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엘라 OTT편
안녕하세요, 영화 소스 디핑입니다.
깊이있는 영화 찍먹을 위한 소스로, 영화 <크루엘라>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디핑 팀은 막상 영화 얘기보다는 영화를 핑계로 그 내막에 있는 여러 가지 숨은 이야기를 푸는 것을 좋아해서요. 스포 없이, 영화 얘기인듯 아닌듯, 이상하고 알찬 맛을 더하는 중입니다.
이번 주 두 번째 주객전도 디핑 소스는 지난주완 또 색다르게 준비해봤어요. 역사와 경제, 시사 이슈 등... 여러 가지 재료들을 녹여보았는데요. 디즈니가 <크루엘라>를 통해 하고 싶었지만, 한발 물러나야 했던! 야심찬 신 사업 디즈니 플러스와 그 배경인 OTT 산업을 둘러싼 이런 저런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비밀인데 오늘 추가 소스가 아주 맛이 좋아요! (추가소스 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난 번 사진으로 인한 스크롤 압박을 눈감아 주십사 말씀드렸었는데요. 패션 이야기라 그런 줄 알았는데, 그냥 디핑 팀이 투 머치 토커였어요. 다음 주 소스 제조에는 읽기 편한 분량에 대해서도 열심히 고민해볼게요. 관련해서 피드백도 부탁드려요!
<크루엘라> 개봉 전, 디즈니가 새로 런칭한 스트리밍 서비스인 '디즈니 플러스'의 오리지널 콘텐츠로 독점 공개된다는 소문이 심심찮게 돌았었는데요. 디즈니 플러스가 뭔데? 그럼 한국에선 못 보는 건가? 하고 걱정했을 디즈니 매니아 디핑러가 한두 분쯤 계실지도 모르겠어요. 다행히 독점 공개 대신 '프리미어 액세스' 형태로 극장과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동시 개봉하는 방식을 취해서, 한국 관객들도 무사히 <크루엘라>를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반면 며칠 전에는 <블랙 위도우>의 주연배우 스칼렛 요한슨이 영화의 OTT 공개와 관련해 디즈니와 갈등을 빚고 있다는 사실이 화제였었죠. 디즈니의 이러한 행보 밑에는 굉장히 복잡한 이유들이 깔려 있는데요. 이번 디핑 소스에서는 그 산업적인 배경을 찍먹해 보실 수 있도록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미국 콘텐츠 산업의 구조
게임 체인저: OTT 산업의 등장
디즈니 플러스 이야기
모든 산업 구조가 그렇지만, 미국의 영화 산업은 특히나 거대 기업의 비중이 높은 편입니다. 2019년 20세기 폭스를 인수하는 '빅 딜'을 해낸 월트 디즈니 컴퍼니, 반대로 미국의 대표적 통신기업 AT&T에 인수되어 변화하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대응하고 있는 타임 워너 등이 대표적 모기업 역할을 하고 있어요.
이들 글로벌 미디어 그룹은 일종의 수직계열화 방식을 통해서 미국의 영화산업 시장을 이끌고 있는데요. 영화의 상영을 제외한 산업 대부분의 가치사슬 구조를 일부의 거대 모기업이 과점하고 있는 것이 두드러지는 특징입니다.
✔ 이러한 산업 구조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조금 더 알아볼게요.
1940년대까지는 영화의 상영 부문까지도 제작사가 관장하는, 완벽하게 수직 통합된 시장구조를 가지고 있었답니다. 다만 당시의 미국 사회에서도 막 떠오르기 시작하는 미디어와 콘텐츠 산업의 성장 가능성을 점쳤었던 모양으로, 영화 산업 내 지나친 독과점을 방지하기 위한 최초의 법적 판결을 통하여 상영 부문은 철저하게 분리되었어요. (1948년 파라마운트 판결)
✔ 그런데 이 점이 오히려 산업을 키우는 데에 역으로 작용합니다.
