출처
-Photo by Florian Klauer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