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난 장난감을 들고 온 아들의 목소리에서, 나는 아버지를 다시 만났다
얼마 전 네 살배기 아들이
고장 난 장난감을 들고 내게 왔다.
작은 손으로 장난감을 내밀며 말했다.
“아빠, 이것 좀 고쳐주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울컥했다.
별것 아닌 장면인데도 그랬다.
나는 잠시 장난감보다
아이의 얼굴을 더 오래 바라보았다.
그리고 곧 알게 되었다.
그 순간 내 앞에 있었던 것은
단지 고장 난 장난감 하나가 아니었다는 것을.
아주 오래전 공구통을 열던 아버지의 모습까지
함께 들어 있는 장면이었다는 것을.
어머니는 가끔 아버지를 “박가이버”라고 부르셨다.
맥가이버라는 이름에 아버지의 성을 붙인 말이었다.
나는 그 드라마를 제대로 본 적도 없었지만,
왜 어머니가 그런 별명을 붙였는지는
어린 나이에도 알 수 있었다.
집에서 선풍기나 세탁기가 고장 나면
어머니는 자연스럽게 아버지를 불렀다.
문이 삐걱거리면 아버지가 기름을 치셨고,
자전거가 펑크 나면 바퀴를 떼어 수리해 주셨고,
브레이크 케이블을 조절하고 안장 높이를 맞추고,
필요하면 나사를 조이고, 닦고, 다시 끼우셨다.
어린 내 눈에 아버지는
고장 난 것을 다시 돌아가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세상에는 망가지는 것들이 많았지만,
그걸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꽤 든든한 감각으로 남았다.
나는 아버지의 공구통을 좋아했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었는지
하나하나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금속의 차가운 감촉과 묵직한 무게,
펼쳐 놓으면 질서 있게 놓여 있던 공구들의 분위기는 아직도 선명하다.
공구는 어린 내게 위험하거나 낯선 물건이 아니었다.
이상하게도 마음을 놓이게 하는 물건이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손에 쥘 수 있는
답이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나를 앉혀 놓고
거창한 강의를 하진 않으셨다.
대신 고장 난 것을 직접 고치셨다.
말보다 손이 먼저 움직였고,
설명보다 결과가 먼저 보였다.
그래서 나는 아주 일찍부터
세상을 대하는 한 가지 태도를
자연스럽게 배운 것 같다.
망가진 것이 있다고 해서
곧바로 버려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조금 들여다보고, 원인을 찾고, 손을 대면
다시 살아나는 것도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손은
조용하지만 꽤 큰 신뢰를 준다는 것.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나도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조립하고, 뜯어보고, 손보는 걸 좋아했다.
미니카를 더 빠르게 달리게 하려고 모터를 바꾸고,
밸런스를 잡기 위해 파츠를 조정하고,
작은 공구세트를 베개 옆에 두고 잘 만큼 좋아했다.
그 모든 취향의 시작점 어딘가에는
분명 아버지의 공구통이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왜 그런 것들에 끌리는지,
왜 고쳐지는 장면을 보면 마음이 놓이는지.
그저 멋있다고만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제는 안다.
아이였던 나는 아버지에게서
단순히 기술을 본 것이 아니라,
가족을 위해 손을 쓰는 사람의
책임감과 존재감을 보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시간이 많이 흘렀다.
어느새 나는 아버지가 되었고,
며칠 전 네 살배기 아들이
고장 난 장난감을 들고 내게 와서 말했다.
“아빠, 이것 좀 고쳐주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잠시 지금의 나이가 아니라
아주 오래전의 어떤 자리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의 공구통을 올려다보던 어린 내가 있었고,
그 공구통을 열어 보이던 아버지가 있었고,
이제는 내 앞에 선 아이가
나를 그런 사람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작은 장난감을 손에 들고 나는 생각했다.
아,
이제는 나를 박가이버라고 불러줄 아이가 생겼구나.
그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나면서도
목이 조금 메었다.
아버지라는 자리는
어떤 말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순간들로 조금씩 실감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이에게 나는
세상 모든 걸
다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망가진 작은 장난감 하나쯤은
다시 고쳐줄 수 있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돌이켜 보면
내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그랬다.
완벽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필요한 순간에 공구통을 열 줄 아는 사람으로
내 곁에 계셨다.
그래서 지금 내 아들이
고장 난 장난감을 들고 오는 장면은
그저 귀엽기만 한 일이 아니다.
그건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손의 기억과 믿음의 모양을 건네는 장면처럼
느껴진다.
나는 아직도 아버지의 공구통을
다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공구통이 내게 남긴 감각은
분명히 기억한다.
고장 난 것을 다시 고치고
멈춘것을 다시 돌아가게 만들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그 믿음이 누군가에게는
아버지라는 이름의 든든함으로 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어쩌면 아이는
고장 난 장난감보다 더 큰 것을
내게 맡긴 것인지도 모른다.
“아빠라면 할 수 있다”는 믿음 같은 것 말이다.
그리고 나는 그 믿음을 받을 때마다
아주 오래전 공구통을 열던 한 사람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우리 집에는 오래전 박가이버가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이름이
조금씩 나에게로 흘러오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