판결 이전에는 하나의 뿌리를 가진 회사가 영화를 스스로 만들고(제작) 마케팅 등을 통해 고도화한 뒤(배급) 최종 소비자에게 판매하는(상영) 단계까지 모두 직접 맡아서 진행했어요. 때문에 영화 표를 팔아 조달하는 현금 수입을 자본금으로 삼아 다시 영화를 제작하는 관행이 자연스러웠습니다. 그런데 그 수입이 상영 전문 기업의 몫으로 분리되면서, 영화사들이 "보다 전략적으로" 사업의 근간이 되는 자본, 즉 돈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거예요. 영화를 만들기 전 미리 거액의 제작비를 투자받을 수 있도록 파트너 기업을 찾고, 나아가 그 투자금을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운용할 수 있도록 모기업의 규모를 키우기도 했습니다.
경제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디핑러 분들이시라면 방금의 문장이 낯설지 않으셨을 텐데요. 아주 평범한 현대 기업의 형태라고 볼 수 있지요. 감독과 작화가들이 모여 스토리를 짜고 그림을 그리고 영화를 찍던 '스튜디오'가, 차츰차츰 성장하여 하나의 초대형 '글로벌 기업'이 되기까지. 이렇듯 꽤나 복잡한 역사적, 경제적 배경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고 있는 초대형 블록버스터 영화는 이러한 맥락에서 만들어질 수 있었던 자본의 장르인 셈이에요.
디핑러 여러분께 조금은 지루할 수 있는 옛날 이야기를 소개한 이유가 있었는데요. 최근 전 세계적 미디어 소비를 이끌고 있는 플랫폼인 OTT 산업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서입니다.
✔ 그런데, 독과점 구조랑 OTT 산업이 무슨 상관?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역사를 거울로 삼는다는 말 아시죠? 1940년대에는, 정부가 영화와 콘텐츠 산업에서 ‘극장’을 뚝 떼어냈어요. 막 출범하기 시작한 미디어 산업의 구획을 확정하고, 수익 구조 등을 구체화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럼 지금은? 거대해진 글로벌 미디어 기업들이 다시 '상영'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영화를 둘러싼 게임의 룰이 변화했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관람한다는 '개념'은 영상을 본다는 '행위'로 바뀌고 있고요. 전통적인 영화관 방문과 관람이 내 방 소파에 앉아서 켜는 11인치 아이패드 화면으로 서서히 대체되고 있잖아요. 콘텐츠를 공급하고 소비하는 트렌드 자체가 전환되고 있는 셈인데요. 산업을 선도하는(혹은 선도하던) 기업들 입장에서는 쫓아가지 않을 수 없겠지요.
✔ 그 새로운 트렌드인 OTT 산업에 대해 짧게 이야기해볼게요.
OTT란 Over-the-top의 약자로, 무선 통신을 통해 어디에서나 자유롭게 콘텐츠를 시청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입니다. 기존에는 유선 통신망 기기의 일종인 셋톱박스를 TV 뒤에 직접 연결해서 지상파 방송사나 통신사업자가 제공하는 콘텐츠들을 받아보았는데요. 바로 그 셋톱박스(top)의 제약 없이 콘텐츠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뜻에서 'Over' the top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월 구독으로 사용하고 있는 넷플릭스, 왓챠, 웨이브 등의 스트리밍 서비스가 모두 OTT 서비스의 일종이에요.
스마트 기기의 사용이 보급화 → 대중화 → 일상화되며 미디어 이용 환경 또한 필연적으로 급변했습니다. 극장에 직접 방문하는 전통적인 영화 관람보다는 내 방 침대 위에서 소형 기기로 재생하는 캐주얼한 감상이 주된 트렌드가 되고 있는 것이죠. 콘텐츠를 시청하는 방식뿐 아니라, 영화라는 재화를 구입하고 결제하는 일련의 행위 또한 모바일 환경에서 간단하고 편리하게 이루어지고요. 이러한 변화 속에서,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산업 영역을 개척한 게임 체인저들: OTT 사업자가 등장했습니다.
✔ 새로운 방식이라고 함은?
