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할 것 없던 집에서, 나는 생각보다 많이 행복했었다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어린시절의 풍요에 대하여

by 루츠




가만히 앉아

어린 시절을 더듬어 보기 전까지는 몰랐다.

나는 내 유년기를 그저 지나간 시간쯤으로만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대단한 배경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넉넉하지 않은 집에서 태어나 자라고,

크고 작은 일들을 지나 여기까지 왔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천천히 앉아 하나씩 떠올려 보니

놀라운 일이 생겼다.

생각보다 많은 장면들이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기억들의 바탕에 깔려 있는 감정이

대부분 따뜻했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내 어린 시절이

마냥 편안하고 완벽했던 것은 아니다.

달동네 꼭대기 집에서 세발자전거를 타다

경사 아래로 굴러떨어졌던 일도 있었고,

겨울마다 감기와 폐렴으로 고생하며

병원을 드나들기도 했다.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져

외가댁 작은 방에서

다섯 식구가 함께 지내야 했던 시절도 있었다.


넓은 집도 아니었고,

여유로운 형편도 아니었고,

늘 모든 것이 넉넉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기억은 그 결핍을 중심으로 남아 있지 않았다.


오히려 오래 남아 있는 것은

송정 바닷가에서 먹던 라면이었고,

계곡에서 먹던 찐감자였고,

동생과 함께 바위틈에서 게를 잡아

양파망에 넣어 들고 오던 손의 감촉이었다.


늦게까지 일하고 들어오는 아버지를 기다리며

어머니와 함께 보던 텔레비전,

외가댁에서 명절마다 북적이던 부엌,

주전자 뚜껑으로 만두피를 찍어내던 재미,

그리고 붙어 자던 가족의 온기였다.


지금 돌아보면 우리 집은

특별할 것 없는 집이었다.

하지만 그 말은 이제 내게

조금 다른 뜻으로 들린다.

완벽하거나 대단한 조건이 없었다는 뜻일 뿐,

그 안에 사랑과 반복과 정성이 없었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생각보다 자주 웃고 있었다.

생각보다 자주 무언가에 몰입했고,

생각보다 자주 보호받고 있었으며,

생각보다 자주 누군가와 함께 있었다.


나는 바닷가에서 단순히 뛰어놀던 아이가 아니었다.

버려진 낚싯줄을 줍고,

작은 고동을 미끼로 쓰고,

바위틈에서 게를 잡아

집으로 가져와 저녁 반찬이 되는 과정을

기뻐하던 아이였다.

문방구 뒤뜰 트랙에서 미니카를 달리게 하며

조금씩 더 빠르고 더 안정적으로 만드는 방법을

배워가던 아이였고,

레고를 설명서대로 조립하기보다

내가 상상한 모양을 손으로 만들어내는 걸

좋아하던 아이였다.

또 『초원의 집』과 세계문학전집을 읽으며

활자 속 먼 나라를 기쁘게 건너가던 아이였다.


그 아이는

결핍만 배우며 자란 아이가 아니었다.

오히려 주어진 것 안에서

충분히 즐거울 수 있는 법을 알고 있던 아이였다.


생각해 보면

내 행복의 기준은 아주 어릴 때

이미 만들어졌는지도 모른다.

비싼 식당보다 바닷가 라면이 좋았고,

새 장난감을 많이 갖는 것보다

하나를 오래 조립하고 손보는 일이 더 즐거웠고,

화려한 이벤트보다

주말마다 반복되던 모임과 바다와 계곡의 시간이

더 깊이 남았다.


아마 그래서 지금의 나도

비싼 것보다 함께한 시간을 더 소중히 여기고,

완벽한 조건보다 삶의 밀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어린 시절의 내가 이미

행복은 크기보다 결이라는 걸

몸으로 알고 있었던 셈이다.


요즘 내가 이 기억들을 다시 꺼내며

가장 놀라는 것은

“내가 생각보다 행복한 아이였구나” 하는 깨달음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몸이 조금 약했고,

겁도 있었고,

어른들의 품을 좋아했고,

동시에 어딘가 책임감도 일찍 생겨나고 있었다.

어리광과 책임감 사이에서 흔들리던 아이였다.

그런데 그 아이는 생각보다 자주 기뻐했고,

생각보다 많은 장면을 사랑했고,

생각보다 잘 자라고 있었다.


이 깨달음은

지금의 나에게도 큰 위로가 된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아버지가 되었고,

아이들에게 더 좋은 환경과

더 넉넉한 조건을 주고 싶다는 마음을

자주 품고 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도 어린 시절의 나를 다시 만나면,

완벽한 조건이 행복을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배우게 된다.


아이에게 꼭 필요한 것은

언제나 넓은 집이나 많은 돈만은 아닐 수 있다.

함께 반복해 주는 시간,

지켜주는 존재감,

가족만의 리듬,

작은 것을 함께 기뻐하는 법.

어쩌면 그런 것들이

훨씬 오래 남는다.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집에서 태어난 아이가

생각보다 많이 행복했었다는 사실을

나는 이제야 다시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지나온 내 삶을 다시 보게 할 뿐 아니라

앞으로 내가 아이들에게

어떤 삶을 남기고 싶은지도 조용히 알려준다.


나는 부족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가 아니라,

평범한 삶 속에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었던 아이였다.


아마 지금의 나를 지탱하는

가장 오래된 힘도

바로 거기에서 왔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