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조립하고 눈으로 읽으며 자라난 시절에 대하여
지금 돌아보면 내 십대 초반은
이상할 만큼 반짝이는 것들로 가득했다.
그 반짝임은 화려한 조명 같은 것이 아니었다.
학교 앞 문방구 진열대 위에서 빛나던
미니카 모터의 금속빛이었고,
아버지 공구통 안 드라이버 끝에서 번뜩이던
묵직한 빛이었고,
학교 운동장 하늘 높이 올라가던
방패연 끝에 걸린 겨울 햇빛 같은 것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늘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 했다.
레고를 좋아했지만 우리 집에 레고는 많지 않았다.
그래서 레고가 많은 친구 집에 가는 일은
내게 작은 축제였다.
설명서를 따라 차근차근 조립하는 일도 싫지 않았지만,
내가 정말 좋아했던 것은 정해진 답이 아니라
내 머릿속에 떠오른 모양을
그대로 손으로 만들어내는 일이었다.
나중에는 그 친구가 집에 없어도
그 집 아주머니께
“레고 가지고 놀고 싶어서 왔어요”
하고 들어가
혼자 조립하며 놀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부터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주어진 것을 잘 사용하는 것보다,
조금 모자라더라도
내 방식으로 다시 조합하는 일을 더 좋아했다.
십대 초반의 내 한가운데에는 미니카가 있었다.
모터를 넣고, 건전지를 넣고, 뼈대를 조립하고,
바퀴와 기어와 롤러를 달아
트랙 위를 달리게 하는 그 작은 자동차는
어린 내게 하나의 세계였다.
텔레비전 속 만화는 늘 내 심장을 뛰게 했다.
‘달려라 부메랑’, ‘우리는 챔피언’.
그 만화들 속 자동차는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라
속도와 승부, 기술과 자존심이 함께 실린
작은 우주 같았다.
학교 앞 문방구 뒤뜰에는 트랙이 있었다.
그곳은 동네 아이들에게
경기장이자 연구실 같은 곳이었다.
처음에는 문방구에서 파는 미니카를
그대로 조립해 들고 가서 달렸다.
그러면
늘 문방구 아저씨의 미니카를 이길 수 없었다.
나중에야 알았다.
그 차 안에는 블랙모터가 있었고,
충전 건전지가 있었고,
스펀지 타이어와 앞뒤 이중 롤러,
밸런스를 맞춘 세팅이 숨어 있었다는 것을.
그 사실을 알고 난 뒤부터
내 미니카는 더 이상 완성품이 아니었다.
조금씩 바꿔가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용돈을 받으면 한꺼번에 쓰지 않았다.
몇 주를 모아 충전 건전지를 사고,
또 몇 주를 모아 블랙모터를 사고,
다시 돈을 모아 앞뒤 범퍼 파츠를 샀다.
그렇게 내 차는 조금씩 달라졌다.
그러면서 나는
빠르게 달리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도 배웠다.
속도를 올리면 코너에서 날아가 버렸다.
그때 문방구 아저씨는 밸런스 세팅에 대해 알려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마 물건을 더 팔기 위한 친절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린 내게 그것은 하나의 진리처럼 느껴졌다.
빠르기만 해서는 끝까지 가지 못한다는 것.
잘 달리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
지금 돌아보면 그 감각은 꽤 오래 남았다.
자동차를 생각할 때도,
삶을 생각할 때도,
사람을 대할 때도
나는 늘 비슷한 질문을 한다.
더 빠른가보다,
더 오래 갈 수 있는가를 먼저 보게 된다.
어쩌면 그 시작이 그 문방구 뒤뜰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내게 작은 가정용 공구세트를 사주셨다.
서류가방만 한 케이스를 열면
펜치, 롱노즈, 드라이버, 니퍼, 커터칼,
본드 같은 것들이
가지런히 들어 있었다.
나는 그 공구통을 너무 좋아해서
밤이면 베개 옆에 두고 자곤 했다.
이상하게도 공구는 어린 내게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든든했다.
무언가 잘못되었을 때
손에 쥘 수 있는 답이 있다는 느낌이었던 것 같다.
그 감각의 원형은 아마 아버지였을 것이다.
어머니는 가끔 아버지를 ‘박가이버’라고 부르셨다.
선풍기나 세탁기가 고장 나면 아버지는 공구통을 열었고,
자전거가 펑크 나면 바퀴를 떼어 수리해 주셨고,
브레이크 케이블과 안장 높이도 능숙하게 조절해 주셨다.
어린 내 눈에 아버지는
고장 난 것을 다시 제대로 돌아가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세상에는 망가지는 것들이 많았지만,
그걸 고칠 수 있는 사람도 있다는 걸
나는 아버지를 보며 배웠다.
그 시절의 나는 기계만 좋아한 것이 아니었다.
책도 좋아했다. 아주 많이.
어느 날은 동네 형 집에서 우연히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책상 밑에 빼곡히 꽂혀 있던,
흰 바탕에 글자만 많은 책이었다.
이상하게도 그 책이 너무 재미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불편한 자세로 순식간에 다 읽어버렸고,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니 벌써 어두워져 있었다.
그 책의 제목은 『초원의 집』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그 형 집에 가서 시리즈를 빌려 읽었다.
이상하게도 만화책보다 글자책이 더 재미있었다.
만화는 너무 빨리 끝났고,
활자 속에는 훨씬 더 넓은 세계가 들어 있었다.
로빈슨 크루소, 보물섬, 삼총사,
몬테크리스토 백작, 노인과 바다.
그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보니
내가 읽은 것은 세계문학전집이었다.
나는 아주 어린 나이에
활자 속에서 멀리 떠나는 법을 배웠다.