넷플릭스를 예로 들어볼게요. 설립 초기(1990년대 후반~2000년대 후반) 넷플릭스의 사업 모델은 주문형 DVD 대여 서비스였습니다. 넷플릭스 사이트에서 원하는 DVD 대여를 신청하면 집까지 배송해 주는 방식이었는데요. 유사한 서비스 모델을 모바일 환경으로 전환한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처음 시작한 것은 2007년, 애플이 첫 아이폰을 출시한 바로 그 해였습니다. 변화하는 흐름을 재빨리, 그리고 정확히 읽고 신사업에 과감히 뛰어든 거죠. 기반이 될 수 있는 통신 인프라나(타임워너의 경우) 영상 콘텐츠의 자체 제작 역량(월트디즈니의 경우) 없이, 온전히 서비스만을 가지고 사업을 전개하는 플랫폼 사업의 개척 주자였다는 점에서도 주목해 볼 만한 사례입니다.
예상치 못한 신흥 세력의 등장으로 콘텐츠 산업 자체의 구조와 형태가 완전히 재편되었으니, 기존 산업의 '용'이었던 글로벌 미디어 기업들 또한 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겠죠. 앞선 1940년대의 역사를 반전된 거울로 삼고 부리나케 새로운 수익 창출을 위한 신사업에 뛰어들고 있는데요. 특히 주목해 볼 만한 서비스가 있습니다. 바로 오늘의 주제 영화 <크루엘라>의 제작 및 배급을 맡은 월트 디즈니의 야심찬 프로젝트. 디즈니 플러스입니다.
디즈니 플러스는 모기업인 월트 디즈니 컴퍼니에서 스트리밍 서비스를 위한 별도의 법인(Disney Streaming Services LLC)을 설립하여 분사 운영하는 OTT 서비스입니다. 2019년 말 미국에서 첫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빠르게 성장하며 넷플릭스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는데요. 런칭한지 2년도 채 되지 않아 전 세계 구독자 수 1억 명을 돌파했는데(2021년 3월 기준), 넷플릭스가 구독자 1억 명의 고지를 밟는 데에는 정확하게 딱 10년이 걸렸어요. 그만큼 세상이 전보다 훨씬 빠르게 돌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정말 엄청난 상승세란 사실 또한 무시할 수 없습니다.
✔ 어떻게 이렇게 컸지?
디즈니 플러스가 가진 가장 큰 무기는 뭐니뭐니해도 오리지널 콘텐츠입니다. 디즈니 작품들은 대중에게 친숙할 뿐만 아니라 매니아 팬층도 탄탄하잖아요. 그런데 여타의 스트리밍 서비스에서는 2019년을 기점으로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어요. 디즈니가 서비스 준비 단계에서 타사와의 공급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보석함마냥 꽁꽁! 숨겨두어 왔기 때문인데요. 우리가 기억하는 바로 그 고전 명작 애니메이션들을 포함하여, 월트 디즈니 컴퍼니 산하의 유수 스튜디오들: 마블, 픽사, 21세기 폭스, 내셔널 지오그래픽 등이 보유한 방대한 장르의 콘텐츠 8천여 편을 독점 스트리밍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유하고 있는 콘텐츠의 힘 그 자체로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고 출발하는 것이죠.
또한 기존 영화 및 콘텐츠 산업의 기반을 통해 다져놓은 막강한 자본력을 활용, 앞으로의 오리지널 콘텐츠 규모도 적극 확장하고 있다고 해요. 아직까지 굳건한 1위 경쟁사인 넷플릭스 역시 OTT 서비스의 장기 구독 유지에 핵심이 되는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과 배급에 주력하고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사업 근간의 격차로 인하여 총 편수는 디즈니에 비해 턱없이 적은 천여 편에 불과한 상황이라네요.
