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하게 자란 막내딸은 어떻게 남자아이 셋의 엄마가 되었을까
어릴 때 내 눈에 엄마는 늘 아이 셋을 데리고
걷는 사람이었다.
막내는 유모차에 태우고,
둘째는 유모차 앞 발판에 세우고,
나는 손잡이를 잡고 함께 밀었다.
엄마는 가방을 들고 걸었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주말이면 그 풍경은 자주 반복되었다.
그때는 몰랐다.
저 사람이 외가에서는 귀하게 자란
막내딸이었다는 것을.
엄마는 여섯 남매 중 막내딸이었다.
외가에서 보면 참 곱게 자란 사람이었다.
젊은 시절 사진을 보면 미모도 빼어났고,
분위기 역시 단정하고 고상했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그런 여자가
남자아이 셋의 엄마가 되어 살아낸 시간은
얼마나 고단했을까 하고.
어릴 때의 나는 엄마를 그저 엄마로만 알았다.
늘 곁에 있고,
늘 챙기고,
늘 데리고 움직이는 사람.
배가 고프면 밥을 해주고,
옷을 입혀주고,
외할머니 집에 데려가고,
집으로 다시 돌아오고,
아픈 아이를 안고 병원에 가고,
주말이면 아이 셋을 데리고 모임에 가는 사람.
아이일 때는 그런 장면들이 그냥 일상처럼 보인다.
원래 엄마란 그런 사람인 줄 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아이를 키워보니 알겠다.
그건 원래 그런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자기 몸과 시간을 써서
가까스로 유지해낸 하루하루였다는 것을.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걸음에는
여름의 공기가 함께 붙어 있다.
선선한 바람이 불던 날에도
한참을 걷고 집에 도착하면 몸은 늘 땀에 젖어 있었다.
우리는 돌아오면 씻어야 했다.
어린 나는 그저 밖에 다녀와 더운 줄만 알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엄마는
아이들을 데리고 그 길을 오가는 동안
훨씬 더 많은 것을 감당하고 있었던 것 같다.
시장에 버스를 타고 다니던 날들도 떠오른다.
사람은 많았고,
나는 엄마 손을 꼭 잡고 다녔다.
엄마는 한 손으로 내 손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장을 보고 산 물건이 든 비닐봉지를
여러 개 들고 있었다.
버스정류장 앞에 도착하면
엄마는 그 무거운 짐들을 잠시 바닥에 내려놓고
한숨을 돌리곤 했다.
그때의 나는 그게 얼마나 무거운 하루였는지 몰랐다.
지금은 안다.
엄마는 혹시나 날 잃어버릴까 놓치 못하는 손과
일상을 꾸려나가야하는 손으로
하루를 버티고 있었다는 것을.
지금 생각하면 엄마는 참 많이 걸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걷고,
장을 보러 걷고,
외가와 집을 오가며 걷고,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신앙의 리듬을 놓치지 않으려고 걸었다.
그 걸음은 요란하지 않았다.
엄마는 큰소리로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 집은 분명
엄마의 걸음 위에서 굴러가고 있었다.
나는 이제서야 그 사실을 안다.
우리 집 일요일 점심은 언제나 라면이었다.
어릴 때는 그게 그냥 좋았다.
별생각 없이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그 라면은 엄마에게 일종의 쉼표였던 것 같다.
하루 세 끼를 다 챙겨야 하는 시간 속에서
“오늘 점심은 뭘 먹여야 하지”라는 고민으로부터
잠시 벗어날 수 있는 시간.
일요일 점심의 라면은
어쩌면 엄마가 숨을 한 번 고를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주말마다 바다나 계곡으로 나갔던 시간에도
엄마를 위한 배려가 숨어 있었던 것 같다.
어릴 때의 나는 그저 밖에 나가 노는 게 좋았다.
송정 바닷가에 가고, 계곡에 가고,
라면을 끓여 먹고, 찐감자를 먹고,
동생과 뛰어다니는 게 그저 즐거웠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아버지는 알고 계셨던 것 같다.
집 안에만 있으면 엄마가 더 지치게 된다는 것을.
일단 집 밖으로 나오면
엄마는 조금이라도 숨을 돌릴 수 있다는 것을.
아버지는 자주 말씀하셨다.
집 밖에서는 남자들이 여자를 챙겨야 하는 거라고.
그 말은 어린 내게는
그냥 어른의 말처럼 들렸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건 단순한 예의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 같다.
가족 안에서 누가 더 지쳐 있는지 알고,
누가 잠시라도 쉴 수 있게 해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의 말에 가까웠다.
그래서 주말의 바다와 계곡은
우리 아이들에게는 놀이였지만,
엄마에게는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자리였을지도 모른다.
아빠가 낚싯대를 펴고,
아이들은 뛰어다니고,
엄마가 그 곁에 앉아 바람을 쐬는 그 장면 안에는
우리 가족 나름의 배려와 휴식의 방식이 숨어 있었던 셈이다.
나는 요즘에야 엄마를 조금 다르게 본다.
그냥 “우리 엄마”가 아니라,
곱게 자란 한 여자가
결혼을 하고, 아이 셋을 낳고,
생활을 붙들고, 신앙을 지키고,
집을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반복을 견뎌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엄마는 강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강함은
흔히 떠올리는 강함과는 조금 다르다.
엄마는 거칠거나 드센 방식으로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고운 방식으로 강한 사람이었다.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도,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내는 사람.
불평보다 반복으로 집을 지탱하는 사람.
그런 사람의 강함이
우리 집을 오래 버티게 했던 것 같다.
어릴 때는 아버지가 더 크게 보였다.
고장 난 것을 고치고, 낚싯대를 펴고,
밖에서 가족을 이끄는 모습이 눈에 잘 들어왔으니까.
그런데 이제 보니
집 안의 시간을 실제로 굴러가게 한 사람은
엄마이기도 했다.
돌아보면 우리 집은
아버지의 기준과 엄마의 걸음으로
함께 세워진 집이었다.
아버지가 방향을 잡고
비바람을 막아내는 지붕 같은 사람이었다면,
엄마는 눈에 잘 띄지 않아도
집을 끝내 무너지지 않게 받치고 있는 기둥 같은 사람이었다.
지붕은 멀리서도 보이지만,
기둥은 늘 그 자리에 있어서
오히려 쉽게 잊히곤 한다.
하지만 기둥이 없으면 집은 오래 설 수 없다.
이제야 나는
우리 집이 오랫동안 엄마의 버팀 위에서도
서 있었다는 사실을 안다.
내가 지금 아이를 키우며
주말의 한 끼, 외출 한 번, 짐 하나, 낮잠 한 번이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드는지
조금씩 알아가고 있어서일까.
이제야 엄마의 대단함이 더 또렷하게 보인다.
엄마는 특별한 말을 많이 하진 않았다.
대신 우리를 데리고 걸었다.
데리고 가고, 데리고 오고,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또 하루를 시작했다.
그 단순한 반복이
사실은 한 집을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이었다는 걸
나는 한참 뒤에야 알게 되었다.
엄마는 귀하게 자란 막내딸이었다.
하지만 약한 사람은 아니었다.
고운 사람이었지만,
삶의 가장 무거운 반복을
묵묵히 감당한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우리 집의 지붕이었다면,
엄마는 오래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집을 버티게 한 기둥이었다.
나는 이제야 그 사실을 안다.