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주말은 오전엔 모임, 오후엔 바다였다

나를 만든 가장 따뜻한 반복에 대하여

by 루츠


송정바닷가에서


어린 시절의 기억은 이상하다.

큰 사건보다도 별것 아닌 듯

지나간 장면 하나가 오래 남는다.

내게는 그런 장면이 있다.

주말 오전엔 모임에 다녀오고,

오후엔 송정 바닷가로 향하던 가족의 뒷모습.

아버지는 낚싯대를 펴고, 어머니는 그 곁에 앉아 있고,

나는 동생과 갯바위 틈을 뒤지며 게를 잡고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단순한 반복이 내 삶의 가장 깊은 뿌리가 되었다.


돌이켜 보면 내 유년기의 주말은

늘 일정한 리듬을 가지고 있었다.

오전에는 모임에 갔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빠지는 일이 없었다.

그때는 그게 그저 당연한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아이를 키우는 나이가 되고 보니,

어린 아이 셋을 데리고

그 길을 꾸준히 다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수고였는지 비로소 알 것 같다.

막내는 유모차에 앉아 있었고,

둘째는 그 앞 발판에 올라탔다.

나는 손잡이를 붙들고 함께 밀었다.

어머니는 가방을 들고 걸었다.

처음에는 어머니 혼자 그 길을 지켰고,

어느 순간부터는 아버지도 함께했다.


나는 신앙을 교리보다 먼저 그런 풍경으로 배웠다.

누군가의 입으로 설명된 말보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한 가족이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는 모습으로 먼저 배웠다.

오전의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바닷가나 계곡으로 향했다.

특별한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대단한 준비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시간들은 늘 충만했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 집은 넉넉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궁핍한 얼굴로 살아간 집도 아니었다.

돈보다 먼저 시간을 함께 썼고,

비싼 음식보다 먼저 같은 냄비의 라면을

나누어 먹을 줄 알았다.

송정 바닷가는

내 유년기의 한 부분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아버지는 낚싯대를 펴고 바다를 바라보았고,

어머니는 그 곁에 앉아 있었다.

나는 동생과 함께 물 빠진 갯바위 사이를 돌아다녔다.


그저 뛰어노는 아이였다기보다,

주변을 샅샅이 뒤지며 뭔가를 찾고

손에 넣는 아이였던 것 같다.

버려진 낚싯줄과 낚시바늘을 주워 오고,

작은 고동을 잡아 미끼로 쓰고,

얕은 물 사이를 헤엄치는

작은 물고기를 잡으려 애썼다.

나무젓가락을 들고 바위틈을 뒤지다 게를 찾아내면,

그걸 양파망에 넣는 일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면

외할머니는 그 게들을 후라이팬에 넣고

간장을 두 스푼쯤 두른 뒤 뚜껑을 덮어 익혀주셨다.

그 냄새가 얼마나 고소했는지,

지금도 그 장면을 떠올리면

입안에 짭조름한 기억이 살아나는 것 같다.

어린 나에게 그것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었다.

낮에 잡은 것을 저녁에 함께 먹는다는 것은,

세상과 손을 맞대고 무언가를 얻어내는 기쁨을

아주 작고 분명한 방식으로 알려주었다.


한 번은 제법 큰 게를 잡다가

엄지손톱을 집게에 물린 적이 있다.

그때의 아픔도 기억나지만,

더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은

아버지가 급히 달려와 내 손을 빼주던 모습이다.

이상하게도 내 어린 시절의 놀란 기억들 끝에는

늘 보호가 있었다.

위험은 있었지만 버려짐은 없었고,

아픔은 있었지만 그 곁엔 늘 어른의 손이 있었다.


여름이면 계곡도 자주 갔다.

아버지는 어린 동생들이 놀 수 있도록

얕은 물가에 돌을 하나씩 쌓아

작은 웅덩이를 만들곤 하셨다.

그 손놀림을 보며 나는 아버지가 단지 가족을 데리고 놀러 나온 사람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우리를 위해 작은 세상을 만들어 주는

사람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그 옆에서 먹던 찐감자와

코펠에 끓인 라면은 정말 맛있었다.

세상에는 더 비싸고 더 화려한 음식이 많았겠지만,

내 기억 속에서는 그때의 라면이 가장 뜨겁고

찐감자가 가장 다정하다.


돌이켜 보면 내 어린 시절은

가난과 불편함이 전혀 없던 시절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 기억은 결핍보다

온기를 더 오래 품고 있다.

좁은 집, 붙어 자던 밤,

늦게 들어오는 아버지를 기다리며 보던 텔레비전,

외가의 북적이는 명절, 친척들, 바닷가와 계곡.

그 모든 것이 내 안에서 하나의 질감으로 남아 있다.

그 질감은 화려하진 않지만 단단하다.

그리고 그 단단함은 아마 지금의 나를 이루는 가장 오래된 바탕일 것이다.




나는 가끔 내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막막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특별한 이론보다 먼저,

어린 시절 내 부모의 뒷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아버지는 낚싯대를 펴고 있었고,

어머니는 그 옆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곁에서 자랐다.

크게 가르치지 않아도 배울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지켜야 할 것을 몸으로 보여주는 사람들 곁에 있으면,

아이도 자연스럽게

삶의 순서를 배우게 된다는 것을

나는 그때 이미 배웠는지 모른다.


오전에는 모임에 갔다.

오후에는 바다로 갔다.


아주 단순한 문장인데,

지금 돌아보면 그 안에 내 유년기의

거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

신앙은 한 주의 가장 먼저 놓이는 자리였고,

가족은 그 신앙을 따라 함께 움직였고,

자연은 우리를 넉넉히 받아주었으며,

라면 한 냄비와 찐감자는

하루를 충분히 잔치로 만들어 주었다.


나는 그 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그립다는 말보다 먼저 고맙다는 말을 하게 된다.

그 시절은 지나갔지만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내 안에는 송정의 바닷바람이 남아 있고,

갯바위 틈을 뒤지던 어린 손이 남아 있고,

가족이 함께 둘러앉아 먹던 저녁의 온기가 남아 있다.


어쩌면 나는 아직도 그 시절의 주말을 따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전히 신앙이 삶의 중심이고,

가족과 함께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을

귀하게 여기며,

비싼 것보다 함께한 경험의 밀도를

더 오래 기억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 집 주말은 오전엔 모임, 오후엔 바다였다.

그리고 나는 그 단순한 반복 속에서,

삶에서 가장 오래 남아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