그간 디즈니 플러스에서 독점 공개되었던 오리지널 콘텐츠 중 가장 큰 파급력을 가져왔던 작품들로는 영화 <뮬란>과 <소울>, 시즌 2까지 방영된 스타워즈 드라마 시리즈 등이 있었습니다. 언급한 영화 두 작품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당시 디즈니 플러스가 서비스되지 않던 일부 국가에서는 시간차를 두고 늦게나마 극장에서 개봉했었는데요. 영화 <뮬란>의 경우, 디즈니 플러스에서의 최초 공개 직후 북미 내 앱 다운로드 건수가 전주 대비 68% 급증하는 성과를 거두었답니다. <크루엘라>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로 공개될 것이라는 소문이 종종 들렸었어요. 다만 다소 회복된 코로나19 상황과, 여전히 디즈니 플러스 서비스가 상용화되지 못한 국가에서의 상영 문제 등을 고려해 극장 개봉과 동시에 공개되는 '프리미어 액세스' 형태를 취했다고 하네요. 우리나라 관객에게는 호재였지요.
그런데... 마냥 좋은 소식이라고 볼 게 아니었어요.
며칠 전, 비슷한 상황을 두고 큰 이슈가 있었습니다. 마블 프랜차이즈의 대표 여성 히어로이자 동명의 영화 <블랙 위도우>의 원톱 주연배우 스칼렛 요한슨이 디즈니를 상대로 법적 소송을 제기한다는 외신 보도가 잇따랐는데요. 최근 여타의 디즈니 제작·배급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블랙 위도우> 역시 극장 개봉과 동시에 디즈니 플러스의 스트리밍 서비스에서도 공개된 바 있었죠(프리미어 액세스). 그런데 이 방식이 배우와의 협의 없이 디즈니의 독단으로 진행되었다는 주장이에요.
논쟁의 핵심은 러닝 개런티(흥행 실적에 따른 추가 수익)입니다. 스칼렛 요한슨에게 지급될 러닝 개런티가 극장 수익을 기준으로만 책정되기 때문에, 극장 외 OTT 채널에서의 공개로 약 5천만 달러 가량의 손해를 입었다는 주장인데요. "디즈니가 근시안적인 전략에 따라(=스트리밍 서비스를 성장시키기 위해) <블랙 위도우>의 흥행 잠재력을 희생시켰다"고 직접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디즈니 측은 곧바로 계약 조건에 어긋난 점은 없으며 배우에게 추가 수익에 상응하는 개런티 또한 지급할 것임을 반박했지만, <크루엘라>를 비롯해 같은 방식으로 공개되었던 최근 영화들에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어... 공방은 쉬이 사그라지지 않을 것 같아요.
소비자의 입장에서, 새로운 서비스와 기업의 성장도 중요하지만... 그 이면의 수익 분배 문제에 있어서도 좀 더 장기적인 관점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
✔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요?
지난해 12월 열린 투자자 행사에서 2021년 중 디즈니 플러스의 한국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임을 공식적으로 발표한 바 있었는데요. 이후로 꾸준히 준비하고 있는 모양이에요. 번역 관련 인력의 리쿠르팅 공고가 올라오는 등 디즈니 플러스의 한국 지사가 정비되고 있는 모습이 보이고요, 간소하지만 출시 소식을 메일링으로 업데이트하기 위한 한국어 버전 공식 사이트도 오픈되었습니다.
또한 서비스를 출시한 국가들에서 보였던 행보대로 기존 콘텐츠의 제휴 공급 계약을 차츰 정리하고 있어요. 웨이브, 왓챠 등의 국내 OTT 서비스들에서는 5월경부터 디즈니 영화들이 순차적으로 내려간 바 있었고요. 자체 유료방송 채널인 '디즈니 채널', '디즈니 주니어' 2개 채널의 경우 9월 말부터 송출이 중단될 예정입니다. 이로 미루어 보아 몇몇 국내 언론에서는 이르면 9월께 디즈니 플러스의 공식 서비스가 출범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답니다.
디즈니의 자본만이 아닌, 차별화된 색깔이 묻어난 개성있는 콘텐츠와 서비스를! 디핑 팀도 기대해 보겠습니다.
오늘의 디핑 소스는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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