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뚝뚝한 사랑은 때때로 말보다 편지에 더 가까웠다
살다 보면 어떤 집은 말이 많고,
어떤 집은 침묵이 많다.
우리 집은 후자에 가까웠다.
서로를 아끼지 않는 집은 아니었지만,
그 마음을 매번 입 밖으로 잘 꺼내는 집도 아니었다.
특히 남자들은 더 그랬다.
괜히 쑥스럽고,
괜히 목이 메고,
괜히 별일 아닌 척하고 싶어서
중요한 말일수록 오히려 더 입안에서 맴돌다 사라지곤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말들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말이 되지 못한 마음은
가끔 편지가 되어 나타났다.
아버지는 종종 내게 편지를 써주셨다.
직접 얼굴을 보고는 쉽게 하지 못하는 걱정,
괜히 잔소리처럼 들릴까 삼키게 되는 염려,
아들을 향한 기대와 사랑,
그리고 조용한 당부 같은 것들을
아버지는 편지라는 방식으로 건네셨다.
누구에게나 삶에서 결정적인 시기가 있다.
중요한 시험을 앞둘 때,
처음으로 집을 떠나 독립할 때,
결혼으로 부모의 품을 벗어날 때,
혹은 첫 아이가 태어나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의 문 앞에 서게 될 때.
그럴 때 사람은 겉으로는 담담한 척해도
속으로는 안다.
이제부터는 무언가가 정말 달라질 것 같다는 것을.
인생 전체가 바뀌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예감 앞에서
뒷목이 서늘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아버지의 편지는 대개 그런 때 찾아왔다.
내가 어딘가를 건너기 직전,
이전의 나에서 다음의 나로 넘어가기 직전,
말로는 다 붙잡을 수 없는 시기마다
아버지는 편지를 건네셨다.
그걸 읽을 때마다 늘 느꼈다.
아, 아버지는 원래 말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많아서 말이 조심스러운 사람이구나.
편지는 이상하다.
말보다 느리게 도착하는데,
오히려 더 깊이 남는다.
대화는 그 자리에서 지나가고,
전화는 목소리에 밀려 감정이 흩어질 때가 있고,
문자메시지는 너무 가볍게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손으로 눌러쓴 편지는 다르다.
한 글자씩 적는 동안의 망설임이 남고,
종이 위의 눌림과 멈춤이
마음의 무게를 함께 데리고 온다.
받는 사람도 자기 속도로 천천히 읽는다.
그래서 편지는 늦지만, 오래 도착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 집 남자들에게 편지는
감정을 직접 드러내지 못하는 서툰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진심에 가까운 방식이었던 것 같다.
말로 하면 괜히 민망해질 것 같은 것들,
서로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눈을 피하게 될 것 같은 문장들,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괜히 약해지는 것 같은 마음들.
그런 것들이 편지 안에서는
조금 더 정직해졌다.
그래서인지 요즘 나는
내가 쓴 글을 손으로 베껴
아버지께 우편으로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단순히 낭만적이라서가 아니다.
손편지가 가진 느린 온도와 무게를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방식이
어쩌면 내가 아버지에게서 받은 표현 방식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몰랐다.
아버지가 편지로 전하던 말들이
얼마나 오래 마음속에 남는지,
얼마나 조심스러운 사랑의 모양이었는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무뚝뚝한 사람에게 편지는
말을 대신하는 도구가 아니라,
말보다 더 깊게 남는 마음의 형식이라는 것을.
우리 집 남자들은 많이 말하지 않았다.
대신 아주 가끔,
꼭 필요한 순간에
편지로 마음을 말했다.
그리고 나는 이제
그 오래된 방식이 참 좋다.
느리고, 번거롭고,
요즘 세상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그래서 더 깊다.
쉽게 보내지 못하는 만큼,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아버지가 내게 그랬듯,
나도 언젠가 그렇게 말하게 될 것 같다.
입으로 다 하지 못한 마음을
종이 위에 천천히 눌러 적으며.
그러고 보면
우리 집 남자들은 표현이 서툰 사람들이 아니었다.
다만,
자기 마음을 가볍게 다루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들의 진심은 늘
말보다 조금 늦게,
편지의 모습으로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