그 무렵부터 글 읽는 속도도 빨라졌다.
어느 날은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길가의 간판과 전화번호가
한눈에 읽혀 들어오는 경험을 했다.
세상이 갑자기 문장으로 열리는 것 같았다.
눈으로 보는 것이 곧바로 머리로 흘러 들어오는 느낌.
그 순간 나는 아마 처음으로,
읽는다는 것이 단순히 공부가 아니라
하나의 능력이고 기쁨이라는 걸 몸으로 느꼈던 것 같다.
학교 특별활동 시간에
골판지를 정교하게 자르고, 함을 만들고,
한지를 입혀 장식하는 시간도 좋아했다.
하교 시간이 지났는데도 끝까지 남아 완성하곤 했다.
선생님은 그런 나를 기다려 주셨다.
나는 왜 그렇게 끝까지 만들고 싶었을까.
아마 미완성인 채로 남겨두는 것보다
손끝에서 어떤 형태가 마침내 제 모습을 갖추는 순간을
보는 일이 좋았기 때문일 것이다.
얇은 나무 프레임과 철사, 기름종이,
고무줄, 프로펠러를 조합해
작은 비행기를 만드는 일도 좋아했다.
그 가벼운 것들이 실제로 날아오른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학교에서 열리던 물로켓 대회와 비행기 대회,
여러 과학 행사는 늘 나를 두근거리게 했다.
과학상자는 너무 비싸서 해보지 못했지만
나는 가진 것 안에서 만드는 기쁨을 배웠고,
어쩌면 그래서 더 오래 그 재미를 간직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시절의 나는 사물만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 앞에서도 서툴게 배워가던 중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같은 반 여자아이 한 명을 좋아했다.
그 애만 보면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고 몸이 굳어버렸다.
그때는 내가 왜 그런지 몰랐다.
몇 년 뒤에야
그것이 이성에게 느끼는 감정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그 시절에는 그저 설명할 수 없는
두근거림과 당황스러움뿐이었다.
문방구 앞에서 그 아이가 내게
“넌 착해서 좋다” 하고 먼저 말해주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 말을 듣고 아무 말도 못한 채 어쩔 줄 몰라 하던 아이가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고 애틋하기도 하다.
아침 식탁에서는 또 다른 종류의 훈련이 이어졌다.
우리가 함께 아침상을 마주할 수 있는 날이면
아버지는 늘 성경을 한 구절 읽어주셨고,
짧은 설명도 덧붙여 주셨다.
그러고 나면 우리에게 짧게라도
생각을 말해 보라고 하셨다.
대답이 서툴러도 괜찮았고, 짧아도 괜찮았다.
항상 긍정적인 반응이 돌아왔다.
그래서 그 시간은 무겁거나 두렵지 않았다.
그냥 우리 집의 아침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그 식탁에서
신앙만 배운 것이 아니라
읽고, 생각하고, 말하는 법을 함께 배웠던 것 같다.
나중에 사람들 앞에서 원고를 준비해 이야기하는 일이
내 삶의 큰 부분이 되었는데,
그 시작이 어쩌면 그 식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겨울이면 아버지는 나와 함께 연을 만들었다.
대나무를 깎아 살을 만들고,
한지를 붙여 방패연을 만들고,
꼬리를 길게 달았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꼬리가 길수록 연은 바람에 더 안정적이라고.
그 문장은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어린 내게는 그저 연을 잘 날리는 방법이었지만,
지금은 삶의 비유처럼 들린다.
높이 오르는 것보다 먼저,
흔들리는 바람 속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 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말로.
방학이면 부모님은 우리 형제를
시골 할머니 댁에 맡기고 돌아가시곤 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세상 모든 시간을 가진 아이들처럼 살았다.
고추를 따고, 염소 풀을 뜯기고,
뒷산에 오르고, 나뭇가지와 고무줄로 활을 만들고,
강에서 물놀이를 하고,
곤충을 잡으러 들판을 뛰어다녔다.
옛날 시골집의 아궁이,
집 밖 끝에 있던 푸세식 화장실,
밤이면 무서워 방 안의 요강을 써야 했던 일들까지도
지금 생각하면 정겹다.
그 시절의 하루는 길었고,
그 길고 느린 시간 속에서 아이는 아주 많이 자랐다.
초등학교 졸업식 날 나는 많이 울었다.
새로운 시작 때문이었는지,
헤어짐 때문이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다만 그때의 울음은
내가 이미 떠남과 끝남과 변화를
깊이 느끼는 아이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행복한 시절이었기에,
그 시절이 끝나가는 것이 더 아프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지금 돌아보면 내 십대 초반은
내 삶에서 가장 환하고 즐거운 기억들이
모여 있는 시절이다.
나는 그때 참 많이 만들었고,
많이 읽었고,
많이 뛰어다녔고,
많이 좋아했다.
세상은 아직 무섭기보다 궁금한 것이 더 많았고,
나는 그 궁금함을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읽으며 자라났다.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의 나는
이미 지금의 나를 거의 다 품고 있었다.
기계를 좋아하던 아이,
공구를 사랑하던 아이,
언어를 좋아하던 아이,
가족의 식탁에서 말하는 법을 배우던 아이,
자연 속에서 하루 종일 뛰놀던 아이,
누군가를 몰래 좋아하던 아이.
그 모든 아이가 모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내 십대 초반은
미니카와 세계문학전집 사이에 있었다.
작은 모터를 갈아 끼우며 속도를 꿈꾸던 손과,
책장 속 먼 나라를 단숨에 건너가던 눈이
같은 몸 안에 있었다.
그리고 그 시절의 빛은 생각보다 오래 남아
지금도 내 안에서 조용히 반짝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