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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딥마고 Oct 1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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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세상이라서 그렇다고 했다.


새벽에 일어나서 명상을 하고 공부를 한다고 했다. 아무래도 늦은 밤이 좋은 나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일상의 결심들이 '모닝 루틴'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나는 상상할 수 없어요. 그런 부지런함은.

내가 답했고, 해보지 않았고 해 볼 계획도 없었기 때문에 그 부지런함이 가져다주는 효용을 궁금해했다.


마음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세상이라서 그렇다고 했다. 그때만큼은 내 인생이 내 마음대로 흘러가는 것 같은 자아효능감을 느낄 수 있어서라고 했다. 그 외에도 많은 효용이 있겠지만, 나는 오로지 그 효능감에 대해서만 오늘 운전하는 내내 생각했다.


우리가 성취한 것은 오롯이 우리의 것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큰 자본의 논리에서 평가되고, 자본의 논리에 따르지 않는 것들은 아무리 알맹이가 튼튼하더라도 그저 우리만의 마을에서 작은 축제를 하고 마무리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의 성취는 그 거대한 흐름 안에서 노동자가 자기 몫의 임금을 받고 대가를 치른 것으로 치환되어 버린다. 이렇게 해서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지 결정할 수도 없다. 몇십짜리 작은 즐거움을 포기해봤자, 몇십억짜리 큰 안정감은 오지 않는다.


우리는 작다. 모든 힘은 자본에서 나온다. 아니, 우리는 작지만 위대하다. 모든 힘은 물론 인간에게서 나온다. 인간은 지구를 망치면서 매 순간 연결되어 있고, 가끔은 눈물 나도록 위대한 일을 한다. 모든 것이 0과 1로 귀결되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뒤섞여 비선형적인 점으로 파편화되지만,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조율되는 일은 그 어떤 것보다도 아날로그 하다. 우리의 주파수는 숫자의 입력으로 결코 맞춰지지 않는다. 다이얼을 돌린다. 늘렸다 줄였다 한다. 한숨을 쉬고, 손을 잡고, 서로 달라서 싸우고 서로 다름을 인정한다. 그 누구도 우리가 완전히 멸종할 때까지 우리를 평가할 수는 없다. 우리는 편집점 하나 주지 않는 악독한 빌런이자, 히어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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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인이 모두 얼굴의 반을 가리고 다니는 이 수상한 시기에 나는 온갖 감각에 탐닉하고야 만다. 시각적 자극에 늘 스스로를 노출시키는 건 물론이고, 전에 없이 청각과 후각에, 미각에 예민해졌다. 늘 시달려왔던 기록에의 강박은 SNS 중독으로, 과도한 자기 검열로, 독서로, 사진 촬영으로, 그리고 급기야 직업 활동에까지 그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지만, 그 모든 것이 커다란 용광로 속으로 녹아들어 의식의 차원으로 부상하는 모습을 나는 별 수 없이 지켜보고 있다.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을 수 없고 글을 쓸 수도 없다고 김겨울이 썼다. 그에게는 음악과 글이 하나의 샘에서 나온 물줄기라서 그렇다고 했다. 가사가 없는 음악도 계이름으로 인식되어, 글의 운율에 집중할 수 없다고 했다.


나에게 음악은 향이나 색과 같아서 무드로 기억된다. 나에게 음악은, 정말로 공감각적인 무엇이다. 글을 쓰거나 글을 읽을 ,  시절을 보낼  영상 편집할 때처럼  눈이 담는 시각적 자극에 다른 감각들을 더한다. BGM 깐다. 향을 입힌다.  하나에 집요하게 집착한다. 옷의 질감을 세심하게 고른다. 이것은 어쩌면 삶에 대한 처절한 사랑이다. 시간을 흘려보내고 싶지 않다. 사람들과의 연결됨을 오래오래 마음에 담아두고 싶다. 어떤 향을 맡았을 , 어떤 음악을 들었을 ,  책의 글귀가 떠오르고  구름들이 또렷하게 재생되었으면 한다. 단서들을 곳곳에 배치하고,  시간의 무상함들을 애써 잡아두려 한다. 헛될지언정 남겨야 한다. 그래야 내일을 살 수 있다.


아날로그 기록장치들처럼 삭제 버튼 하나로 사라지지 않는 단서들이  움큼씩 시간의 도처에 있다.


이렇게 하면 마음대로 되는 것이 하나쯤은 있는 세상으로 착각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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